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버킷리스트에 대한 잡담.

2015.11.22 18:03

쏘딩 조회 수:1091

1.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보면 이런(비슷한) 구절이 나와요. 만국박람회 aka 만박에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어서, 혼자서 머리속으로만 수백 번 수천 번 그 곳의 풍경을 그렸다고요. 네, 그것은 비뚤어진데다 행동력까지 갖춘 만박덕후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대서사시인 것입니다. (뻥)


2.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니. 아직은 그렇게 와닿지 않아요. 뭔가 하고싶은 게 생기면 어지간해서는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거든요. 엄밀히 따지면 발생하지 않은 일들 가운데 현 상황에서 가능한 일들만을 소망하는 거죠. 이를테면 '무수히 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수지와 30초의 아이 컨택 후 불꽃같은 사랑 끝에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같은 걸 바라지는 않아요. 쓰다보니 그거야말로 남자가 평생을 바칠 일이라는 생각은 조금 들지만요. :)

불가능에 가까울정도로 무모해서 지인들에게 '야 이 미친놈아' 소리를 듣는 여러 가지 시도들도 사실은 대부분 이런 맥락이에요. 그 일 자체가 정말 하고 싶었다기보단 이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거든요. 이래서 필리어스 포그는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시도했나봅니다.


3.
그래서 제가 가진 미완의 소망들은 버킷리스트라기보다는 위시리스트에 가까운 것 같아요. 넵. 장바구니요... 대부분 물질적인 거죠.


4.
3달쯤 전에 고급의 놈팽이에서 일반 놈팽이로 진화하면서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동안 갖고 싶었던 듀퐁 라이터와 아우터 한 벌을 샀어요.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오다 유지가 항상 입고 다니던 피쉬테일 M65 야상, 일명 개파카를요. 어떤 도메스틱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모든 오리지널 파츠와 호환이 가능한 복각판을 내놨더라구요.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쯤은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긴 해요. 근데 선뜻 시도조차 못 해보겠어요. 소망이 충족되었을 때의 쾌감보다 목표가 사라졌을 때의 공허감이 더 크더라고요. 두근거리며 기대했던 것에 비해 뚜껑을 열어보니 별 거 없을 때의 그 배반감도 싫고요.

그런 의미에서 피라미드 건설이나 마왕 퇴치, 공주 구출같이 크고 아름답고 원대한 뭔가가 아니라면 당분간은 요원한 일인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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