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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에 개봉했던 영화 <크림슨 피크> 개인적으로 이런 19세기 - 20세기 초 배경의 고딕 호러를 꽤나 좋아하던터라 정말 기다려서 봤던 영화였습니다. 물론 결과는...미술이 워낙 뛰어났던 터라 배경이 되는 저택과 인형같이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들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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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미국 뉴욕의 상류 사회에 유럽에서 건너 온 낯선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는 영국의 유서깊은 귀족 가문의 후예로, 준남작이라 상원에 의석은 없지만 여튼 귀족입니다. 최초의 근대 공화국을 세운 나라에 유럽 귀족이라니...여튼 사교계 사람들은 반가히 그를 맞이하고 여주인공 역시 그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시절 상당수의 영국인들이 미국을 조만간 영국에 합쳐질 나라로 봤다는 겁니다.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죠. 공화국과 입헌군주국이 하나가 된다고? 여튼 그런 영국인들의 태도에 미국인들이 엄청 분노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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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히로인은 전통 귀족 가문 사람들을 소작농들이나 착취하는 기생(충) 계급에 불과하다고 일갈할 정도로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도 뚜렷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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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도착한 영국의 대저택 별명이 '크림슨 피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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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엄청난 곳이었죠....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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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의 지붕이 새고 있었거든요!!!! 아니, 그냥 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정이 뜯어져서 하늘이 듬성듬성 보일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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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이 이렇게 몰락하고 집수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진 것에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장인 샤프 준남작이 '발명가'라는데 있었습니다. 아무나 에디슨이 되는거 아니쟎습니까...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가산을 탕진하게 된 결정적 이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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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내 이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심장소리 같더군요. 19세기 산업혁명의 상징이기도 한 기계는 바로 샤프 준남작같은 전통적인 토지귀족들의 몰락을 촉진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했죠. 이제는 귀족들 대신 이런 기계들이 돌아가는 거대한 공장들을 거느린 산업 부르주아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 포스팅을 한 이유는 영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어떤 분이 자꾸 생각이 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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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바로 지난 시절의 영국 총리 말입니다. 이 분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이 없을 테니 설명은 생략하고...실은 이 양반 집안 생각이 났습니다. 영화 <크림슨 피크>의 주 내용이 몰락한 영국 귀족 가문의 젊은이가 미국의 재벌 2세와 결혼한다는 얘기니까요. 처칠 총리의 집안이 바로 영국의 유서깊은 귀족 가문 말버러 공작 가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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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 두 아들과 함께


 그런데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가 바로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의 투자 사업가 레너드 제롬의 딸이었죠. 프랑스 파리의 귀족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를 따라 일찍부터 프랑스에 자주 다녔었는데,  -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제정기였죠 - 어느 날 파리의 궁정에서 러시아 황태자를 위한 파티가 열린 자리에서 파리 주재 영국 대사로 와 있었던 랜돌프 처칠 경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던거죠.( 제니 여사의 어머니가 원했던 사윗감은 프랑스 귀족이었지만 보불전쟁의 패배와 파리 코뮌 사건으로 프랑스 제 2제정이 붕괴되자 할 수 없이 영국 귀족 가문(그것도 둘째라 작위가 없는!)사위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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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당시의 랜돌프 경. 처칠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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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말버러 공작가도 건재하던 시절이라 미래의 처칠 총리의 할아버지는 이 결혼을 무척 반대했었다고 합니다. 그 노인네 표현을 빌리면 " 그따위 천한 미국 여자를 결코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어!" 인데 -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죠? 문득 어렸을 때 읽었던 <소공자>가 떠오르네요 - 사실 제롬 가문은 돈이 많았거든요. 결국 제니 제롬은 엄청난 액수의 지참금을 가져오기로 합니다. 그제서야 고집센 노인이 고집을 꺾고 며느리를 기꺼이 맞이한건...물론 아닙니다. 사실 제니는 혼수를 하나 더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계속 반대하고 고집을 피웠다간 소중한 손자가 사생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노공작은 혼인을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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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공작의 소중한 칠삭둥이 손자 바로 윈스턴 처칠입니다. 어린 시절 모습이구요. 이런 사진들 볼 때마다 진심 궁금해집니다. 사진 찍으려고 저런 포즈를 취하게 시킨건지 아니면 귀족 가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애들을 저렇게 가르치는 건지...평소에도 저러고 다닌다면 참...알밤 한 대 먹이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포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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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ton Churchill aged six in Dublin with his American favorite aunt Lady Leonie Leslie

부모를 따라 아일랜드로 여행갔을 때의 어린 처칠(6세) 이모와 함께(막내 이모 레오니는 아일랜드 귀족과 결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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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우 학교 시절의 모습입니다. 여기선 천진한 아이의 모습이 보이네요. 그런데 미래의 영국 총리는 딱하게도 학업 성적이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안좋은 정도가 아니라 무슨 저능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말 성적이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재수가 없으려니 아버지 랜돌프 경은 이튼 시절 날리던 수재였단 말이죠...윈스턴은 아버지나 큰아버지와는 달리 이튼이 아니라 해로우에 왔지만 여기서도 아버지의 명성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린 처칠은 늘상 수재였던 아버지와 비교당하며 선생들에게 혼나는게 일이었습니다.(게다가 아버지 랜돌프경은 보수당의 중진의원에 정부 각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가였죠. 곧 총리의 자리에 오를 거라는 얘기가 일각에서 오르내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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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우울한 얼굴을 보니 짠하네요. 사실 학교라는 곳이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는 정말 힘든 곳이죠. 게다가 늘 수재였던 아버지와 비교당하는 딱한 미래의 총리 각하께서는 절치부심 노력하여 더욱 더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개뿔.....공부 못한다고 기죽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기세 당당해져서 당신을 혼내는 선생들과 교장들을 엄청 골탕 먹이며 반항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교장 선생의 모자 - 그러니까 실크 해트요. 그 당시 부르주아 신사들이 썼던 모자 말입니다. 그거 엄청 비싼건데 - 를 몰래 가져다가 다 해질때까지 발로 걷어차면서 복도를 쏘다닌적도 있었다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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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로우 학교 기숙사,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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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로우 학교 학생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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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우 학교 학생들, 1937년





여튼 총리 각하께서는 쉽지않은 학창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힘든 시기 각하께 큰 위로가 되는 분이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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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어머니 제니 제롬 여사였습니다. 제니 여사는 이 시절 귀부인들이 그렇듯 사교계 생활로 아주 바쁜 사람이었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아들을 말썽쟁이라고 구박하고 공부못하는 ㅂㅅ 취급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사실 이 시절 편지들을 보면 윈스턴 처칠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고 하는 내용들을 자주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아들이 원하는 만큼 자주 보러 오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윈스턴의 편이 되어주고 "세상에 내 아들만큼 멋진 남자는 없지" 하는 자세로 아들을 대했습니다. 사실 저 어린 윈스턴의 애걸하는 편지 때문에 종종 무정한 어머니라는 얘기도 나옵니다만, 이건 이 시절 상류 사회의 양육 분위기에 대해 무지해서 나오는 얘기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 시절의 귀부인들은 아기에게 젖도 물리지 않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유모가 있어서 아기 양육은 유모들이 담당하는 일이었죠. 아기 시절에는 유모들 손에 자라다가 초등 입학할 나이부터 기숙학교에 들어가는...이 시절 상류 사회 자제들의 전형적인 가정 문화였죠. 반면 제니 여사는 좀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윈스턴에게도 물론 유모가 있었지만 어린 윈스턴을 직접 키우는데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이 시절 제니 여사는 육아일기도 썼는데, 어린 윈스턴에게 철자를 가르친 일이나 잦은 병치레를 기록하는 등 어머니로서 자식 양육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죠. 그러니 해로우에서 윈스턴이 어머니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던 것도 실은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 시절 다른 귀족 아이들은 귀부인인 어머니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윈스턴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어머니 보고 싶다는 편지도 자주 썼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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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드 허스트 육사 시절의 윈스턴 처칠,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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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졸업 후 기병장교로 임관한 뒤




육군 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윈스턴은 비로소 공부에 매진하게 됩니다. 사실 문제가 많았던 학창 시절에도 작문 성적만큼은 일품이었었는데, 이제 특기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 것이죠. 그는 '승마'에 열중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익히는데 사력을 다합니다. 하루에 서너시간씩 승마연습에 투자하면서 유능한 기병장교가 되기 위한 훈련에 매진했던 것이죠. 이렇게 말을 좋아하는 윈스턴의 성향은 일생 동안 계속되는데, 이는 사실 어머니 제니 여사에게 물려받은 것이었죠. 제니 여사는 아버지 레너드 제롬이 승마와 경마에 빠졌던 것 만큼이나 말을 좋아했습니다. 승마에 능한 기수였던 제니 여사는 그 때문에 일생에 재밌는 친구 하나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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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시씨,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께서 영국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황후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공식 순방하는 일정을 갖고 있었는데,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니 여사가 황후폐하를 직접 영접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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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승마중인 엘리자베트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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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황후 폐하께서는 승마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그 실력이 왠만한 기병장교는 제압할 정도였다고...여튼 당시 런런의 상류 사교계 귀부인들 중에는 엘리자베트 황후에게 보조를 맞춰서 함께 말타고 즐길만한 사람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기회가 제니 여사에게까지 돌아왔고,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인 주제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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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대 말버러 공작 조지 스펜서 처칠


이 분들 얘기를 해야겠네요. 처칠 총리의 부모들이야 자기들이 좋아서 결혼한 것이지만 각하의 친척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럼 이제부터 영화 <크림슨 피크>가 연상되는 이 사람들 얘기를 하겠습니다....(물론 영화만큼 끔찍한 얘기는 아닙니다만...) 사진의 저 분은 바로 윈스턴 처칠 총리의 큰아버지입니다. 처칠의 할아버지가 죽은 뒤 공작위를 물려받은 그는 어찌된 일인지 여러모로 주위의 평판이 좋은 편은 못되었습니다. 디즈레일리 총리는 그를 가리켜 '구제불능의 악당'이라는 험한 욕설을 하기도 했었죠. 이 분이 주변 사람들과 왜 이렇게 불화가 잦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우울한 성격(중증의 우울증)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튼에서도 퇴학을 당한 전적이 있으니 말이죠.) 그는 사실 엄청난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바로 발명가의 일이었습니다. 8대 말버러 공작은 아마추어 과학자이기도 해서 그의 저택 블렌하임 궁에 커다란 실험실을 갖추고 발전 시설을 마련해 손수 저택에 전기선을 연결하고 초기형의 전화기를 발명하는 등 온갖 기계와 여러가지 장치들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영화의 샤프경과 비슷하죠?^^;; 물론 그가 발명에 몰두하느라 샤프경처럼 가산을 탕진한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적지 않은 영향은 주었음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영지에서 들어오는 소작료만으로는 그 엄청난 저택을 유지하는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죠.( 게다가 지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는 혼외정사로 사생아를 낳는 바람에 부인에게 이혼을 당하기까지 했죠. 역시 유서깊은 백작 가문의 딸이었던 그의 부인은 자기 인생을 찾기 위해 당시로서는 쉽지않은 결정을 했습니다. 결국 혼자가 된 말버러 공작에게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재정난에 이혼까지...결국 8대 공작은 집안의 가보들을 꺼내다 경매장에 넘기는 등 이것저것 해보다가 - 이 와중에 형제 사이가 정말 단단히 틀어지게 됩니다. 처칠의 아버지인 랜돌프 경은 형이 이렇듯 무책임하게 집안을 망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거든요 -  동생의 장인인 레너드 제롬(처칠의 외할아버지)을 통해 한 가지 제안을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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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an Warren Price, 2nd wife of the 8th Duke of Marlborough George Charles Spencer Churchill


미국의 부자 상속녀와 재혼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죠. 그래서 소개받은 분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릴리안 워렌 프라이스. 부친과 죽은 남편에게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돈 많은 과부였죠. 릴리안 여사는 공작부인이 된다는 것에 엄청 감격한 듯 재혼한 남편에게 아낌없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블렌하임의 엄청난 부채를 해결해 준 것은 물론 저택 유지에서부터 남편을 위한 호화 요트 구입까지...여튼 그녀는 말버러 공작가의 구세주였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자신의 업적을 잘 안 듯 훗날 8대 공작이 세상을 떠나 다른 사람과 재혼한 뒤에도 항상 '말버러 공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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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 처칠



 바로 윈스턴 총리의 사촌입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무척 친했었는데, 두 사람의 아버지가 원수처럼 사이가 나쁜 형제였던걸 생각하면 정말 의가 좋은 사촌들이었죠. 그런데 딱하게도 가문을 지키는 무거운 의무가 이 분에게 떨어지게 된 겁니다. 이튼과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맞이한 20대 초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그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바로 결혼이었죠. 집안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1880년대, 이 시기 영국의 귀족들은 세상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업화로 인한 토지 가격의 하락이었습니다. 지가가 무려 반토막도 더해서 1/3까지 떨어져가는 상황이라 재산이 주로 농지였던 귀족들은 경제적으로 그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상속세나 특소세의 위협을 받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현금 부족으로 목이 메이는 지경이 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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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말버러 공작에게 미국 재벌과의 결혼을 권유한 것은 바로 그의 숙부 랜돌프 경이었습니다. 바로 처칠의 아버지 말이죠. 랜돌프 경은 자신이 미국인과 결혼했던 터라 옛날의 7대 공작 - 아버지 존 처칠 - 처럼 자수성가한 미국 부자들에게 딱히 편견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집안은 바로 미국의 밴더빌트가 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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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쯤에서 이 대서양 횡단 결혼의 주 원인이 되는 말버러 공작가의 저택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블렌하임 펠리스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저택은 실은 영국 왕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궁'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 저택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8536&cid=40942&categoryId=33450


현재는 국가 사적지입니다. 지난 1987년에 제정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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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대 말버러 공작입니다. 얼마전에 돌아가셨더군요. 지금은 12대 공작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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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공작 존 처칠이 유럽에서 일어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에서 큰 활약을 보인바 있었습니다. 뛰어난 군인이었던 그는 블렌하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는데, 그 공로로 앤 여왕에게 공작의 작위와 이 저택까지 제수받았습니다. 일개 향사에 불과했던 존 처질은 본인 대에 백작위와 공작위까지 수여받는 엄청난 신분상승을 이뤄낸겁니다. 게다가 그에겐 수완이 좋은 아내도 있었는데 말버러 공작 부인은 앤 여왕의 총신이기도 해서 그는 아내 덕에 이런저런 정치적 혜택도 얻었었죠. 하지만 문고리 권력이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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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지어졌지만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물입니다. 외관만 딱 봐도 베르사이유 궁이 떠오르는군요. 정원 장식들 중에는 수탉을 물어뜯는 사자상도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보고 싶은 장식물이네요.( 프랑스에게 영국이 거둔 승리의 기념비랍니다. 수탉은 프랑스를 상징하거든요. 물론 사자는 영국...-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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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현재 블렌하임 궁의 정원은 지난 1930년대에 프랑스 정원사가 설계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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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렌하임 궁은 저택 안의 홀이 유명한데, 마치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건축 설계자가 극작가 출신이라서 그렇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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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택의 고서 도서관에 앤 여왕의 석상이 서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블렌하임 궁은 앤 여왕이 제 1대 말버러 공작에게 영지와 토지를 하사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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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만 봐도 어마어마합니다. 지금이야 국가 사적지니 건물 관리야 영국 정부 소관이지만 당시 개인들이 이런 집을 건사한다는건 정말 인생을 걸 만한 일이었을 것 같네요. 영화 <크림슨 피크>에서도 샤프경이 이렇게 말하죠. "...이 저택은 우리 가문의 빛나는 유산이자 벗어날 수 없는 짐이기도 하지..." 그래서 결국 9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는 숙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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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이쯤에서 처칠의 아버지가 조카에게 결혼 상대로 권한 미국의 재벌가 밴더빌트 집안에 대해 알아볼까요? 위 사진에 보이는 저택이 밴더빌트가의 저택입니다. 블렌하임처럼 현재는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택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67534&cid=40942&categoryId=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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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유행한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축이네요. 이 사람들이 정말 고대 민주정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이런 건물들을 지어댄건 아닐테고...건축 평론가들의 표현을 빌리면 신고전주의만큼 권위적인 건축이 다시 없답니다. 유럽의 근대 부르주아들이나 미국의 부르주아들이나 다들 '권위'를 추구하는데 열심이었던 거죠 사실 정말 딱한 일이긴 한데 밴더빌트 가문이 이렇듯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을 뉴욕에 열씨미 지어댄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에 의해 '도금시대'라고 불린 이 시절의 부자들 그러니까 밴더빌트, 카네기, 모건, 록펠러같은 재벌 가문들 말입니다. 이들은 사실 뉴욕 상류사회에서 왕따 신세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긴 한데, 그 시절엔 진짜로 그랬답니다. 우리 눈에야 부자들은 다 똑같이 보이지만 실은 뉴욕의 유서 깊은 오랜 가문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남북전쟁으로 떼돈을 번 신흥부자들을 정말 달갑지 않은 침입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 사교계에서 은근 왕따를 시키고 있었죠. 이런 왕따에 분노한 밴더빌트가의 한 부인은 뉴욕에 근사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짓기도 했습니다. 도대체가 자길 오페라 공연 보는데 불러주질 않으니 그냥 본인이 오페라 하우스를 하나 지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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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 장식과 정원 규모를 보니 실로 어마어마하네요...이런 집이 무슨 궁전도 아니고 개인의 사저였다니....놀랍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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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대 말버러 공작부인 콘수엘로 밴더빌트입니다. 언론으로부터 '달러공주'라는 고약한 별명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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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수엘로가 아버지와 함께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콘수엘로는 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부모의 강요 - 특히 어머니 윌리 k. 여사 - 로 꼼짝없이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얘기는 이렇게 된겁니다. 밴더빌트 집안에서는 딸을 유서깊은 유럽의 귀족과 결혼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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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으로 9대 말버러 공작은 밴더빌트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비치크릭 철도 주식 2백 50만달러를 양도 받았습니다. 이렇듯 노골적인 결혼 계약에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렇게 논평했죠. "...말버러 저택의 지붕은 필요 이상으로 더 큰 보수 공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전의 하루 세 끼 훌륭한 식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글귀 보는 순간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영화 <크림슨 피크>가 생각나더군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정말 이들 커플을 모델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구제불능의 발명가 아버지와 저택의 지붕 수리가 너무나 급했던 아들의 딱한 사정이 정말 영화속의 샤프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지금이야 블렌하임 궁은 정말 근사한 대저택이지만 콘수엘로가 결혼해서 도착할 즈음에는 상황이 상당히 심각했었나 봅니다. "이렇게 넓은 집에 정말로 살 만한 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요?" 저택을 처음 본 그녀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한 왕실 근위대원과 귀족 부인이 1911년 조지 5세의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옆에 지나가던 그들보다 덜 고귀한 신분의 백성들이 쳐다보고 있다. <북폴리오> 제공

 1911년 조지 5세의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 귀족 여성이 대관식 복장으로 웨스트 민스터 사원을 향하여 근위병의 안내를 받으며 가고 있습니다. 주위의 런던 시민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군요. 사극이라도 찍나? 하는 표정....ㅎ





왕국 전체의 작위귀족들이 1953년의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에 위치한 상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사진/해리 토드. <북폴리오> 제공

왕국 전체의 작위귀족들이 1953년의 즉위식(엘리자베스 2세)에 참석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에 위치한 상원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사진/해리 토드. <북폴리오>


 이런 거 볼 때마다 진심 문화충격이 느껴집니다...귀족들도 다 왕관을 쓰고 국왕 즉위식에 참석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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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조지 5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한 복장을 한 콘수엘로와 두 아들 존과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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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년의 에드워드 7세 대관식 참여할 때의 콘수엘로 ( 네모 안의 모습은 1911년 조지 5세의 대관식 때 모습)



표정이나 자세가 진짜 어색합니다. 다들 평하길, 콘수엘로가 얼마나 이런 형식적인 귀족생활에 안맞는 사람이었는지 이 사진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남편은 귀족 작위와 가문에 목메는 사람임에 반해 콘수엘로는 전혀 그런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뼛속까지 근대정신을 가진 부르주아일 뿐이었죠. 어린 시절 내내 무슨 유럽의 공주같은 교육을 받았었다고 하는데 그런 조기 교육도 콘수엘로에게 전혀 영향을 못 주었던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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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어 서전트가 그린 9대 말버러 공작의 가족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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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렌하임 궁에서 콘수엘로와 윈스턴 처칠




콘수엘로는 남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남편의 사촌이자 절친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과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남편이 처칠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자연 콘수엘로도 같이 만나게 되었었던 같습니다. (위 사진은 남편이 찍어준듯 하네요) 결국 콘수엘로는 시어머니의 전례를 따라, 남편 말버러 공작과 이혼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제는 세상도 변했고 더 이상 가문을 위해 서로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게다가 남편은 아내의 친구인 글래디스 디콘과 몰래 만나고 있었구요...글래디스 역시 미국의 재벌 2세였고 결국 말버러 공작은 재혼도 달러 공주와 합니다.) 남편과 헤어져 말버러 공작 부인의 자리를 버린 콘수엘로는 바다를 건너 - 이번에는 영불해협 -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평생 그와 해로합니다. (재혼한 남편은 프랑스인 사업가로 직물업자 집안이라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도 교분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 인연으로 샤넬은 처칠과도 친구가 됩니다....이야~ 미국과 유럽 부르주아들 인맥 정말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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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버러 공작 부부의 모습입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상 여행중에 찍은 사진이라는데...두 부부 사이가 어떤지 정말 한 눈에 보여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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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수엘로와 이혼한 뒤 재혼한 글래디스 디콘과 함께 있는 말버러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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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Jacques & Consuelo-St Georges Motel.


  만년의 콘수엘로 재혼한 프랑스인 남편 자크 발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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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년의 제니 여사. 당시 유행하던 역사적 인물로 분장하고 사진 찍은 모습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라 황후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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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제니 여사의 만년의 초상화입니다. 에드워드 왕조 시절에 유행한 머리모양이랍니다. (어째 낯익다했더니 낸시 애스터 의원이 젊은 시절에 이런 머리 모양을 했었죠) 제니 여사는 남편 랜돌프 경이 세상을 떠난 뒤 재혼을 두 번 했는데, 두 남편들이 아들 윈스턴과 비슷한 나이거나... 더 어려서...세간의 화재가 됐었습니다. 그런데 더 깨는 건 그 결혼에 대한 아들 윈스턴과 종손인 말버러 공작의 태도였죠.... 놀랍게도 이들 모두 엄마와 숙모의 결혼을 적극 후원했던 겁니다!!! ..... 사실 결혼식장에는 신랑 쪽 가족들은 거의 참석도 안하는 판이었는데, 처칠 가문에서는 말버러 공작의 엄명으로 가문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죠.


 제니 여사는 일생 동안 런던 사교계의 여왕이었었는데 - 무려 황태자비의 절친이기도 했습니다. 황태자랑 제니 여사랑 몰래 만난다는 소문이 있었음에도 말이죠 -  진위야 어떻든 제니 여사가 얼마나 수완이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죠. 아들 윈스턴의 표현을 빌린다면, ..."군대나 정가에서 어떤 자리를 얻거나 연줄을 얻길 바란다면 어머니에게 말만 하면 되었다..." 일 정도니 정말 대단한거죠. 현역 의원들부터 장관까지 게다가 군대의 장성들까지도 제니 여사는 연줄이 있었답니다. 대체 이런 인맥들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신기합니다. (어쩌면 말만 무성한 것일 수도 있을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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