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15.11.23 15:10

어디로갈까 조회 수:1007

1. 
'당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감정의 파산 상태에 빠져들 때가 있죠.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그와 같은 괴로운 의문이 없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사람을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난 후에야 오는 법이죠. 
그러므로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아서 괴로워진다는 건 그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로부터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비로소 외로움을 면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지.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다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작업과 같은 것 같아요.
아무리 성실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을 거치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되기 마련(볼테르)"이고
아무리 섬세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이란 양탄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일에 불과해서, 모든 무늬는 다 드러나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기 마련 (세르반테스)"이죠. 
 
'그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라고 한탄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그를 읽고 있으며,  한 세계가 저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리니.

 
2.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일인칭 현재 서술형'으로 쓸 수 없는 유일한 동사는 <오해하다>이더군요. 
즉,  과거형으로 "(나는) 너를 오해 했어."라고 쓰거나, 이인칭 서술형으로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 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나는) 지금 널 오해하는 중이야."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죠. 

음. 검색해보니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은 정확하게 이것이네요. .
"잘못 이해하다"라는 동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현재형 일인칭으로 유의미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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