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30 21:43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파는 음식으로는 우래옥의 김치말이, 평양면옥의 만두국, 은주정의 김치찌개, 동북화과왕의 양고기 추가한 마라탕입니다. 양산의 우정식당 된장찌개라든지,부산 명물횟집 회백밥이 또 이런 음식이죠. 대체로 오래 된 음식점에서 파는 대표 음식들이에요. 이런 집들은 음식맛도 서비스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어서 언제 가도 비슷한 맛을 내줍니다.
최근에 이 리스트에 편의방의 찐만두, 이품(이품분식 아닙니다)의 군만두가 올라갔어요. 특히 편의방 말인데, 여기 사장님 내외분이 좋으셔서 더 자주 갔거든요. 저는 늘 서빙하는 사람들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요. 의사소통이 잘 되면 어쩐지 조금 모자라는 서비스나 환경도 이해할 수 있어요. 여기가 지금처럼 붐비지 않았을 때, 전화로 물어보니 예약도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명 일곱시요, 하고 말하니까 사모님이 예, 알았어요, 하고 전화번호나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끊는겁니다. 그 시간에 (사실은 차 막혀서 이십분 늦겠다고 미리 전화드리고) 가보니 문 앞에 서너명이 대기중인데, 두 명 자리가 아니라 네 명 자리에 세팅이 척하니 되어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름도 성도 모르는 두 명이 올 거라는 걸 믿고 이미 온 네 명이 있는 데도 기다리신 겁니다.
그 날 친구와 술과 음식을 얼마나 먹었던지요. 마지막엔 찐만두 스무 개를 포장하여 싸갔는데, 그걸 처음 맛 본 사람이 그자리에서 술안주로 열여섯개를 먹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집 만두 아주 큽니다)
그런데 수XXX회의 여파로 이 찐만두를 먹기가 아주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예약도 받지 않고, 또 포장도 안 된답니다. 방송 직후에 지나가면서 보니 떡하니 "줄서면 팔지 않습니다" 이런 문구가 문 옆에 붙어있더군요. 헉. 그러니까 슬쩍 들러서 자리 있으면 먹고 가고, 줄 서서 기다렸다 먹지는 마라, 이런 말이지요. 그래도 사람들이 줄기차게 수십미터씩 줄을 서니까 그 글은 사라졌습니다. 더 팔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장님 내외분 모습은 여전합니다. 줄 선 사람들한테 우리 이제 좀 있으면 마감이라 문 닫을 거야, 못 먹을 수도 있는데 (그냥 기다리지 말고 가시라구요) ...
여기 찐만두 정말 맛있어요. 날마다 편차가 약간은 있는 것 같은데 정말 훌륭해요. 저는 짜게 먹는 편인데 이 집 만두는 좀 심심하거든요. 그런데도 평양면옥 냉면 같은 그런 심심한 중독성이 죽입니다. 배추와 돼지고기와 생강과 참기름의 향의 절묘하고, 거기서 나오는 육즙도 좋구요. 또 그 만두피가 최고입니다. 잘 된 날은 정말 피가 있다는 걸 의식하기도 전에 속과 환상의 조화를 이뤄 꿀떡 넘어가요. 좀 덜 된 날은 약간 딱딱하지만요. 바로 만들고 바로 쪄와서 그런가봐요.
이런 집들이 정말 오래오래 이대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사모님 사장님도요. 내공을 보니 사장님이 필시 어디 다른 데서 만두를 빚으신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요.
2015.09.30 22:24
2015.09.30 22:30
2015.09.30 22:52
사장님 사모님도 감동이고 거기에 감동받은데 그치지 않고 술과 음식, 거기다 찐만두 스무개까지.. 마크님도 감동이네요.
이런 분들로만 예약을 받는다면 시간 좀 늦고 줄 선 사람들한테 볼멘소리 좀 듣는다한들 어때요.
신뢰란 주고받는 겁니다.
2015.09.30 23:46
어머나 그런 사연이.
올초에 연남동 투어를 하다가 편의방은 전혀 생각지 않은 데서 발견하고 좋아라 하면서 만두를 포장해갔어요. 부드럽고 담백하고 한국 만두와는 살짝 다른 느낌이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었네요.
사람 입맛이 각각인지라 맛있게 먹었지만 전 마크님 정도의 감동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런 사연이었다면 전 마크님보다 더 편의방을 좋아했을 거 같아요. 저도 서비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요. 맛있다고 하는 곳 찾아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그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란 건 별로 못느껴봤지만 그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서비스는 있거든요.
2015.10.01 00:26
편의방.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나는 가게군요.
오늘 그쪽 골목길에 평소 안보이던 줄이 서있길래 뭐지? 하고 지나갔는데...
방송만 타면 몰려드는 사람들 개인적으로는 참 이해가 안갑니다.
2015.10.01 00:27
2015.10.01 09:40
아주 한국 가고 싶게 만드는 게시물이군요... 흐음... 일단 스크랩해 둡니다. 공력 있는 가게들이니 한두 해 안에 닫지는 않길 바라며.
2015.10.01 12:46
편의방 한번 가보고 싶은데 언제쯤 되어야 사람이 좀 줄어들지...
2015.10.01 13:03
역시 수요미식회는 진짜 맛집 파괴자로군요. 어쨌든 말씀만으로도 편의방 만두는 맛보고 싶어지네요.
2015.10.01 13:06
자주 가다가 수요미식회때문에 가기 힘들어진 집 꽤 있지요.
그런데 tv에 나왔다고 몰리는 사람들 뭐라 하고싶지 않은게..
다른 지방 맛집은 내가 알리가 없고, 내가 단골이 된 이유도 근처에 살거나 회사다니거나 한다는 이유였으니
그런 프로라도 보고 가는수밖에..
그래도 수요미식회는 꽤 유명하거나 뜨는 가게들만 나오니까요..
동네 식당들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 재야에 고수들 많다는거 느껴요.
2015.10.01 17:46
그런데 이 내외분이 호텔식 친절을 보여주시진 않아요, 사장님은 약간 내성적이시라 목소리도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또 가게가 작고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처음 가면 뭔가 체계적이지 않은 느낌도 있어요.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왜 이 많은 일하는 사람들 중에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그리고, 우리가 만두 먼저 주문한 것 같은데 왜 저기 먼저 나가지? (알고보면 옆에선 이미 첫 번 째 판이나오기 전에 두 번 째를 주문한 것일 수도)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어떻게 다 먹게 된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은 친구와 만두, 요리에 술을 곁들이며 회포를 풀겠다는 마음을 준비하면 더욱 좋아요. 음 친구가 어디 우리가 둘이서 마신 술병 사진을 올렸었는데, 다시 보니 내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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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방 사장님 신동엽 성시경이 하는 오늘 뭐 먹지?에도 나오셨어요. 어딘가 감동을 주는 데가 있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