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법소녀 이야기

2015.06.10 19:37

말하는작은개 조회 수:1030

 

 

Q: 마법소녀라서 생기는 특별한 좋은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A: 과거에는 10대 소녀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연예인이였다죠? 요즘에는 마법소녀로 바뀌었죠. 여러분도 아시듯이 마법소녀는 선망받는 직업이에요. 지구도 지킬 수 있고,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예쁜 옷을 입고 악세사리를 끼고 마법을 부리면서. 정의를 실현하는 직종이잖아요, 마법소녀가. 경찰도 비슷한 직종이긴 하지만, 마법소녀는 의상도 자유롭고,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라는 영예도 얻을 수 있고, 악당과 싸우면서 창공에서 일어나는 화려한 불꽃놀이도 멋지고요. 매일밤 악당을 물리치러 밤하늘을 뛰어다니면, 지붕아래서 카메라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죠. 그럴 때 힘이나요. 사람들이 응원을 해줘요.

Q: 광고를 찍기도 하셨죠? 대표적으로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들이 찍는다는 화장품 광고, 에어컨 광고...등등... 얼마전에는 샤넬에서 협찬도 해주셨다고? , 셀러브리티로서의 화려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선에서 그림을 그리듯 내려오는 콧날이 새콤달콤맛 립밤을 바른 분홍색 상큼한 입술에 점을 찍었다. 밤잠을 못자 피로해보였다. 눈가에 흉이 졌다. 그녀는 어젯밤도 전투가 있었다고 했다. 잠깐 말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A: ...하지만 요즘 마법소녀가 되려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36세대 마법소녀로서 말하자면요,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고 싶어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어찌된 영문인 것일까? 서민인 내가 보기에 그녀는 완벽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단호해보였기 때문에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내 예상과 다른 그녀의 의견에 조금 항의해보면서.

 

Q: 그건 누구나 하는 소리 아닌가요? 언론인이든, 회사원이든, 의료인이든, 누구나 자기 자신의 업이 힘들다고들 이야기 하지 않나요?

A: 모든 직업이 힘들지만, 마법소녀는 특히 여자들에게 좋은 직업이 아니에요... 제가 몇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마법소녀로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내 이름은 민지. 36세대 마법소녀다. 아주 오래전, 1세대 마법소녀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법소녀라는 직업은 없었다. 과학자들조차 마법의 존재를 몰랐다. 어느날 외계로부터 선택받은 한 아이에게 유성이 떨어지면서부터 마법소녀라는 직업이 생겼다. 1세대 마법소녀는 인류가 처한 위기-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악당들-을 쳐부수고 마법소녀라는 직업의 포문을 당당히 열었다. 당시에는 마법소녀가 전 세계에 한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악당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미국 뉴욕과 한국을 오가느라 그녀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마법소녀라면 늘 거쳐 가는 언론인터뷰에서 그녀는 처음에 태평양을 건너는 게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악당과 싸우는 일도 심장이 많이 쿵쾅거렸겠지만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1세대 마법소녀라서, 그녀가 말하지 못했을 많은 일들을 나는 안다. 이제 안다. 꼬마 시절에 마법소녀가 되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다렸던 시절에 몰랐던 사실들을.

 

우리들은 지금처럼 낮시간에 카페에 모여 있었다. 정확히는 오후였다. 밤이면 전투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새벽에 잠을 자고 해가 머리에 걸린 정오가 되어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우리 모임은 마법소녀들의 티파티였다. 애프터눈티, 브런치, 카페, 기타 등등. 하지만 몸무게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마음껏 먹지는 못했다.

 

마법소녀가 되기 전의 이야기 말이야?”

맞아. 유성을 기다리며 매일밤 하늘만 바라보고 살았던 때. 기억하지?”

과거 노량진에서 9급공무원이 되기를 고대하며 학원가를 걸어다녔던 수험생들의 이야기처럼, 우리들은 별똥별을 기다리며 눈빠지게 위를 보고 있었지. 언젠가 나도 하늘을 날게 되길. 마법을 부리게 되길. 사람들의 선망을 받게 되길!”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건데?”

 

새빨간 딸기를 얹은 생크림 와플 위로 비녀를 꽂은 소녀가 흥미로워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한복을 입은 마법소녀로서 노인들의 아이돌이였다. 마법소녀들은 남사스럽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고 나이든 어른들은 싫어했지만 치렁치렁하고 긴 선녀의 옷을 입은 그녀는 좋아하셨다. 물론 선녀라는 특별함에서 좋아하는 일반인들도 많았다.


그때 고달팠다고.”

누구나 꿈을 이루기 전엔 힘들어.”

마법소녀 중 누군가 핀잔을 주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 그런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릴 때, 나는 뚱뚱했었어. 배가 볼록하게 나와 있었지. 그건 내가 먹을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어. 부모님이 맞벌이라 그런 것이기도 했어. 엄마아빠가 직장에 나가고 없을 때 나는 구멍가게에서 맛있는 것들을 사먹었었어. 캔디, 초콜렛, 아이스크림...... 하지만 동시에 나는 마법소녀가 되기를 바랐어. 마법소녀가 등장하는 티비와 틴에이저 잡지를 보면서 나에게도 유성이 떨어지기를 기대했지.”

지금은 다양한 분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같은반 친구들도 장래희망에 마법소녀를 썼었지. 우리는 마법소녀가 되면 입을 코스튬에 대해서 의논해보기도 했어.”

하지만 뚱뚱했으면서 마법소녀가 되길 고대했단 말이야?”

잠깐만. 딴지걸지 말고 들어봐... 그건, 마법소녀가 되는건 우리 부모님도 바라는 일이였어. 마법소녀들이 스타가 되어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고운 딸들을 둔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인터뷰하는 것들을 보면서

그건 누구나 그랬을 거 같기도 해. 과거에도 그랬지만 자식들이 판검사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 자식들이 잘되서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고, 원래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하기 마련이잖아.”

내가 말했다.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날씬하지 않아도 좋아. 뚱뚱해도 좋아. 의사도 마찬가지야. 마법소녀는 그렇지 않았어. 뚱뚱한 여자아이에게 유성은 내리지 않아. 나도 부모님도 그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조금 유난이였던 거 같아. 다른 부모님들과는 다르게.”

하루는 수영장에 갔어. 살을 빼기 위해서였지. 어린아이들이 입는 원피스수영복을 입고 풀장 앞에 섰어. 아버지는 툭 튀어나와 있는 내 배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서 말했어. 봐라. 이게 들어가야지, 이게! 내 배는 알파벳 D자였어. 그래서 부모님은 내게 수영을 시키려 했어. 어린이반에 들어가서 나는 매일 아침 수영을 배웠지. 하지만 수영을 하고 나서는 늘 배가 고팠기 때문에, 매점에서 맛있는 것을 사먹었어. 핫도그나, 핫바, 오렌지 주스 같은 것...”

살이 빠지지 않자 부모님은 의심했어. 내가 몰래 맛있는 것을 사먹는지 아닌지 말이야. 부모님은 나의 용돈을 빼앗았어. 그러자 나는 훔쳤어. 부모님의 돈을. 그게 자랑은 아니지. 하지만 부모님도 생각해주었으면 했어. 내가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는 걸.”

그건 모순이잖아. 살을 빼건, 마법소녀를 포기하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냐?”

어느쪽의 선택을 하든 자기부정이 되는 거야. 슬픈 일이지. 어린이 시절에 나는 화가 났던 것 같아. 몰래 돈을 훔치는 걸 들켰을 때 나는 울면서 악을 썼었어. 나에게는 남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살이 찌건 빠지건 말건 부모님은 전혀 관심없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도 알다시피 청소년기에 혹독한 다이어트와 훈련을 통해서 몸을 단련하고 있자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지...”

환상적이었어!”

파란색 파티복장을 입은 한 소녀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녀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색색깔의 별이 쏟아져서 내 몸안으로 들어왔어! 신기했고 기분이 좋았어!”

다시 대화의 공이 내쪽으로 굴러왔다.

그래. 생각해보면 행운이였던 거 같아. 수많은 소녀들 중에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게 말이야.”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온다.”

누군가가 노래하듯이 속담을 읊었다.

결국에 민지 네가 마법소녀가 된 건 그만한 고생이 있었기 때문이잖아. 됐으면 된 거지 뭐. 노력에 대한 보상인걸.”

? 그렇게 퉁칠 수 있는 건가? 이 때 나는 의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자자, 오늘 밤 작전에 대해 상의해보자! 서울에서 악당들이 출몰할 것 같은 장소는...”

우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테이블 위로 모여들었다. 서울시의 지도를 놓고.

 

이번 장소는 여의도였다.

저녁을 일찍 먹고 우리는 밤하늘을 날아 뿔뿔이 흩어졌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러 나오는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늘 위험하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온다니까. 그래서 잘 조심하면서 싸워야 해

 

나는 창공위에 섰다.

괴물들이 고등학교에 출현했다.

학교를 부수려 한다.

안에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또래의.

 

비명이 들렸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중이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검을 휘둘러서 괴물을 죽였다. 조금 실수를 해버려서 괴물이 내 옆구리를 치고 말았다. 나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괜찮으세요?”

 

학생들 중 누군가가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지 아픈 것이다. 그가 구급차를 불렀다. 선생이 보호자 자격으로 구급차에 같이 올랐다.

마법소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상냥한 눈빛의 그가 말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연애를 하게 된 건, 밤마다 계속되는 오랜 전투에서 지쳐서 힐링이 필요했기도 했지만 또래의 남자친구를 고파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탈출구가 필요했었던 걸지도.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인처럼, 나를 상대로 유사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보단 마법소녀가 처녀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남자친구와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이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닌 이후로 더 그랬다. 왜 마법소녀는 섹스를 하면 안돼? 나는 항의하고 싶었다. 사회의 규칙을 만든 그 누군가에게. ‘마법소녀는 처녀여야 한다는 명제는 사회에서 진리가 아니지만 분명히 암묵적으로 어떤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깔려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남자친구와 나는 몇 년이 지나자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을 했다.

 

사람들은... 내가 배가 부르자 은퇴를 해야한다고 밀어붙이는 분위기였다. 임산부 마법소녀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말도 안돼.”

우리는 분개했다. 또다시 마법소녀들의 티파티에서였다. 어느새 나는 마법소녀들의 큰언니격이 되어있었다. 어린 마법소녀들이 새로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왜 임신한 사람은 소녀여서는 안된다는 거죠?”

정말이다. 왜 그럴까.

나는 강력한 비난여론에 빠져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남자친구를 사귄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다.
사랑에 빠지면... 내 편이 생겨.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도 가슴속에 벅차 올라. 그러면

사회의 어떤 불편도 감수하고 이겨내거나 싸워나갈 준비가 되는 것 같아. 파이팅 준비가 되어있어. 서로 양보를 하거나 맞춰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나를 안좋게 보는 시선들이 불편하지만 남자친구가 있어서 행복해. 그래서 싸우고 싶어.“

 

나는 아이를 낳을때가 다 되어가자 마법소녀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3개월간의 육아휴가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법소녀의 전투현장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해서 남편과 교대로 육아를 한다. 이상하다는 시선들이 불편하지만 견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법소녀가 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아요. 처음 부모님에게 수영장에서 배를 손가락으로 찔렸을 때, 그리고 남자친구와 섹스를 했다고 처녀 비처녀 운운할 때, 임신했다고 마법소녀를 그만두라고 할 때, 심한 모멸감을 느꼈어요. 왜 우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모든 여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조금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마법소녀는 그 힘듦의 집합체에요. 하지 마세요. 하려거든 싸울 준비를 하고 달려드세요






#쓰다보니 산으로 간 느낌이고 용두사미가 된 것 같은데요 그냥 올려봅니다.... 어떻게 수정해야 될지도 잘 모르곘음 분명히 상상할땐 좋았는데 쓰고보니 엉망에 어떻게 표현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묘사 생략하는 부분도 있고;  ㅜㅜ 아 완전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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