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눈물

2015.02.23 22:25

은밀한 생 조회 수:2009

 

때로 마음이 저민단 건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순간에 쳐들어오죠.

내 눈물에 내가 놀라는 순간 말예요.

 

연휴의 끝인 어제 전 애인과 애인의 어머니 집에 놀러 갔어요. 몇 년간 봐온 그의 어머니인지라 가족사나 기타 등등 집안 사정에 대해서도 애인이나 다름없이 알고 있는 처지였죠. 6년 전에 남편을 병으로 떠나보내고 자식이라곤 아들 하나. 그런데 그 아들이 가슴으로 품은 자식이에요. 아이가 없단 걸 소문으로 들은 것인지 여기 어머니와 알고 지내던 누군가인지 모를 누군가가, 갓난아기인 제 애인을 문 앞에 두고 잘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죄는 평생 속죄하며 살게요 아이 생일은 모월모일입니다 라는 쪽지를 넣어놓고 갔다더군요. 아무튼 저는 그렇게 그의 방에서 그가 취미로 작업한 음악을 들어보고 있었고 그는 소파에 앉아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고 있었어요. 예의 그 발바닥을 방바닥에 꼭 붙여서는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그의 어머니가 거실로 나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 집에 가야되는데.....“

 

아들은 망연히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엄마. 라고 외마디 탄식을 했고 어머니는 다시 아들을 향해서 “나 집에 가야되는데. 누구세요?‘ 라고 조용히 웅얼댔어요.

 

전 방에서 뛰어나가 최대한 다정한 얼굴과 눈빛으로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고, 이어서 우리 젊은 사람들도 전화기를 들고서 전화기를 찾질 않나 지갑으로 음식 값을 치르면서 지갑을 찾질 않나 저희 어머니께서도 오늘이 며칠인지 항상 잊는다 등등을 말씀드리고 괜찮다...괜찮다... 연세 드신 분들 다 그러신다... 오늘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나봐요 하하하 따위를 말씀드리는데. 속이 자꾸 울렁거렸어요. 게다가 자꾸만 등이 아프더라고요. 전 슬픈 마음이 들면 이상하게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 인간인데, 어제는 배가 아프다 못해 등도 아프더라고요.

 

얼마전부터 자꾸 이불속에 넣어놓은 현금이 없어졌다는 얘길 자주 하시고,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통장이 없어졌다, 아들이 훔쳐갔다, 애기가 (애기는 저예요) 집에 와서 내 영양제를 훔쳐 먹었다 같은 얘기를 자주 하셔서..... 안 그래도 보건소에서 하는 치매선별검사를 받게 해드리라고 애인한테 말했었거든요.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이 무척 바쁘고 야근에 출장이 잦아서 애인이 계속 미뤘었죠. 언제나 TV만 보시는 분인데다가 취미 생활도 없으시고.... 늘 집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은 분이라서 치매가 오기 좋은 환경이다란 생각은 저도 자주 들었었어요. 갓난아기 때 이미 부친은 돌아가시고 여기 어머니 남매를 데리고 세상을 살아가기엔 힘들고 무서웠던 모친은 재가를 하셨대요. 그래서 여기 어머니 남매는 큰아버지댁에서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두메산골 허드렛일은 죄다 하며 유년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소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고.... 소처럼 일만 하던 산골 처녀는 19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고. 그 집엔 남편의 형제가 일곱. 시부모와 남편, 남편의 형제들 뒷바라지 살림을 하던 여기 어머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지금 저의 애인을 업어 키웠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대요. 종종 무릎을 꿇고 식사를 하는, 좋다 싫다를 평생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본 적이 없는 이 분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사실 전 여기 어머니와 그리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고 서로 주고받은 것 없이 왕래하며 가끔 인사드리고, 모시고 나가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 전부인 처지지만..... 저 자신도 이 감정이 당황스러울 만큼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박복함에 가슴이 아프네요. 사연이 구슬픈 걸로 치자면야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 누구 하나 가엾지 않은 분이 계시겠습니까만....

 

일단 당장 애인이 내일 보건소에 모시고 나가서 1차 치매선별검사 받고, 2차로 보건소 협약 거점병원에 정밀 검사 받고, 진료와 치료를 병행할 생각인데요. 2차 정밀 검사나 요양원 문제나 치매 관련 어떤 작은 직간접 경험이라도 댓글 부탁드립니다. 나누기 어려운 경험이시겠지만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려요. 인터넷 검색과 지인들 정보 수집으로 최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야할 것 같아서요. 저희 부모님은 아직 정신이 맑으시고 저희 친족 중에는 치매 관련 병력이 전무한지라, 게다가 제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도 아무도 없네요. 아픈 기억이시겠지만 혹시라도 나눠주실 수 있으시면 정보 좀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치매의 뚜렷한 징후를 갑자기 마주쳤을 때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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