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2016.02.13 05:20

김감자 조회 수:999

그녀와는 이제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첫 편지를 그저께 보냈어요. 


저는 편지 세대가 아니어서 그게 참 아쉬웠어요.

초등학교때 피씨가 보급되었고 중학교 올라갈 무렵에는 모두들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편지를 쓸 이유가 없었죠.

추억의 버디버디도 있었네요.


메신저나 문자는 글이라기보다는 말에 가까워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진심을 전하기에도 마땅찮고.

저는 말보다는 글을 좋아해서. 조금 늦게 태어난게 아쉽죠.


우체국에서 우표 오십장을 샀어요. 

늘 지나다니던 길에 우체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가는데 삼사일, 답장이 온다면 오는데 삼사일.

주말을 끼면 열흘 정도가 걸립니다.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늦는 거.

별을 보는 것처럼 과거의 너와 대화하는 거죠.

분초를 다투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되고

글은 들뜬 마음만 가지고는 쓸 수 없으니까, 차분해야하고

헛소리도 덜할 수 있죠.

편지는 뜯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상상하게 돼요.

그는 편지를, 나는 편지를 읽을 그를.

화면의 폰트와는 달리 손글씨가 가지는 매력도 있구요.

다만 등기가 아닌 경우에 중간에 분실할 위험이 있는건 아쉽죠.

중간에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녀가 학생때 편지를 썼는데 상대가 받지 못했다고,

그게 걱정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편지에 일련번호를 적기로 했죠.

1번 2번 3번. 가끔 두통 쓴 것 처럼 보이고 싶을때는

하나를 건너 뛰는 거죠. 칠번 다음에 구번. 

그러면 한통만 쓰고도 두통을 보낸 효과가.

물론 그렇게는 하지 않을거라고 얘기했습니다. 흐흐.


생각난건데, 제가 그녀에게 반한 첫 계기가 분실에 있어요.

그림을 올리고 거기에 그녀가 덧글을 달았는데

당시 광고쟁이들이 덧글로 불법도박 광고를 했죠.

숫자와 기호가 섞인, 어디로 놀러오라는 그런 광고요.

그녀는 광고를 패러디해서 덧글을 남겼는데 

게시판 관리자가 그걸 광고라고 생각해서 지웠어요.

지워져서 완성된거죠, 그 메시지는.

그게 두고두고 생각이나서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가 좋아하게 됐죠.


그니까 중간에 사라진다고 걱정이 되지는 않아요.

사라진 만큼 궁금함이 커질테니까요.

매력은 궁금한 것에서 나타나니까.

그러면 저는 편지가 딴길로 새기를 바래야할까요?


그보다는,

모두 좋아하는 사람과 편지 쓰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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