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2 13:37
'가난까지 상품화'…쪽방촌 괭이부리마을의 눈물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070296&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기사는 쪽방촌으로 유명한 괭이부리마을에 '체험관'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지자체의 계획을 거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내에 나와있는 일화가 참 거시기한데, 주민 중 한 분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유치원 버스 4대가 와서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
괭이부리마을을 '관광'하고, 한 아이가 '공부 열심히 안하면 이런데 산대'라는 말을 한 것을 듣고 얼굴을 붉히셨다는..
뭐하는 짓인가 싶어요.
저는 대학 진학하고나서 '내가 가난한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때까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본격적으로 대학에 가면서 나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은 집 사람들, 특히 부모님의 직업이 그럴싸한 전문직인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인 것 같습니다.
소득분위.. 뭐 이런식으로 정확하게 아는건 아니지만 제 부모님의 경제력은 중산층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거나 (의외로) 중산층이 아닐까? 라고 생각됩니다.
자식이 물려받을 빚이 없고 서울내에 자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일단 저는 (경제적 측면에서) 부모님을 존경해요.
단지 자식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으시고(한국의 다른 부모들 보다는?), 저도 성인 이후(사실 이전에도) 용돈 받아 본 적이 손에 꼽아서
저 개인으로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항상 많이 쪼들려온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특히 대학 졸업 후 취업 - 저축 같은 테크를 타지 못한 예술계 사람이고, 언제나 단기적인 알바자리를 전전하며
월 소득 100과 0을 오가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실제 생활 수준이나 소득 수준의 측면에서도 물론 빈곤하겠지만, 심리적인 가난, 불안감 같은게 더 큰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제 경제적은 불안감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측면이 있는데,
부모님-특히 어머니가 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아끼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안달복달하고, 쓸 것도 안쓰면서 아끼는 사람이라
(학창시절 문제집 사는데 쓰는 돈이나 고등학교 등록금까지 잔소리하고 아까워하는 분이셨어서..)
저도 금전관리 능력은 없으면서 그냥 돈이 부족한것 같으면 마냥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되었든 이것도 풍족하지 못해서 생긴 특성이니 가난에 의한 것이 맞나 싶기도 하구요.
특히 예술계 대학이라는 좁은 사회에 한정하면, 저는 명백히 제일 가난한 사람이 되는데요.
이 때의 기분이 참 묘해요. 지금 전문성을 갈고 닦는 일이 미래의 수익이나 소득을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느긋한 얼굴로 취미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또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학업을 해나가는데
저는 때마다 초조한 기분으로 같은 일을 해나가야 하고..
교수들은 정말 '가난'이라는 것에 관심도, 지식도 없는 이들만을 선발해 둔 것같은 분위기로
제 수준의 가난(?)이 작업이나 미래의 계획(유학이나, 국제 미술제 관람 등)에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거나 도움을 주려고 생각하기 보다
그냥 자연스레 어떤 결격사유로 생각하는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다보니 저는 실제 제 자신이 가난한 정도보다 뭔가 더 억울하고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어 점점 더 비굴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새 일거리를 찾게 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기분이 더 상향세를 타면 부모에게 당연한듯 의지하고 있는 주변 친구들보다 낫다,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으면 된거다, 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건 때때로 제 스스로 저의 '가난(?)'을 차별화의 요소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제가 이런 발상을 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저의 경제적 쪼들림이 되물림과 같은, 피치못할 구조적 상황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기 보다
저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인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좀 해보면, 저 자신의 상황과 기사의 상황을 딱히 연관지으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한 사람의 경제적 어려움 - 가난 - 이 당사자와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느냐를 생각하다가 떠오른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2015.07.12 14:32
2015.07.12 15:09
판자촌이 어떤 감정을 자극하는 그런 정서가 있기는 하죠. 사진 찍으러들도 많이 가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저 구경거리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요즘 사진 동호회에서도 흔하게 하는 말인 듯 했는데요. 성수동인가? 청계천 끝부분에 예전 청계천변 판잣집을 재현한 곳이 있다고는 들었어요. 그런 건 어차피 새로 조성한 테마 공원 같은 거니까 괜찮다고 보지만, 아직도 사람이 버젓이 사는 곳에, 더구나 거주민들의 반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설을 강제한다는 건 정부(지자체도 정부죠)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07.12 17:08
최근 공감했던 단평입니다
2015.07.12 17:29
유치원차에서 우르르...
아이들의 인생에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욕적이네요.
저렇게 아이들을 자기네들 입맛에 맞는 어른으로 만들어가는 거겠죠.
2015.07.12 17:45
'가난'.. 두려워요. 생각만 해도.
마음을 비우고 가난에 녹아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배워서 머릿속이 무지무지 부자라면 견딜 수 있으려나 싶기는 하지만요.
그렇지도 못한 중생은 몹시 불편하고 허덕거리는 생활을 견디어 내야 하잖아요. 아이고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문서 없는 종의 모습으로 회사 일에 매달리다가 밤 늦게야 집에 들어왔답니다.
2015.07.12 18:11
2015.07.12 18:32
"예전엔 가난이 미덕이었으나 요새는 수치가 돼가는 것 같다." 고
김애란의 단편 소설 중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저 체험관 아이디어는 그냥 역겹네요. 체험료 1만원이라니... 뭐하자는 건지.
2015.07.12 18:32
인천 송현동의 달동네박물관인지가 생겼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하필이면 인천시 지역구중에 가장 낙후된 이 곳에 떡하니 "달동네" 이름이 붙은 박물관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맥락에서 기획된 시설인 것 같은데..
가난은 몸과 마음을 좀먹죠. 가난하면 우울해지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지금보다 더 가난해지지 않는, 딱 이정도의 가난에서 멈춰준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플러스 글쓴님의 상황에 대해서, 문화산업 쪽의 공부를 한 가난뱅이(ㅠㅠ)의 심정을 공감합니다. 아둥바둥 돈부터 벌어야 하니 다른 계통으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는데, 궁극적으로 행복하지가 않네요. 저같은 경우는 여기서 조금 지체하거나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부모도 누구도 나를 지탱해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너무 컸어요. 그게 사실 가난의 맨얼굴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안함. 하지만 교수님의 말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감이 드네요. 갖춰져있지 않다고 해서 꿈꾸던 걸 포기하란 법은 없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되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게 마련인데요. 제가 너무 순진한건진 모르겠지만.
2015.07.12 18:57
2015.07.12 20:17
2015.07.12 21:45
네. 제가 살고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몰라도 참 씁쓸합니다. 지자체의 가난은 애초에 복지 감소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이러한 배려 없는 행동까지 더해지니 참.. 뭐하는 짓인가 싶네요.
2015.07.12 20:28
2015.07.12 20:37
교수님 말씀이 무슨 생활이 앞서면 그걸 해결하느라 피곤해져서 정작 목적이었던 예술을 할 여력이 없기 쉽다는 뜻도 아닌 것 같고. 정말 하나 도움도 안되는 말이네요.
2015.07.12 21:04
글쓴님 상황이 저랑 유사해서 공감이 가네요. 물론 보아하니 하고 싶으신 일이 있어서 공부도 그쪽으로 (교수님 이야기도 나오고) 하고 계신것 같아 그 부분은 다르지만. 어쨌든 문화산업 쪽에서 하위층에 머물며 가난인듯 가난아닌 가난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나이만 먹고 있으니...
기사에서 발췌한 아이들 이야기는 솔직히 '얘들아 열심히 공부해도 가난할 놈은 가난해...'라고 얘기해주고 다 같이 절망의 늪으로 끌어당겨주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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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실제 그렇지 않으면 그 깊이를 모르 듯 가난도 그렇죠.
극심한 빈곤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가난하면 가난한데로 살기 마련이기도 해요.
실제 60%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며 산다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