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뮤3)

2016.08.21 06:19

여은성 조회 수:875


 1.Q와 가는 고깃집은 새벽에 가도 가끔 사람이 많곤 했어요. 위쪽 라운지바에서 파티하고 오는 인간들이나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다스 롱잠바를 단체로 맞춰입은 듯한 연예 꿈나무들...뭐 이런 사람들이 단체로 와 있는 상황이면 제법 북적거리곤 했죠. 낮과는 달리 각 테이블당 내질러지는 데시벨과 음량의 레벨이 훨씬 높아서 5팀 정도만 와 있어도 가게가 그야말로 가득 찬 느낌이었어요.  


 보통은 새벽에 그곳에 가며 사람이 없길 바래요. 늘 말하듯이 인간따윈 짜증나니까요. 뭐 우리 모두 인간을 싫어하잖아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렇겠죠? 하지만... 


 하지만 그날만큼은 고깃집에 가며 내심 사람이 많이 와 있길 바랬어요. 내가 Q같은 초특급 비주얼과 고기를 먹으러 온 걸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많이 봤으면 해서요. 그것도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얻어먹는 걸요. 


 '아니 저 사람은 누구길래 저런 여자와 온 거지? 자, 잠깐만?! 돈도 안 내고 있어! 저런 여자가 계산을 하게 만들고 있다니! 우리가 못하는 걸 태연하게 해버리고 있어! 존경하게 돼!'


 ...뭐 이런 느낌으로요. 지금 이걸 읽는 분들에겐 '뭐야...왜 이렇게 찌질한 생각을 하며 사는 거지...무슨 초딩인가?'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아니예요. 보통은...99.9%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찌질하지 않아요. 흠...



 2.흠 뭐 약간의 설명을 해보죠. 사실 뭐 글을 써서 어딘가에 올리는 순간 그건 내 것은 아니예요. 어떤 의도로 썼든지 어떤 느낌으로 썼든지 이해받기를 바래서는 안 되죠. 어차피 거의 해석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는 거니까요. 그래도 뭐 내가 별것도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을 덜기 위해 약간의 말을 해봐야겠어요. 


 듀게에 몇년동안 뻔질나게 글을 쓰며 연예인이든 연예인이 아니든 사람의 외모에 대해 초특급은커녕 특급이라는 말도 써본 적이 없어요. 중상급이나 상급이라는 말은 쓴 적 있던 거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용어를 마구 쓸지도 모르지만, 앞서 쓴 글처럼 뭔가를 평가할 때 머라이어캐리나 미슐랭3스타 식당같은 것의 존재를 늘 감안하는 나는 그런 용어들을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아요. 


 그리고 최상급-특급-초특급의 기준표에서 각 등급마다 국가적 스케일에서의 관점-아시아권역적 스케일에서의 관점-전지구적인 스케일에서의 관점이라는 차이가 있죠. 그래서 특급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몇 번 정도는 만나봐야 쓰고 초특급이라는 말을 쓰기 전엔 이 미사여구를 붙여도 되는지 여러 번 여러 곳 여러 조명과 자연광 아래서 다 보기 전엔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않아요. 쓸데없는 설명은 이쯤 해두죠.



 3.가게엔 사람이 그리 없었어요. Q는 메뉴판을 기다리지 않고 꽃등심 4인분을 외쳤어요. 보통은 이곳에서 2인분을 시키고 간을 봐가며 더 시키는데 Q가 통이 크구나 싶긴 했어요. 그러나...나는 Q에게 일단 2인분 시키고 2인분을 더 시키자고 했어요. Q는 어차피 자기가 사는 건데 그래봐야 양도 차이 안 나니까 모자라면 더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이걸 말해야 하나 조금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어요. 나는 4를 싫어해서 4에 엮이는 걸 가능한 피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2인분을 먼저 시키고 다시 2인분을 시키고 싶다고요. Q가 나를 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외쳤어요. '4인분 말고 5인분이요!'


 둘이서 5인분을 먹는 건 무리 아니냐고 하니(사실 4인분도...)Q는 버럭개그와는 약간 다른, 호통치는 듯한 말을 했어요. 그건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기로 하죠.


 

 4.휴.



 5.가끔 사장이나 직원과 일상적인 공간으로 나오면 가게의 조명이란 게 사람의 외모를 꽤 보정시켜 주는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야 물론 여전히 예쁜 얼굴이지만 가게에서는 약점이 없어 보이던 얼굴에서 약점이 없지는 않은 얼굴 정도로 보이게 되는 거죠. 


 Q는 어떨까하고 제대로 관찰해 보기로 했어요. Q가 스마트폰을 보기 위해 숙이고 있어서 '얼굴 구경좀 시켜줘도 돼?'라고 묻자 Q가 씩 웃으며 고개를 들었어요. 이목구비의 각각의 완성도와 눈코입간의 상호적 조화, 배치는 이미 여러 번 봐서 의심할 바가 없었어요. Q의 얼굴의 입체감이 어느정도는 화장빨이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일반광 아래에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눈두덩 뺨 콧날 이마 턱으로 이어지는 굴곡이 xy축으로 잘 배치된 이목구비에 깊이감까지 가미시켜줘서 Q의 얼굴이 특급을 넘도록 만들어주는 거구나 싶었어요. 내가 로맨티스트였다면 신이 Q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실패작들이 다른 인간들일 거라는 대사를 읊어 줬겠죠. 하지만 나는 로맨티스트가 아니니까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Q의 얼굴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우울해졌어요. 신이 Q를 온 힘을 다해 빚어내고 있는데 그 옆에 내가 버려져 있는 장면이 상상되어서요. 


 여기까지 말한 건 조형적 완성도에 관한 거예요. 앞서 쓴 글처럼 약점이 없는 그냥 100점짜리 얼굴은 심심할 뿐이거든요. Q의 얼굴에는 점수제 평가에서 벗어난, 자신을 자신으로 보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가게에서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개구장이같은 미소가 짖궂은 장난을 계획하는 아이같은 느낌을 주게 만들었어요. 짖궂은 표정에서 지루해하는 표정, 슈퍼내추럴 드립을 치면 재수없어하는 표정으로 휙휙 바뀌는 걸 보며 본인이 정색하며 주장하는 것처럼 성형은 안하긴 안했나보구나 싶었어요. 


 

 6.저는 누군가의 외모를 의사가 만들었는지 신이 만들었는지 딱히 신경쓰는 편은 아니예요. 늘 모로 가도 돈만 벌면 된다고 외치는 것처럼 외모 또한 현재의 결과물만이 중요한거죠. 이런, 외모에 대한 것만 쓰느라 진행이 안 되네요. 얼빠도 아닌데. 어서 이 시리즈를 끝내버리고 편해지고 싶어요.


 고깃집을 나가면서 혹시...내가 Q의 오빠거나 뭐 가족처럼 보일까봐 평소보다 약간 큰 소리로 '잘 먹었어 사장님.'하고 외쳐 줬어요. 가게의 구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잘 들을 수 있도록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평소엔 이렇게 찌질하지 않아요. 


 ...아니, 솔직이 찌질한 행동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3시간 반동안 520만원을 쓰면 감사의 표시랍시고 500만원으로 깎아주고 믹스커피 한잔을 타다주는 인간이 고기를 사줬는데 당연히 어필해야죠. 후회가 되네요. 더 큰 소리로 말할 걸 그랬어요.



 7.고기를 먹고 그쪽 블록을 잠깐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어요. Q는 내게 어느 룸살롱에 가는지, 거기서는 어떤식으로 노는지 물어봤어요. 그런 곳엔 안간다고 하자 웃으며 '믿어 줄께.'라고 대답했어요. 슈퍼내추럴을 보다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 Q에게 그후로 얼마나 더 막장이 됐는지 얘기해주며 걷다 보니 차가 주차된 곳까지 오게 됐어요. Q가 개인적인 질문을 하려는 것 같았어요. 좀전 룸에서 이런 곳엔 왜 오냐는 질문을 하기 직전과 분위기가 비슷했거든요. 이 질문을 해도 되나 말아야 하나를 망설일 때 보이는 전조인 것을 알 수 있었어요.


 Q가 망설이다가 던진 질문은 '이제 기분 좀 풀려?'였어요. 이건 좀 이상한 질문이었어요. 내가 언제 기분이 상하기라도 했었냐고 되묻자 Q가 말했어요.


 '은성이 너 삐져서 그러고 다니는 거잖아.'


 순간적으로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건 그래봐야 화류계 여자가 곧잘 하는 넘겨짚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그런 말은 서울바닥에 지나가는 남자 아무한테나 해도 대충 들어맞을 거라고요. 콜드 리딩 같은 거라고 말이죠. Q는 나와 말싸움하기 싫은 듯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요. Q가 담배를 꺼내 물었고 나는 담배냄새가 싫어서 멀찍이 떨어졌어요. Q는 담배를 두모금 정도 빨고 바닥에 버렸어요. 그리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어요. Q가 말했어요.


 '이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 드렸어.'


 나는 번화가로 나가는 길에 강남 거리의 어디든 내려달라고 했고 Q는 알았다고 했어요.



 8.차를 타고 가며 슬슬 내려줘야 할 분위기가 되어서 어떤 질문을 했어요. 매우 기분나쁘고 멍청한 질문이었지만...당시엔 그걸 몰랐어요. 아마 이 녀석이 인간적인 호감을 내게 가져줄 일은 없을 것 같다...라는 마음 또한 작용했던 것 같아요.


 '네가 밖에서 만나주는 남자들은 사이즈가 어느 정도야?'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서 Q의 얼굴을 보니 Q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지금 이 질문이 Q의 무언가를 건드려놨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어요. Q의 얼굴이 상당히 험악해졌다가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걸 보며 '지금 한 번 참은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기준으론, 솔직이 좀 의외였어요. Q라면 '최소 200억'이라거나 '부동산은 빼고 100억'같은 구체적인 금액을 말할 줄 알았거든요.


 Q가 신논현 교보타워에서 차를 왼쪽으로 꺾으며 물었어요. '그딴 건 왜 물어봐?'라고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했어요. 솔직이 이때는 질문 자체가 기분나빠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 질문을 할 주제가 안 되는 사람이 그 질문을 해서 기분나빠하는 건지도 감을 못 잡고 있었어요. Q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돈으로 나 후릴려는 애들 존나 많은 거 너도 알지?'


 Q가 존나라는 말을 사용한 게 매우 신경쓰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그렇다고 했어요. 본 것도 있고, 직원들에게 Q의 전설에 관한 얘기도 몇 가지 들었으니까요. 더이상 Q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있어서 '그럼 뭐...돈은 중요하지 않다 이거야?'라고 물어봤어요. 물어봤다기보단 그냥 이 침묵을 깨고 싶어서 해본 소리였어요. Q가 이제 와서 돈 따윈 중요하지 않다...나는 사람만 본다고 말할 인간은 아니잖아요. 메르헨도 아니고.


 

 9.Q의 대답은 이거였어요.


 '난 돈 없는 애들은 안 만나. 나 만나려면 돈은 어느정도 있어야 돼. 그런데 은성아, 그건 기본이다?'


 뭐...이 말은 뻔한 소리예요. 현자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벌써 여러 번 들은 소리기도 했어요. 이미 비웃음과 비아냥이라는 방패로 여러 번 튕겨낸 그런 말이었죠. 하지만 지나가는 중딩 여자애도 할 수 있는 이 소리를 이번에는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어요. 이미 여러번 들은 소리인데 Q라는 메신저의 입에서 나오자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시지가 된 거죠.


 휴.


 사실 나는 돈이 많으면 성질은 더러워도 되는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아마도 그게 틀린 건가보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남자에게 돈은 많아야 한다...하지만 그것은 최소조건일 뿐이다라는 Q의 말을 들은 후에는요.


 

 10.어쩌다 보니 Q는 그냥 방배역까지 나를 데려다주게 됐어요. 방배역까지 거의 왔을 즈음에 Q는 한숨을 쉬며 '너 카톡 달라고 말 안할 거지?'라고 말하고 번호를 찍게 폰을 달라고 했어요. 나는 사귈 것도 아니고 친하게 지낼 것도 아닌데 됐다고 했어요. Q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고 물었어요. 나는 '내가 그럴 급이 안 되잖아. 우리 둘 다 아는 거 아냐?'라고 대답했어요. 왜 이렇게 대답했냐면, 사실이니까요. 뭐 우리 모두 사실을 좋아하잖아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렇겠죠?


 Q는 처음엔 어깨를 좀 떨다가 목구멍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냈는데 그건 처음엔 '끅끅윽'처럼 들렸어요. 그러다가 웃음보가 터졌는지 마구 웃은 뒤에 뭔가 기쁜 듯이 '아 미친 진짜 개웃겼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음...정말 많이 삐졌나보다.'라는 말을 덧붙였어요. 


 Q는 맥도날드를 조금 지난 언덕 앞에 차를 세웠는데 아직은 잘가라는 소리를 안 하고 있어서 뭔가 재밌는 이벤트라도 있나 싶어 그냥 앉아있었어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요.



 11.Q가 생각을 정리하며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다가 입을 열었어요. '너 그때 그것도 엇나간 거지?'라고요. 사람들의 말을 잘 짐작하는 편인데 뭘 말하겠는지 알 수 없어서 그게 뭐냐고 되물었어요. Q는


 '내 가게에서 만화주제가 틀어놓은 거 그것도 삐져서 삐딱한 짓 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라고 했어요. 이건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어요. 한데 그건 만화주제가가 아니고 베이비메탈이라고 말해주려다가, Q에겐 어차피 그게 그거일 것 같아서 말았어요.


 휴.


 뭐 어쨌든 Q는 결국 내 카톡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넌 기싸움하느라 어차피 선톡을 안할 테니 자기가 먼저 한다는 카톡을 보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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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면 알겠지만 글은 꽤 길게 썼는데 시간 자체는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어요. 사실 이것도 너무 길어져서 나눌까 하다가 고작 몇시간사이에 일어난 일을 여러 번에 걸쳐 쓰기가 좀 그래서 몰아썼어요. 


 이제 이 시리즈는 거의 끝났어요. '이 다음에 어떻게 된 거지?'라고 궁금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떻게 된 건 없어요. 이전 글에 썼듯이 어떻게 되었다면 아예 이 글은 쓰여지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소소한 친분을 쌓긴 했지만 손님이 아닌 나를 Q가 밖에서 만나줄 리는 없기 때문에 그건 친분이라고 부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죠.


 말했듯이 이 시리즈의 테마는 통찰하는 힘에 관한 거예요. 뭐...나는 주관식문제같은 유형의 사람은 아니긴 해요. 이미 여러 개의 예제가 있어서 그냥 찍다 보면 맞출 수 있는 객관식문제 같은 사람일 뿐이죠. 휴. 나를 통찰해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딱히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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