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후기] 1st. 오이디푸스 왕

2012.11.12 16:06

brunette 조회 수:3411

 

 

지난 토요일 오전 첫번째 희곡모임을 가졌습니다. 희곡을 소리내서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모인 분들이 저까지 열 명. 연극대본이나 낭독에 대한 욕구를 이제껏 드러내놓질 않아서 그렇지 다들 마음 한 켠에 품고 계셨던가 봅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아서 '이거, 연극해도 되겠네' 싶었지만, 여러 배역을 골고루 읽어보고 싶어서 그냥 한 대사씩 돌아가며 읽었어요. 다들 초면인지라 처음엔 얌전히 읽어나갔는데 상황이 휘몰아치듯 전개되는 후반부에 가서는 조금씩 감정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학교 졸업한 후로는 애한테 동화책 읽어줄 때 빼고는 입으로 책 읽을 일이 통 없었는데, 다 큰 어른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천년 전 그리스 사람이 쓴 글을 소리높여 읽는 드문 경험을 했네요. 아무래도 어색하더군요.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하겠습니다.

 

다음은 오이디푸스 왕을 읽은 후 나눈 이야기들을 제 멋대로 가감해 적은 것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셨던 분들께서는 읽어보시고 이건 좀 다른 것 같다라든가 이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든가 하여간 어떠한 것이든간에요, 댓글이나 쪽지, 메일로 피드백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이하 글에는 스포일러(이런 고전에 이런 표시하는 것도 우습지만. 오이디푸스가 자기 아빠 죽이고 자기 엄마랑 섹스하는 거 모르시는 분?)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뿐 아니라 [안티고네]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영화 [그을린 사랑], 한태숙 연출의 연극 [오이디푸스]와 음악극 [더 코러스] 관련 얘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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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이디푸스 왕은 타이틀롤이긴 하지만 주인공 같지가 않아요. 과연 그가 자기 의지로 행동하는 건가요? 그는 운명, 신의 뜻 혹은 어떠한 알 수 없는 것에 따라 행동하거나 그것을 반영하는 도구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장기판 위의 말과 같다는 뜻인가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큰 틀이 있고 인물들은 그 틀에 반항할 수도 손을 쓸 수도 없는데 그때 어떤 힘이 작용하고 그러면 오이디푸스나 이오카스테는 거기에 따라 반응하다가 또 다른 충격이 탁 가해지면 또 그에 반응하고 복종하기만 할 뿐 자기들의 뜻이나 감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그들이 인간처럼 보이질 않아요. 인간이 아니라 인형 같아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가공한 가상의 인물들이라 어차피 작가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긴 하죠.

-심지어 어떤 작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쓰기도 하잖아요. 등장인물들의 의지고 뭐고 그냥 신의 이름을 빌어 내 맘대로 끝!

-작가가 보여주고자 의도한 게 작중 인물들의 의지가 아니라 무력함이나 나약함인 건지도 모르죠. 한태숙씨가 연출한 [오이디푸스]에서도 보면, 오이디푸스를 남성답고 강인한 최고권력자로 묘사하지 않고 상당히 나약한 인물로 그리는데 연출도 훌륭했고 작고 마른 배우가 연기해서(연기도 잘하셨고) 그런 해석도 설득력 있더라구요.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저도요. 그 연극 굉장히 좋았죠! 캐스팅도 배역에 맞게 참 잘 됐고 특히 왕비 이오카스테역을 맡은 배우도 연기를 어쩜 그리 잘하던지!

-그런데 주연맡으셨던 이상직씨 시골 내려가셨잖아요.ㅜㅜ

-왜요?

-농사지으신다고..

-지방에 내려가서 연극하실 수도 있죠.(서울에만 극단 있는 거 아님...)

-밀양에 연극인들 모여 계시기도 하고, 부산-울산 쪽에는 대학로연극만큼 상업적이진 않지만 작품성 있는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자부심도 있고...

-그런데 그분은 아무래도 농사에 뜻이 있으신듯...

-아... (텃밭 가꿔 자급자족하면서 그 동네 애들과 만나 연극하시려나요.. 연극계를 떠난 게 아니고 이 복닦한 서울바닥만 벗어나셨을 뿐인지도..)  

 

 

 

2. "저는 이제껏 이 드라마가 불운 혹은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정해져버린 어떤 것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얘긴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운명보다는 오이디푸스라는 인간이 보입니다. 굳이 모호한 '운명'이라는 단어를 동원하지 않아도 오이디푸스의 불행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의 기질이나 행위 속에 이미 그 불행의 씨앗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애초에 시답잖은 이유로 사람을 셋이나 죽인 살인자잖아요? 현대극이었다면 그는 그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이미 시달리고 있었을 텐데 이 연극은 기원전 그리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즉 아직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나 '인권' 개념이 있던 시대가 아니고 오직 내 혈족, 가족, 부족 등의 안전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그가 죄책감에 울부짖는 시점은 자신의 행위가 "내 아버지"를 죽인 거고 "내 어머니"를 범한 거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살인은 그 자체로 죄고, 그 살인을 행한 건 신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자신이죠."

 

-그런데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그러니까 마차 지나가니 길 비키랬는데 얘가 안 비키니까 지팡이 좀 휘둘렀다가 재수없게 맞아죽은 라이오스 왕 말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테바이 왕국 길목에 앉아 사람들을 잡아먹고 땅을 황폐하게 했던 스핑크스는 라이오스 왕이 소년을 강간한 벌로 헤라 여신이 보낸 괴물이라고 하지요. 자, 뭔가 대를 이어 피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유전자의 힘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요? 한마디로 부전자전인 것 같습니다.

-둘 다 몹시 급한 성정이죠. 아니, 사태를 얼마든지 덜 그로테스크하게 수습할 수도 있었잖아요? 신탁을 받아온 신하가 '안에 들어가서 아뢸까요?'하는데 아니라고, 굳이 사람들 앞에서 말하라고 해서 덩달아 자기도 라이오스 왕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고 저주하리라고 공언하게 됐죠 그땐 그게 자기 얘긴 줄 몰랐으니까.

 

 

 

3. "무슨 호러물 같기도 해요. 굳이 그렇게 자기 두 눈을 찔러야 했을까. (-것도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찔러 피투성이가 된 눈알들이 굴러 옷자락을 피로 적시게 해야 했을까..) 그건 그렇게 과도한 형벌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런데 그 고통을 직시하고 내가 살아남아 어떻게든 그 죄과를 갚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그 고통 앞에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겠다는 것, 도망가는 걸로 보였어요. 물론 이오카스테 왕비는 아예 목을 매달아 버렸지만. 그에 비하면 오이디푸스 왕은 그래도 살아서 그 오욕을 견뎠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더 살아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영화 [그을린 사랑]도 오이디푸스 모티브를 차용한 영화인데 거기서도 결국 자기가 자기 자식의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엄마가 죽음을 택하게 되죠. 그 배우도 참 연기를 잘했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격렬하게 울부짖는 모습을 잡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얼굴 클로즈업을 하는데도 고통이 느껴졌어요. 좋았던 게 그 엄마가 죽기 전에 자신의 아이들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 거.

-근친상간이 고대이집트 같은 나라에서는 이렇게 죄로 받아들여진 것 같지 않은데, 시대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나요? 하여간 근친상간이나 스핑크스에 대한 생각들이 이집트랑 그리스에서 서로 다르네요. 

-이집트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맺어지는 사례는 없잖아요?

(자기 딸이 죽은 아내, 즉 딸의 엄마와 닮았다는 이유로 딸과 결혼하겠다고 난리치는 아빠 나오는 동화 당나귀가죽 떠오르네요. 역대 동화 속 공주 중 제일 불쌍한듯.)  

-그 엄마들의 고통을 짐작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는 그래도 그런 문제상황을 아이들한테 가장 덜 피해주는 방식으로 수습하려고 애쓰는 부모가 나오는 이야기도 읽고 싶네요.

-그렇게 자해한 이후에 그는 아직 어린 딸(안티고네)에 의존해 살아가게 됐잖아요. 정말 어린 소녀였을텐데...

-그 뒷 얘기인 [안티고네]도 읽어보고 싶네요.

 

 

 

4. "그래요. 다음번엔 그걸 읽죠. 그런데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라고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에 쓴 이 작품의 속편이 있더라구요. 저는 오이디푸스가 어리석고 성급해서 스스로 파국을 자초하는 말썽많은 인물이라고 보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막판에 자신이 저지른 행동들의 의미를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간 행위는 높이 평가하거든요? 보통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까요? 자기만의 비밀이라면 호기심으로라도 알고 싶을 수 있는데, 이미 아이를 넷이나 낳은 상황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어둠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건 무모하긴 해도 용기는 용기라고 봤어요. 그 결과가 자기 가족 모두를 파멸로 끌고갈 것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죠. 이오카스테처럼 자살하거나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자기 혀를 자르지도, 즉 침묵을 선택하지도 않았어요. 그는 왕위, 재산, 가족, 명예 등 모든 걸 잃을 것을 감지하면서도 계속 나아갔고 그런 태도를 지닌 이들은 사회적 기준으로는 다 잃더라도 영적인 차원(그런 게 있다면) 혹은 내면적으로는 보통 구원받던데 이 연극은 파국으로 끝이 나서 마지막 장 읽으면서 저는 '어, 이게 이렇게 끝날 이야기가 아닌데..' 싶었어요. 그런데 있더라구요. 속편이. 그것도 작가가 죽기 직전에 쓴 글! 유명한 건 초기작인 이 [오이디푸스 왕]이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저는 인간이 한 생애를 살고 나서 마지막에 뭔 얘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서 [안티고네] 다음에는 이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 앞에 끌려와 추궁당하는 장면에서 '네가 나를 이토록 모함하고도 그 벌을 면할 줄 아느냐' 하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벌써 면했소이다. 내 진리 안에 내 힘이 있기 때문이오."하잖아요. 그때 '사실'이나 '진실'이란 단어 대신 '진리'라는 말을 한단 말예요. 그 부분이 특이했어요. 진리는 팩트나 진실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고 구원과 연관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도 오이디푸스가 '그런 말을 하고도 언제까지나 무사하리라고 믿는 게요', 하니까 "물론. 진리에 어떤 힘이 있다면 말이오."하구요. 그냥 뉘앙스 차이 정도일 수도 있고 혹은 천병희 선생이 선택한 번역어일 지도 모르지만, 일단 소포클레스가 '진리'라는 단어를 쓴 거라면요, 이 작품의 주제를 단순히 가족 간의 막장드라마 이상으로 해석해도 될 거 같아요. 물론 이천 년 넘게 내려왔다는 거 자체가 이미 통속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겠지만요. 저는 후반부에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는 태도에서 모든 것을 걸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이 작품에서는 파멸했지만, 아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해설 앞부분을 잠깐 보니까 결국 구원받는다더라고요. 구원이 단순히 죽음의 다른 말일지 아니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 때의 그 구원을 말하는지는 읽어 봐야 알겠지만.

 

 

 

5. "오이디푸스가 용기있다거나 구도자 같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저라도 그럴 것 같거든요? 아니, 안 궁금해요들? 전 너무너무 궁금할 거고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내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요. 그건 용기도 뭣도 아니고요. 알아야죠. (-비행기 추락할 때, "지금 추락중"이라는 기장의 방송을 반드시 듣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거 모르고 그냥 가고 싶은 사람이 있대요..) 전 반드시 듣고 싶어요. 아니, 최소한 내가 왜 죽는지는 알고 죽어야지! 물론 인생이란 걸 다 알고 살아갈 순 없는 거고, 모르고 그냥 갈 수도 있는 건데 전 예전부터 제 운명 같은 게 궁금하더라구요. 이십대 초반 무렵부터도 제 인생이 어떻게 될 건지 정말 궁금해했어요. 여러분은 안 그러세요?"

 

-자, 이 자리의 유일한 이십대 초반이신 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화들짝) 네? 아.. 저는..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인생 살게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렇게...

-그래, 그게 맞는 생각이죠. 이제 와서 보니까, 그렇게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살면 되는 건데.

-그리스 고전비극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혹은 너무 옛날 이야기라 와닿는 게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읽으니까, 몰라, 이게 번역자가 읽기 쉽게 현대어로 손질해놔서 그런 건가, 하여간 지금 우리 시대에도 별 위화감 없이 잘 읽히네요. 나이들어 읽어서 그런 건가, 인물들이 더 확 다가오구요.

-그죠. 남 얘기 아니고 우리 얘기, 내 얘기.

-맞아요.

-나이드니까 좋은 게, 아니, 아직 충분히 젊지만, 예전엔 어렵고 거리감 있게 느껴지던 작품들이 더 잘 읽힌다는 거. 제가 듀게 24601님이 진행하시는 독서모임에서 자본론, 예, 그 자본론이요, 읽거든요? 워낙 유명한 책이니 아마 제가 이십대 초반에도 한번쯤 들춰는 봤을 텐데 어휴, 백오십년전 독일 남자란... 하고 바로 덮었을 거에요. 그런데 사십 다 되서 읽으니까 어, 읽히는 거에요. 제가 주부인데요,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을 십 년 넘게 하고 그 책을 읽어서 그런가? 그게 남 얘기가 아니라 제 얘기로 읽어지더라구요. 재밌어요. 

 

 

 

6. 대사 주고받는 거 보고 놀랬어요. 요즘 사람들 얘기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 얘기는, 그럼 현대인들과 다른 '옛날 사람들의 대화'라는 게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신단 말씀인가요?

-낡고 진부할 줄 알았는데 옛날 분들도 그냥 우리처럼 얘기하고 살았구나 했죠.

가령, 다음과 같이 탁탁 서로 주고받는 대화. (물론 저렇게 요즘 구어로 쓰이진 않았고 적당히 제가 윤색.)

'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 자라고? 와, 내가 이 따위 말을 듣고도 참아야하나? 야, 썩 꺼져!'

'당신이 불렀으니 왔지, 내가 내 발로 왔겠어?'

'이 바보같은 놈! 이렇게 바보인 줄 알았으면 불렀겠냐!'

'당신한텐 내가 바보로 보이겠지만 당신 낳아준 부모한텐 내가 현자였을 걸.'

'뭐? 누가 날 낳았는데?! 거기 서. 누가 날 낳았지?'

'바로 오늘이 그대를 낳고 그대를 죽일 것이오.'

'온통 수수께끼 같은 모를 소리만 하는군.'

'수수께끼 푸는 건 당신이 도사잖아(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 풀고 떠돌이 길손에서 왕이 되었음을 비꼬는 말)'

-부부 간에 주고 받는 대화도 뭐 저희 부부 하는 얘기랑 비슷하더라구요.

-네?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를...?

-아니, 부부싸움 할 때...

-번역자가 현대적으로 손 본 거 아녜요? 옛날 번역본으로 봐도 이럴까요?

-제가 옛날 책으로 있는데요, 말투가 옛스럽긴 한데 내용은 비슷.

-예, 문장의 디테일을 떠나 내용이 사람 사는 거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한갑다 싶더라구요.

-크레온 있잖아요. 오이디푸스 처남. 그 사람이 반역자로 의심받자 하는 말, '제가 지금 권력순위가 우리 누나에 이어 3위인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도 최고권력자로서의 두려움이나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되는 세상 편한 자리에 있는데 뭣하러 그러겠'냔 얘기도 요즘 사람 생각 같았어요.

-다시 한번 질문드리지만,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요즘과 다른 생각과 말을 갖고 살았다는 말씀?

-아.. (멍청이 도 트이는 소리. -->요 멍청이는 접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서는 되게 꽉 막히고 완고한 최고권력자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또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더라구요. 동일 인물의 같은 기질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여지는구나, 그런 양면성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 정말 [안티고네] 읽어봐야겠네. 궁금하다.

 

 

 

7. 코러스 부분이 상당하잖아요. 해설 정도가 아니라 극의 진행에 개입하고 주요 등장인물만한 분량이 주어지구요. 현대극으로 옮긴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이런 코러스 부분들을 다 살리던가요, 아니면 줄이던가요?

 

-제가 본 연극에서는 다 살렸어요.

-어떻게요?

-담이 있고 그 담을 번갈아 오르면서... 대중들의 목소리처럼(? 이 부분은 제가 잘 기억이 안 남.)

-제가 본 [더 코러스]란 작품에서도요. 누가 재밌는 거라고 보러 가자길래 제목만 보고 저는 무슨 뮤지컬 얘긴줄 알았는데 오이디푸스더라구요. 지금 읽은 대본에서는 코러스가 좌1,2,3, 우1,2,3 이렇게 나오지만 그 무대는 그냥 둥그렇게 원형으로 코러스가 에워싸요. 하나의 틀처럼요. 그리고 극 마지막에 두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그 원을 뚫고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가로질러 걸어나가죠. 인상적인 퇴장이었어요.(이것도 정확하진 않은데 대략 이렇게 이해했음)

 

 

 

8. 비극은 관람자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더 다가오는 것 같아요. 괴로울 때 희극을 보고 싶진 않더라구요. 이렇게까지 말하면 좀 치사한 것 같지만, 내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무대 위의 당신보다는 내가 좀더 나은 것 같아, 이러면서 위로받는가봐요.

 

-부부사이 안 좋을 때 부부동반모임 나갔다오면 좀 위안이 되죠. 우리 부부만 불행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자식 때문에 속상할 때 학부모모임 나가도 비슷한 효과 있고. 아,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런 데 나가면 남편 자랑, 자식 자랑 하지 않아요?

-그런 말로 감춰지지 않는 거죠. 누구나 불행 한 두가지쯤은 갖고 있는 법이고, 그건 마주보고 대화하다보면 아무래도 느낌이 오죠.

내가 너보단 사는 게 좀 낫지라는 뜻이 아니고, 남들도 최소한 나만큼의 불행은 갖고 사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좀 견딜만하달까요. 나만 특별한 게 아니고 사는 게 원래 이렇구나 싶은. 불행할 땐 나와 남들의 다른 점이 자꾸 눈에 들어왔는데, 살만해지니까 이제는 남들과 나의 비슷한 점들이 보여요. 인과관계는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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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읽는 데 두 시간 가까이 걸렸고 잠시 쉬었다가 한 시간도 채 못 되게 소감 나누고 끝낸 자린데 나온 얘기들 정리하다 보니 꽤 되네요. 위에 적은 것은 제가 적고 싶은 얘기 위주로, 그러니까 주로 제 견해를 위주로 멋대로 편집한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버전의 후기를 가지고 계시겠죠. 궁금하네요.

 

실은 자리가 저기서 바로 끝난 것은 아니고 몇 분은 남아서 점심으로 라멘을 들면서 좀더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적자면. 

 

 

9. 결혼과 출산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사십대에 이르면 멘탈체계는 여전히 이십대 혹은 삼십대초반의 것을 유지할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그런데 저 자신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는 좀 어려워해요. 결혼과 출산 필터 말고는 사십대 여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자꾸 자기들이 아는 인식툴로 날 보려고 하는데 거기에 제가 잘 안맞으니까요. 예전에 저희 부서에 비혼여성이 많았는데 다른 부서 상사는 저희 상사한데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어요. '부하직원들 어서어서 결혼시키지 않고 뭐하냐'고요. 후배들이 저한테 그래요. 그래도 언니가 잘 살아줘야 우리가 편한 거라고. 그럼 내가 그러죠. 싫어! 아니, 내가 왜?! 나한텐 아무도 그런 모델 안 되줬는데?

-근데 정말 그렇게 잘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만 해도 남들이 저를 볼 때, 이십대 초반, 여성, 어린 학생 뭐 이런 틀에 맞춰서 해석하는 거 싫거든요.

-저도요. 님께서 잘 살아주시는 게 가정주부인 저한테도 좋은 일 하시는 거에요. 저도 아줌마, 주부, 애엄마, 뭐 그런 식으로 요약되는 거 되게 싫거든요.

-아, 뭐야!!

 

 

 

지하철 타고 집에 가면서 마지막으로 나눈 얘기.

 

 

10. 제가 같이 독서모임 하는 분들 중에는 오십대, 육십대, 심지어 칠십대도 있거든요. 모두 우리가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노인'이나 '아줌마' '중년' 뭐 그런 부류에 들어맞지 않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너무들 쉽게 그냥 그렇게 요약하죠. 실제로는 이렇게 다양한데.

 

-우리나라 인구가 어떻게 보면 적은 거라 그들이 하나의 소비시장을 이룰 만큼 그 정도로 집단을 이룰 만큼 그 수가 아직까진 많질 않아 그래요.

-아,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2만밖에 안 되는데...

-아! 그건 그렇죠. 무슨 말인지 알겠... 

 

...하시는데 아쉽게도 내릴 때가 다 되어 대화는 거기서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제 후기도 여기서 마칩니다. 담에는 좀 짧게 해야지.

 

 

네, 이렇게 첫번째 희곡읽기 모임을 마쳤습니다.

다음번 모임에서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을 예정이고,

11월 24일 토요일 12시에 합정역 카페갤러리 소소에서 합니다.

한 두분 정도 더 오셔도 될 것 같으니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세요. brunet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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