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9 22:47
요즘 듀게 분위기를 보면 오랜만에 졸업생들 찾아오는 홈커밍데이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몇 년만에 만나는 동창회 같기도 해요.
하루에 서너 페이지는 우습게 넘어가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갑자기 흥겹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얼마 전 현자님과 산체님이 떠나시는 걸 보며 이러다 투표가 흐지부지되면 대규모 탈퇴가 일어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투표를 하게 돼도 만약 제재 조치를 취하자는 쪽이 지게 되면 상실감이 걷잡을 수 없이 돼버려서 더 많이 떠나실 것 같았고요.
제가 보기에 투표는 어떤 점에서는 승패가 명백히 드러나는 전쟁과도 같거든요.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하는.
특히 이런 일에서는 애쓴 사람이 지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애쓴 사람이 떠나게 되더라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단 투표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투표 결과도 제재 조치를 취하자는 쪽으로 나올 것 같고요. (듀게를 위해서는 그게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아마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제재 조치를 만드는 데 반대할 것 같아요.
그건 이제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가져왔던 신념이랄까 성향이랄까 그런 거라 쉽게 뒤집어지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저에겐 듀게가 좀 덜 소중한가 봐요. 제가 꿈꾸는 듀게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할 것인가,
듀게의 많은 분들이 원하는 듀게를 만드는 데 한 표를 보탤 것인가에서 저는 아직 표를 행사하지 않거나
제가 꿈꾸는 듀게를 만드는 데 한 표를 던지려는 데 머물러 있어요.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양쪽이 끝까지 팽팽히 대립해서 결국 모든 구성원들의 투표까지 갔었죠.
결과는 2표였나 3표 차이로 제 편이 졌어요. ㅠㅠ
아마 그 때 저는 참 많은 걸 생각하고 배웠던 것 같아요. 논쟁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논쟁의 과정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논쟁 혹은 투표에서 졌을 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요.
논쟁은 상대방 혹은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 상대방 혹은 공동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만약 제가 soboo님과 논쟁을 한다면 그건 제가 soboo님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넘칠 때
이분과 얘기하는 데 제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바쳐도 아깝지 않을 때일 거예요.
soboo님이 미워서 논쟁을 하느냐, soboo님 혹은 듀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논쟁을 하느냐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해요.
soboo님을 위하는 마음까지는 무리겠지만 ^^ 듀게를 사랑하고 듀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셨다면 투표에서 이기든 지든, 제재 조치가 제대로 만들어지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큰 상실감을 맛보지 않으시리라 믿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공간을 위해 쏟은 시간과 정성은 비록 보답을 받지 못해도 허망하지 않았거든요.
보답받으려고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논쟁을 하게 되면 무조건 이기는 게 중요해지고,
이기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더라고요. 지게 되면 억울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고요.
soboo님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시키게 되면 투표에서 지게 되거나 제재 조치가 흐지부지되거나 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미워하는 사람에게 졌다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람이 이 공간에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분노와 모멸감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투표를 위해 애쓰시고 제재 조치를 마련하려고 애쓰시는 분들이 그저 바람직한 듀게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쏟고 정성을 다한다는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정성이 혹시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그저 나는 내 할 바를 다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이걸로 됐다는 그런 마음이요.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크게 상처받지 않으실 거라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듀게를 탈퇴할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믿어요.
아무 일도 안 하고 구경만 하는 로맨티스트가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 드리려니 힘드네요. ^^
별로 영양가도 없고 쓸데 없는 말 했다고 양쪽에서 돌 날아올 것 같기도 하고요. 슝슝
뭐, 구경만 하는 사람도 마음은 복잡하고 갈등 중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제가 바라는 것은 결과가 어찌되든 이 일과 관련된 분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듀게를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에요.
2015.06.19 22:52
2015.06.19 23:50
어디선가 봤어요.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저는 희망 없이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이고 싶어요. ^^)
Renee Fleming - Endlessly (Muse)
(영어사전을 찾아봤는데 romantist라는 단어는 없고 romanticist라는 단어만 있더군요.
그래도 로맨티시스트라고 쓰는 건 어쩐지 이상해요. 로맨티스트를 외래어라고 해버릴까 봐요. ^^)
2015.06.20 00:13
2015.06.20 00:13
2015.06.21 01:30
'멋드러진'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해 주셔서 신나요. ^O^ (원래는 세 번이었는데 하나 지우셨네요. ^^)
뭐, 말은 멋진데 참 쉽지 않은 일이죠. 만약 제가 좋아하는 듀게분들이 한 분씩 다 떠난다면
과연 제가 듀게를 희망 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
이런 사랑은 다른 분들께 쉽게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2015.06.20 22:16
로맨티시스트까지 갈 것 없이 Romantic 이란 말 자체가 낭만적 사람 혹은 낭만주의자라는 뜻의 명사로 쓰입니다.
2015.06.21 01:14
heilner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romantic이 명사로도 쓰였던 기억이 아득하게 살아나네요. ^^
그냥 우리말로 '낭만주의자'라고 하면 되는 걸 괜히 영어 단어로 괴로워했어요. ^^
(그래도 '로맨티스트'가 꽤 로맨틱하게 들려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니까요.)
2015.06.19 23:14
ebs 영화나 봅시다
2015.06.19 23:18
싸이코네요 일요일날 식스센스나 보다말다 하려네요.
2015.06.19 23:23
헉, 글 쓰고 댓글 보고 상념에 잠겨 있느라 영화 보는 거 잊었어요.
사이코는 예전에 봤으니까 듀게하면서 쉬엄쉬엄 볼 수 있겠어요.
내일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인데 이건 아직 못 봐서 꼭 보려고요.
2015.06.20 01:21
2015.06.20 09:59
하루가 지나고 보니 역시 제가 본문에서 드린 말씀은 너무 로맨틱한 부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
이번 일이 일어나면서 듀게에 많은 분들의 글이 올라오고 그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투표가 많은 듀게분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게시판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끓어오르게
해서 듀게를 멀리했던 분들이 다시 돌아오고 지켜만 보고 계시던 분들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그렇게 새로운 활기와 변화의 희망과 에너지가 넘치는 게시판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죠. ^^ 규칙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서 듀게가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혁명을 통해 가자, 르네상스로!!'라고 로맨틱하게 외치고 싶은데 역사 지식이 짧아 순서가 거꾸로예요. ㅠㅠ
2015.06.20 09:41
네 감사해요~ 저도 뭔가 하고 있긴 하지만 유저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간다리로서의 위치는 잃지 않으려고 해요.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나오는 결과는 어느 쪽이든 의미 있는 것이겠죠.
결과가 어떻게 나든, 무언가 바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니 실망하지도 않으려고요~
2015.06.20 10:07
BreakingGood님이 올리신 글 다 읽어봤어요. ^^
BreakingGood님께서 논의를 이끌고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제가 본문에서 드린 로맨틱한 부탁은 이 논의를 이끌고 계신 분들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구경만 하는 저 같은 사람도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두려움과 흥분이 교차하는 격동의 시간입니다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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