오찬호가 쓴 '우리는 더 위태로워질 것이다'라는 글을 읽었어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3082036005&code=990100


"일부에서는 사람들의 마스크 집착이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공포라는 심리적 감정은 질병의 과학적 사실과 비례해
정량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발을 딛고 있는 얼음판의 두께가 약한 사람들은
냉정히 언론을 선별할 시간도, 공동체의 미래를 장기적 안목에서 고민할 여유도 없다. 

오늘 버텨내지 못하면 내일이 없는 이들은
누구를 시켜서라도 마스크부터 구해야 한다. 

그런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이 두려운 노인들은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몇 시간을 기다린다."



며칠 전 처방전 약을 타러 동네 작은 약국에 들렸다가
면 목도리로 목과 입을 가린 할머니를 봤습니다.

마스크를 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묻더군요.
약사가 친절하게 마스크 5부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할머니가 태어난 연도를 확인해 다음 주 수요일에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설명을 듣는 내내 할머니는 약사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할머니는 지갑 귀퉁이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종이 쪽지에 
파란색 모나미153 볼펜으로 뭔가를 메모하고 약국을 떠났습니다. 


마스크 5부제는 언론에서 제법 홍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막상 현실에선 잘 모르는 분이 있더군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정보를 접하고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특권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 대부분이 가속 패널 같은 기괴한 공간 안에서
내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여기서 실수로 발을 헛디뎌 미끌어지거나 
자의에 의해 번아웃되어 기권하거나 
혹은 타의에 의해 밀쳐짐을 당하면 
아득한 패널 바깥으로 밀려 사라지는 광경 말이죠.
간혹 가속 패널보다 더 빨리 발돋움을 하면
BTS나 손흥민이나 김연아처럼 반짝이는 거 같아요.

그런 광경을 현실에서 보기도 하고
가끔은 학교나 회사나 조직에서 이데올로기로 주입받기도 하고요.

안 그래도 숨가쁘고 위태로운 현실인데
코로나19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난이도 패치가 된 상황 같아요.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아득한 패널 바깥으로 밀려 사라지고
이름조차 지워질 거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3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9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93
124071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2016) [3] catgotmy 2023.08.21 247
124070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 6. 폭망이네요. [14] S.S.S. 2023.08.21 665
124069 프레임드 #528 [4] Lunagazer 2023.08.21 81
124068 '피기' 보고 짧은 잡담 [6] thoma 2023.08.21 291
124067 탑 아이돌의 가사실수가 흥하는 순간(너, 내 동료가 되라) [3] 상수 2023.08.21 495
124066 요즘 외국어의 한글 표기 [7] 양자고양이 2023.08.21 448
124065 미스테리 하우스 [6] 돌도끼 2023.08.21 209
124064 (드라마 바낭)마스크걸이 수작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6] 왜냐하면 2023.08.21 743
124063 이번 주 무빙 예고 [1] 라인하르트012 2023.08.21 251
124062 최신영화 관련영상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X박찬욱 GV, 알쓸별잡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이름을 음차하자 놀란 반응 상수 2023.08.20 349
124061 아이유 선공개 라이브곡 - 지구가 태양을 네 번(With 넬) 상수 2023.08.20 224
124060 오펜하이머, 대단하네요. 전 재밌었습니다. [4] S.S.S. 2023.08.20 631
124059 미션임파서블7 400만 돌파 감사 영상/13회 차 관람/ 씨네 21 평론 daviddain 2023.08.20 212
124058 [EIDF 2023] EBS 국제다큐영화제 [7] underground 2023.08.20 633
124057 프레임드 #527 [2] Lunagazer 2023.08.20 74
124056 [아마존프라임] 90년대풍 에로틱 스릴러의 향수, '딥 워터'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08.20 304
124055 동시상영관 : 비뎀업 리메이크 작품들 [2] skelington 2023.08.20 123
124054 [왓챠바낭] 의도는 알겠는데... '고스트 버스터즈' 리부트 잡담입니다 [11] 로이배티 2023.08.20 558
124053 오펜하이머 사소한 거 [3] daviddain 2023.08.19 462
124052 프레임드 #526 [4] Lunagazer 2023.08.19 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