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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Ophelia,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1829~1896, 1851, 캔버스에 유채,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1850, 약관 스물 한 살의 젊은 화가였던 밀레이는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 모자가게에서 점원으로 있던 동갑내기의 한 젊은 여인에게 한 순간에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이 끌림은 이성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술적 창조의 영감으로, 뮤즈에 대한 매혹에 더 가까웠지만요. 이 만남은 밀레이의, 더 나아가서는 그가 속했던 유파    <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오필리아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의 죽음을 형상화한 이 그림에서 밀레이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광기에 차서 죽음에 빠져드는 인간의 한 모습을 물에 떠내려가는 이미지로 형상화 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묘사들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묘사된 그대로이기도 하지만, 구도나 배경 자체는 일반적으로 평면적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미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화가 폴 들라로슈는 이 구도와 동일한 형태로 순교자의 그림을 그린적도 있었고)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독특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부분을 모델이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인물화에서 모델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오필리아에서는 더 각별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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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 편으로, 이 작품은 밀레이가 속한 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유파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기도 합니다. 온갖 나무와 풀로 가득한 강둑과 거기에 핀 꽃들이 모두 식물도감의 도판으로 활용해도 좋을 정도로 정말 정밀하게 묘사되었거든요. 오늘날에도 새삼 화제가 되는 이러한 그림의 정밀성은 19세기의 근대주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자연주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레이가 속한 라파엘 전파형제회의 특징은 낭만주의 사조 안에서 그들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했고, 그 길의 하나로 이전의 중세 미술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었죠. 이것은 지극히 반동적인 경향으로, 이른바 혁명의 시대였던 19세기 유럽에서는 상당히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도 젊은 시대에 갑자기 나이가 잔뜩 들어서 나타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사실 밀레이의 오필리어에는 어떤 낡은 도덕이나 신앙을 추구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는 않습니다. 오필리어는 철저한 아름다움의 추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품이죠. 오직 미적인 완성만이 작품의 전체 의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렇다면 특별한 도덕적 가치도 신앙적 추구도 없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죽음의 아름다운 완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작품이 갖는 딜레마가 잘 드러납니다. 신앙적 믿음 안에서 죽음을 찬양하는 것은 자살을 부추기는 것으로 죄악에 다름 아닌 것이지만, 그것을 예술적으로 추구할 때는 어떤 이미지를 가져야 모순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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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밀레이는 이에 대한 대비를 충실히 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서리 근교의 혹스밀 강가에서 실제로 배경을 스케치하고 자신이 정성껏 관찰한 나뭇잎과 숲과 꽃들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그 특유의 자연주의 기법으로 정면 승부를 벌일 참이었던 거죠. 그는 이 작업을 무려 4개월간이나 한 뒤, 시장에서 화려하지만 유치한 장식이 가득 달린 싸구려 드레스까지 사놓고 모델이 될 여인 그에게 정말 그리고 싶어서 미칠 만큼 영감을 주는 대상 - 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들은 그 동안 그가 받은 미술 교육에서는 전적으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밀레이 이외에도 형제회의 화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전문 모델 보다는 주변의 인물들을 주로 모델 삼아 그렸는데, 이런 모델의 선정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배경이나 소품의 활용 등은 종래의 아카데미 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죠.) 그는 장엄한 역사 장면이나 고전의 묘사 보다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변의 소재로 고전적인 비극적 이미지의 현실화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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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모자 가게의 점원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l 1829~1862). 전문 모델이 아니었던 그녀는 밀레이와의 만남을 계기로 밀레이를 비롯한 라파엘 전파형제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후 형제회의 많은 작품에 그녀가 모델로 등장함을 볼 수 있죠.) 여기에서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을 새삼 얘기하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보다는 그녀의 평범치 않은 인상이 중요하죠. 밀레이를 비롯한 라파엘전파 형제회의 화가들은 그녀가 가진 그 특유의 우수에 찬 표정에 매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 미술 평론가 이주헌 선생의 표현을 빌린다면 - 그런 깊이 있는 표정은 이들 유파가 속한 낭만주의 화풍 특유의 비극적 정서와 부합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녀는 다만 단순히 인상 깊은 슬픈 표정만 짓는 것으로 이들을 매료시킨 것은 아닙니다. 그림의 모델은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모델의 깊이 있는 표정은 바로 오랜 시간 동안 화가가 관찰한 모델 특유의 표정과 감정을 일순간 포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시달은 밀레이가 자신을 그리는 동안 어떤 감정에 휩싸였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 당시의 에피소드를 살펴 본다면 밀레이는 욕조의 더운 물에 그녀를 눕히고 몇 주 동안 스케치를 하면서 오필리아를 그렸습니다. 결국 시달은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발전하면서 항생제가 없던 시절 그녀는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덕분에 시달의 아버지는 딸을 위험에 처하게 한 밀레이를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했죠. (다행히도 병이 호전되어 시달은 곧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런데 시달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밀레이의 모델을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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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화가들은 모두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재원들이었고, 특히 회화에 대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전문 화가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두 중산층 이상 출신의 남자들이었죠. 그런 반면 시달은 서민계층 출신의 여성이었구요. 당시에는 여성 화가들이 아주 드물었던 시대였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여성이 화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됐던 걸까요? 몇 안되긴 하지만 아주 드물게 그 시절에 여성 화가들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8세기에는 프랑스의 궁정화가 비제 르브렁) 그러나 그녀들은 대부분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아주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이어서 교양으로 미술 수업을 받다가 재능을 인정받아 화가가 되는 경우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서민 여성이 화가가 될 때까지 받을 미술 수업의 비용은 대체 어디서 마련한단 말인가요?)

따라서 평범한 모자가게의 점원이 화가가 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시달은 모자가게 점원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당시 19세기 중반 노동환경이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고, 겨우 한 달 버틸 수 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이와 여성들도 하루 15시간, 혹은 잔업이 있을 때는 18시간의 중노동도 마다않고 해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꿈으로 다가왔을지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비록 폐렴에 걸려 죽을 뻔 했었지만 단지 종일 가만히 한 자세로 있어주기만 하고도 모자가게에서 죽어라 바느질 하면서 벌었던 돈의 몇 배를 벌 수 있었죠. 거기다 그녀는 평소 그림에 소질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그녀로서는 절대로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며칠씩 욕조에 눕는 것도 감당할 수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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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시달은 모델 일만 하기에도 주요한 결격사유가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관념에 투철했던 그녀는 누드 모델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엘 전파 형제회가 이런 조건을 수용하자 그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요구한 것입니다.

 

내가 미술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 나도 당신들처럼 화가가 될 수 있게 가르침을 달라. 그럼 당신들의 모델이 되어주겠다.”

 

이 당돌한 제의에 형제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느닷없이 제자가 되겠다는 그녀의 청에 밀레이는 당황하여 수락도 거절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였지만, 밀레이의 동료였던 로제티가 그녀의 제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시달은 모델이자 화가로서 라파엘 전파 형제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라파엘 전파 형제회에는 이처럼 화가와 작품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제회의 화가들이 자신들을 천재로서 스스로 조명하기 위해 이와 같이 자신들에 얽힌 사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한 기록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지요. 그런 한 편으로 이러한 얘기 거리들은 단순한 재미거리 이상으로 그 작품에 그려진 화가나 모델의 심리 상태를 추론해 보는데 적지않은 단서를 주기도 합니다.

 

그 동안 많은 미술 평론가들은 모델이 담은 눈빛과 표정에 대해 광기와 순수가 결합된 이상적인 표정이라고만 해석해 왔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죠.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어는 정확히 그런 감정 속에서 죽어갔으니까. 그러나 이런 일화를 알게 된다면, 그림 속 그녀의 표정이 담은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죽어가는 오필리어를 연기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앞으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레이는, 죽음 속에서도 삶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그런 표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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