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1 21:35
업무상 유럽과 자주 일하는 편인데, 그들의 서비스 속도나 수준은 한국에 비해선 어마어마하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게 그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것 같아요. 서비스 하나하나에 돈을 받지 않으면 서비스를 줄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까요.
판매자와 구매자 두 입장을 모두 경험해본 결과, 판매자 입장에서는 일하기 편한 시스템 같아요.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 90년대였던가 그 때부터 한국에 막 나돌기 시작하면서,
월세도 제대로 못 내는 와중에도 고객 서비스 하느라 고생하는 자영업자들을 수두룩하게 봐온 지라,
그 말을 꺼냈던 그 사람이 누군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굳이 줘도 되지 않는 반찬을 더 주고, 반찬이 떨어지면 배가 찰 때까지 채워주는 건 기본이고,
별로 안 추운데 히터를 틀거나, 별로 안 더운데 에어콘을 키는 것도 너무 정도가 심하고요.
심지어 버스 기사에게까지 친절함을 요구하면서 불친절하면 신고하도록 처리하는 나라도 얼마나 될까 싶어요.
음식점에 대한 온라인 별점을 줄 때, 아무리 그 집이 맛있고 좋은 재료를 써도, 알바생 한 명이 퉁명스러웠다면 1점을 주는 것도 일상적이죠.
지극정성으로 천연 무화과 효모로 빵을 굽고 온도를 맞추려 반죽기계에 차가운 수건을 갖다댈 정도의 정성으로 만든다는
10점 만점을 받아 마땅한 이태원 모 빵집의 리뷰에도, 실수로 날벌레가 한 번 나왔던 걸로 1점을 준 고객이 있더라고요.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고, 고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면서 자영업자들은,
남아서 버리는 반찬을 아까워하면서도 정없다는 소리 들을까봐 반찬을 가득 채워주면서,
결국엔 그게 퀄리티 떨어지는 중국산 김치와 맛 없는 형식적 반찬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기도 해요.
H모 프랜차이즈 카페를 보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컨셉을 유지하려는 것 같으나,
일회용 컵 홀더나 종이컵의 재질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마시고 버리기 아깝더라고요.
한국이 외국보다 물가가 비싼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사실 어쩌면 그 수많은 서비스를 감당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것은 아닌가 생각들어요.
대표적인 게 카페의 와이파이 무료 서비스나, 수입 가전제품의 A/S 서비스죠.
인덕션의 경우 유럽 동일 정품보다 4-5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
그게 어쩌면 무상 A/S 톡톡이 챙기려는 고객 때문에 올라가는 것도 분명 많을 것 같아요.
상판에 흠집이 나면 상판을 교체해준다거나 등의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면, 그 가격을 받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러면서 인덕션 수입업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구나 구매대행을 열심히 까기도 하는데,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사실 직구로 인덕션을 구해도 해당 해외 판매처에서 일정의 추가금액을 내면
3~5년 무상 A/S는 가능하거든요. 왕복 배송비 20만원이라고 쳐도, 여전히 백화점보다는 저렴하고요.
고객이 요구하는 서비스가 점점 심해지면서, 갑질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개 진상 한 번 부렸더니 환불해줬어' 라고 웃으며 떠들어대는 고객도 적잖고 당연해지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판매자 입장에서 한국은 서비스업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고,
그렇다고 고객에게 똑같은 가격을 내면서 효율적으로 서비스가 돌아가지도 않으니 고객에게도 좋을 것 없는 것 같아요.
커피 한 잔에 포함된 수많은 비용중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들이 모두 포함된 것은 아니죠.
안 추운데 히터를 너무 틀어서 피부가 건조해지고 공기가 답답했는데, 그 비용을 낼 필욘 없듯이.
그 외에 배달의 민족 어플도 그렇고, 배달 서비스에는 사실 별도의 요금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몇몇 업체는 별도의 요금을 받기가 눈치 보여 결국 상품가를 올리고, 테이크아웃 시에 할인을 적용하긴 하지만.
아무튼 주저리가 되었는데, 고객이 왕이다라는 표현, 궁금해요. 누가 시초였는지.
2015.02.11 21:46
2015.02.11 21:51
소비 또는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자존감을 채우려 하고, 그게 수틀리면 내 자존심이 짓밟혔어! 하면서 진상이 되버리는거 아닐까요. 그래서 영업하는쪽에서는 그런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과다한 응대를 하는거구요. 서로서로 피곤한 사회 같아요
2015.02.11 22:04
2015.02.11 22:14
수입제품이 비싼건 카탈스러운 고객 탓은 아니에요. 외국에는 1개월 내에 무조건 반품가능한 곳이 많아서 밥솥을 사더라도 29일 밥 잘지어먹고 반품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하지요. 드레스 상표 안떼고 한 입다가 반품하는 것은 미드에 자주 나오는 얘기구요. 이런 반품 상품 싸게 파는 가게도 있습니다. 수입제품은 그냥 비싸게 받는거에요.
그리고 우리나라 서비스가 좋아진 것이 제가 어렸을 때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불친절해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친절캠페인을 많이 벌였죠. 1990년대 초반 중국을 가면 서비스라는 개념조차 없고 너무 불친절해서 화가 날 정도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올림픽을 앞두고 친절캠페인을 많이 벌였어요. 그때 가게들마다 붙여놓았던 문구가 거스름돈 던지지말자, 고액권 가져와도 다른데 가서 바꿔오라 하지말자 였습니다. 큰 돈 가져가면 딴데 가서 바꿔오라고 한 것은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겪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올림픽 이후에나서비스가 좋아졌지만 지금은 과잉이 되가는 것 같습니다.
2015.02.11 22:57
리그베다 위키 :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6%90%EB%8B%98%EC%9D%80%20%EC%99%95%EC%9D%B4%EB%8B%A4
영문 위키피디아 : http://en.wikipedia.org/wiki/The_customer_is_always_right
잠깐 살펴보니 이 정도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이 표현이 많이 통용되고 서비스업이나 소비자 대상 서비스에 관용구에 적극적으로 사용된 건 (일단) 80년대 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손님은 왕이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참조 : 졸고 http://prouder.egloos.com/546937>)은 정말 손님이나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다.
'손님은 왕, 사장은 황제'와 같은 표현도 있듯이, 피고용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통제 강화가 의심됩니다. 그게 80년대라는 정치적, 경제적 특이시기에 사회 전반에 퍼쳐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났네요.
2015.02.12 00:43
2015.02.12 01:19
언젠가부터 전철, 버스, 기차에서 '승객'이라는 표현이 '고객'으로 바뀌었더군요.
2015.02.12 05:47
2015.02.12 15:56
리) 손님은 왕이다 라는 말을 맨 처음 한 사람은 리츠칼튼 호텔의 창업자 세자르 리츠인데.. 실제로 그는 왕이나 귀족들을 주로 손님으로 맞이했었고, 또 저 말에는 "왕처럼 돈을 쓰는 손님은 왕이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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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왕이다'는 약과고 어딘가는 '고객은 신이다'라고까지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