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날 부인에게 


부인과 떨어진지 벌써 25일이 지났지만 아직 부인을 생각함이 예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밤 부인을 생각하며 흐느끼던 십여일과 부인의 청량한 목소리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를 생각하던

십여일을 보내고 나니 벌써 그대 있는 곳에서부터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얼마 전 수도에서 뇌인지과학회가 열려서 다녀왔습니다. 

더 고통스러워 해야 마땅한 몸임에도 지적 호기심에 못이겨 가벼이 문밖에 나섬을 용서해주십시오.

부인께서 뇌 과학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기록하여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음을 기억해주시고

오로지 그대를 위해서 그때의 느낌, 생각들을 차분히 이야기 하려 합니다.


같이 갔던 동료는 05학번의 Y군과 그가 사모하는 후배인 D양. 그리고 언제나 작은 눈으로 재밌게 웃는 S군이었습니다.

Y군(27)은 최근에 동대학의 사회심리대학원을 들어갔는데 coin이론이라는 것에 푹 빠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추상적인 이론을 좋아하나 그것을 설명할 구체적 내용은 없어 애를 먹는 모양이더군요. 

D양(22)은 여전히 색감이 좋은 발랄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인지과학회에서 학회지가 왔다며, 고민한 흔적이 

샤프자국으로 남아있는 페이지를 넘기며 제게 설명을 부탁했답니다.

S군(26)은 여전히 행동경제학에 빠져있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얼마전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는데 S군의 

여동생이 S군의 외모가 거의 똑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순수한 S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작은 눈을 볼 때마다 여동생의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가지치기, 신경가소성, 사이코패스형 아동 


 

뇌 인지 과학회를 여는 이야기는 역시나 신경 가소성에서 출발하더군요. 정확한 세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Symposium 1 Understanding minds: How brain interacts with environment & society>


뇌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아 조형된다는 이야기여서 저는 환경에 의해서 신경세포와 그 연결망이 발달하는 쪽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처음에 이야기 한 것은 의외로 가지치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뇌의 신경망이 발달하는 것은 시간에 따라 민감기가 있어서 그 시기에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부인이 알고 계시는 것처럼 어렸을 때는 모든 음소에 대해 지각이 가능한 애기가 생후 1년이 지나면 모국어에서 사용하는 음소

말고는 잘 지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 민감기에 따른 '가지치기'의 영향 때문입니다.


뇌는 발달단계를 거치면서 시냅스 연결망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신경망을 제거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이것은 효율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작업으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시냅스의 수는 줄어들지만 효율성은 올라갑니다. 

이를 가지치기라고 하는데 이 현상을 아동기의 언어 폭력과 연관한 내용이 재미 있었습니다. 


언어 폭력을 당한 아동들과 뇌의 손상 정도를 연결지은 연구였는데, 결과적으로 언어 폭력과 시냅스의 수가 공변했습니다.

3-5세 아동 시기에 언어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해마 부분에, 9 -11세 시기에는 뇌량 부분에, 

14 - 16세 시기에는전전두엽에 손상이 가장 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가지치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지는 알 수 없어도 이것 역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모의 불화를 관찰한 아이들은 시각을 담당하는 피질의 부피가 줄어들었습니다. 부모의 불화를 주로 '들었던' 아이들은 청각을 담당하는

피질의 부피가 줄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차라리 눈이 멀었으며 좋겠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은 시각을 담당하는 피질의 감소를 우리가 듣기 싫은 것을 듣는 것은 청각 피질의 감소를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서적인 충격은 단지 '자아상'과 같은 추상적인 수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저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다르게 조형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게 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부인을 떠나보내고 나서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더군요. 부인은 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오로지 제가 부인에게 드린 고통의 기억을 관장하는 시냅스만이 남아서, 저의 목소리도, 저의 편지도 부인에게 고통만 드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두 번째 연사의 발표가 끝나가고 있더군요.


두 번째 연사의 내용은 사실 조금 뻔한 내용이라 재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런던의 택시 운전사' 연구처럼 자주 훈련하는 뇌의 능력과 관련된 부위가 부피가 증가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이 지루해서였는지, 부인을 생각하다가 느낀 우울감 때문이었는지 발표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첫번째 발표와 두번째 발표에서 가지치기와 피질부피의 증가 등을 이야기하며 신경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고,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 메카니즘, 즉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실험심리학자들이 뇌과학자들에게 하는 비판처럼, 뇌를 찍어놓고 차이가 있음을 보일 뿐이지 어떤 것이 진짜 원인이고

어떤 원리를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발표들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비판하고 논의할 것들이 있었지만 청중의 많은 사람들이 교수들이고 연구자들이여서 학부생인 제가 나설자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는지, 아니면 2만원의 등록 비용을 내지 않고 듣고 있어서 조금 위축되었는지, 이때까지는 질문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발표는 경기대학교의 범죄심리학과의 김영윤 교수가 나왔는데, 조금은 두근 거리더군요. 

범죄심리학도, 뇌과학도 좋아하는 제게 가장 기대되었던 발표 중에 하나라고 할까요.


김영윤 교수의 발표는 전체 인구의 1%는 사이코패스라는 발언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성 인구의 1%라고 알고 있었는데, 출처가 궁금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진화적 관점으로 생각했을 때도 여성에서 공감능력 결여가 된 개체 비율이

남성과 같다는 것은 조금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체 인구 중에 사이코패스의 비율을 계산하는 것도 사실은 불가능한 작업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김영윤 교수가 정의한 사이코패스는 조작적으로 DCL-R, Hair, 1991 검사로 측정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을 이야기하며, 

요인 1은 주로 정서적 결함(공감능력의 결여)을, 요인2는 주로 반 사회적 행동을 측정치로 받았습니다. (둘다 자기보고로 측정함)


주된 논지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한 논문 20개를 메타분석한 결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부위에 손상이 있었으며 

여러 피질부위에서 '정상인'과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두엽 등이 손상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메카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인과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지만 발표는 마치 사이코패스의 뇌가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뉘앙스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앞선 발표 - 가지치기 - 에 따르면 살인이나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서 자기 뇌의 공감능력을 담당하는 부위에 손상을 입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점이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사이코 패스형 아동'이라는 발언을 하더군요.


부인도 아시겠지만 저는 이런 발언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코패스형 인간이라고 해봐야 측정치로 받은 것은 공감능력의 결여와 반 사회적 행동입니다.

이런 특징을 보이는 아동들은 보통 저소득층의 육아 환경이 좋지 않은 아동이나, 학대를 경험한 아동들이지요.


사이코패스형 인간이 유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나, 아니면 두뇌의 결함이 어떤 작용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인지도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공감 능력의 결여와 살인 행위와의 연관성을 당연한 가정으로 깔아둔 상태에서


특정 아동들을 '사이코패스형 아동'이라고 칭하는 것을 듣자니 앞에 있는 강사가 과학 파쇼거나 바보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발표가 끝나기가 무섭게 교수에게 비판을 던졌습니다.


"사이코패스형 아동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뇌 손상이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뇌 손상이 그런(폭력)행위를 초래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으면서

게다가 사이코패스라는 것도 일종의 구성개념일 뿐인데 어떻게 아동에게 이런 이름을 붙일 수가 있는가. 

아니면 혹시 연사는 유전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인가?"


하지만 대답은 비겁했습니다.

'환경과 뇌는 상호작용하니까 물론 인과관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요.' 라더군요. 그리곤 좌장이었던 서울대의 권준수 교수가 나와서 질문을 수습했습니다.

동료의 실수를 무마하려고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사이코패스형 아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부인, 하지만 뇌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그렇게 둔감하다니요!


어쩌면 그떄의 분노는 제가 가지고 있는 둔감함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인에게 했던 행동들, 했던 말들 하나 하나가 사실은 제가 가지고 있었던 둔감함.

네 사랑하는 상대의 권리에 대한 둔감함에서 나왔던 행동들입니다.


저는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의 저주받은 육체와 아픈 뇌의 상태를 핑계삼아 그대를 희생시키고 또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대에게 사랑을 갈구한다는 솔직한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까.


말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현재 뇌 과학은 사이코패스형 인간이라는 확증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단지 뇌에서 차이가 발생하니까 

이런 이런 유형의 인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여러 사람들을 묶어 놓은 개념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개념을 아동들에게 '사이코패스형 아동'이라며 한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해놓다니요.

어떻게 가장 잔혹한 살인자의 뇌를 찍어 나타난 결과를 아동과 비교하며, 그 아동들에게 그 이름을 붙일 수가 있습니까.

만약 이곳이 코펜하겐이나 헬싱키, 아니면 제가 꿈꾸어 마지 않는 빠리였다면 그 발언을 한 학자가 어떤 망신을 당했을 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본 것은 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언의, 합의의 폭력이 대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날이 밝아오는 군요.

저는 다시 저를 쫓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베리에르의 뜨거운 여름 공기가 기억납니다. 부인과 손잡고 걸었던 새벽길의 혼란스러운 뜨거움이 기억납니다.



                                                                                                                                                                    한결같이 부인을 생각하는 

                                                                                                                                                                       쥘리앙 


추신. 벗들의 명예를 위하여 적습니다. 위의 사이코패스형 아동 발언과, 메카니즘을 밝히지 않는 학자들의 태도에 대해

Y군은 저의 뜻과 함께 했으며, 다른 후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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