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 80년대에 학생 운동하던 얘기를 하면서 그 무렵에 자신들은 강물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죠.



전 세월 호 사건이 터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사건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저 자신부터가 그렇고요. 전 솔직히 말해서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 앉으면서 수 백 명의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큰 슬픔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그 슬픔에 접근하기를 피하기도 했죠. 피해자와 유족들의 입장에 저 자신을 가져다 놓는다면 고통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전 그 심리적 위치에 가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실 세월 호랑 별로 상관 없는 글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웃기는 일이죠. 세월 호에 대해 관심도 없는,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으려 했던 사람이 영화관에 앉아서 세월 호 생각을 한다는 게. 하지만 제 생각에 세월 호 사건이 터진 나라에서 쥬라기 월드를 편안한 마음으로 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꼭 세월 호가 아니더라도 최근의 예로 서울의 한 동물원에서 사자가 사육사를 물려서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원래 맹수가 있는 동물원에 들어갈 때는 군대에서 전우조 단위로 행동하는 것마냥 두 명 이상이서 다녀야 하는데 그 사육사는 혼자서 우리 안으로 들어갔고, 원칙대로라면 무전기 같은 통신 장비를 들고 우리 안으로 가야 하는데 그 사육사는 그런 통신 장비를 구비하지 않고 우리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거고... 우연이 아니라 안전 시스템의 부재로 일어난 사고인 거죠.




쥬라기 월드는 저 사고의 확장판인 거죠 사실.




영화를 보면 쥬라기 월드는 처음부터 사고가 터질 운명이었습니다. 안전 시스템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열어선 안 될 장소였고, 수뇌부에서 쥬라기 월드를 통제하는 걸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서, '내가 저걸 관리했어도 저것보단 관리를 잘했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저걸 갖고 안이한 각본이라고 비판할 순 있는데, 웃기는 건 우리의 현실이 딱 저 정도 수준이라는 거죠. 이 영화를 고질라에 비교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전 고질라보다는 봉준호의 괴물이 더 생각나더군요. 



쥬라기 공원에서 본격적인 공룡들의 난동이 시작하는 건 중반이 지나서죠. 하지만 이 영화는 비교적 빠른 시점에서 공룡이 탈출해서 난동을 부립니다. 전 오히려 저게 정면 승부하는 거 같아서 더 좋더군요. 워낙에 인재풀이 넓은 곳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력이 다 빼어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캐릭터의 비중이나 이야기의 논리성만 따지면 아바타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영화인데 그래도 아바타보다 훨씬 낫게 느껴지는 게 등장 인물의 감정의 묘사나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를 아예 생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듀나님은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인 '클레어 이모'와 '호스킨스'가 지나치게 도식화된 캐릭터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는데 제 눈에 두 사람은 좀 다르게 보이더군요.



일단 호스킨스를 보면 사실 저 캐릭터가 악역인지도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호스킨스야 악인이죠. 일단 가정에서 폭행을 저지르던 가장이니까요. 그의 사고 방식 또한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속에서 그의 위치가 악역인가요? 랩터를 군에 이용하겠다는 그의 계획만 보면 사실 뭐 문제될 게 별로 없죠. 왜냐하면 이미 군에서는 개나 돌고래 같은 생명체를 군사 작전에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개나 돌고래 대신에 랩터 또한 군사 목적으로 훈련시키겠다는 게 딱히 윤리적으로 문제 있진 않죠. 굳이 말한다면 랩터의 위험성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 정도?



공룡이 격리 구역을 탈출해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클레어가 호스킨스에게 '이 나쁜 놈! 넌 이런 상황이 일어나길 바랐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가증스러운 장면임이 틀림 없습니다. 왜냐하면 호스킨스는 이 사건에 아무런 영향도 제공하지 않았거든요. 이건 전적으로 쥬라기 파크를 관리하는 클레어를 비롯한 이들이, 미연에 방지했어야 할 일들들,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일들을, 공원의 이미지를 추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축소하려다가 결국에 대량 인명 사고로 발전하게 된 거거든요. 공룡이 탈출한 순간에 모든 관람객들을 섬밖으로 이동하게 하고 공원을 폐쇄했다면 인명 사고를 훨씬 줄일 수 있겠지만 그들은 관람객들에게 이 상황을 은폐하기 위해서 뻘짓을 벌이다가 결국에 무수한 사람이 죽게 된 것이죠.




사실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은 두 사람한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클레어, 그리고 쥬라기 월드를 소유한 중동인 기업인이죠. 후자 같은 경우엔 캐릭터가 뭔 쿨하고 댄디한 백만장자처럼 묘사되던데 실상은 인명 사고를 극대화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한 인간 쓰레기 자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클레어 또한 책임자는 아니지만 사실 중동인 기업인하고 비슷한 사고 방식을 지닌 듯이 보입니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부터 쥬라기 월드에 심각한 안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고치기 위한 일체의 노력도 하지 않고, 오직 쥬라기 월드의 최대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죠. 사실 이 두 사람을 그냥 또 다른 유병언이라고 봐도 될 듯 싶습니다.



하여튼 악역 공룡이 쥬라기 월드 건물까지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자 우리의 레이디 유병언은 격리 당한 티라노 사우러스를 꺼내서 악역 공룡하고 싸움을 붙이게 하고 티라노는 악역 공룡을 죽인 다음에 공원 밖으로 돌아갑니다. 사실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는 장면인 게... 악역 공룡을 죽인 티렉스가(엄밀히 말하면 티렉스가 죽인 건 아니지만) 이제 사람들을 공격하면 어쩌려고 데려온 걸까요? 아무리 악역 공룡이 흉악한 싸이코패스로 설정되어 있다지만 티라노 역시 위험천만하기로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티라노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포식을 즐기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게, 티라노가 라이온 킹의 무파사 흉내를 내는 결말보다 훨씬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 종반부의 문제가 뭐냐면, 이 영화의 악역은 사실상 싸이코패스 악당 공룡이 아니라 이 인명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수뇌부라는 거죠. 악역 공룡이 죽었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게 아니라 이런 사태를 일으킨 수뇌부한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록 티라노 사우러스가 악당 공룡만큼 잔혹하진 않더라도 사람한테 위험하긴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 면에서 악역 공룡이 죽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 수뇌부 개새끼들이 또 다른 공룡을 데리고 온 거니까,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전혀 되지 않았는데 그걸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감추려고 한다는 거죠.  




전 공룡을 어렸을 때 미친 듯이 좋아했고(공룡들의 종류에 따른 몸 크기와 체중을 다 외웠을 정도로) 지금이야 예전처럼 좋아하진 않아도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종반부에 도저히 영화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는 영화에서 무슨 멋진 장면이라도 연출하겠다는 양 랩터와 티렉스가 악역 공룡을 조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영화의 이야기 흐름의 맥락상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당 공룡이 죽으면 뭐합니까? 수뇌부들이 이미 사람들을 육식 공룡들의 아가리 바로 앞에 처넣은 상황인데.




정성일이 대부 3의 알 파치노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1편, 2편에서 나왔던 알 파치노가 15년 뒤에 출연한 대부 3에서는 세월이 주는 어떤 리얼리티가 있다고. 저런 '세월이 주는 리얼리티'는 인위적으로 획득되기 힘들겠죠. 대부 3의 결말에서 1편과 2편에서 알 파치노의 모습과 3편에서의 모습이 교차되는데, 저건 대부 1과 2가 고전으로 남은 역사를 통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연출이겠죠. 개인적으로는 다크나이트 라이지즈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쥬라기 월드에서는 1편에 대해 오마쥬를 보낸 장면이 곧잘 나옵니다. 쥬라기 공원은 어떤 상징성을 가진 작품임에 틀림이 없고 그 영화에 대해 오마쥬를 바치는 것은 분명히 팬들과 벌이는 즐거운 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쥬라기 공원이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상징성의 역사에 접근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고풍스러운 멋이 있겠죠. 이번에 개봉하는 새로운 터미네이터 영화가 'I'll be back'이라는 대사를 대놓고 갖다 쓰는 것처럼요. 




근데 티렉스가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그 유명한 쥬라기 공원 테마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뛰쳐나와서 악당 공룡과 싸움박질해대는 장면을 보면서 전율이 느껴지긴커녕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일단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구성의 문제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가까운 곳에서 쥬라기 월드랑 비슷한 사고가 계속 터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좀 장황한 얘긴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목대로 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나라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 사실 쥬라기 월드 같은 영화를 보려고 온 사람이 기대하는 건 한 가지겠죠. 위기에 처한 주인공의 모험과 곁가지로 엑스트라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스릴을 느끼기 위해서죠. 쥬라기 월드를 보면서 왜 사람이 죽냐고 불평하는 건 공포 영화를 보면서 왜 기분 잡치게 사람들이 귀신한테 괴롭힘 당하는 걸 보여주냐고 불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엑스트라들이 공룡들한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불편하더군요. 레이디 유병언은 결말까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쥬라기 월드를 보면서 '섬에 갇혀서 공룡들에게 먹히길 기다리는' 대부분의 관람객의 운명이 세월호에 갇혀 있던 승객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의 첫 부분에서 전 제가 세월호에 대해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버젓이 일어난 사회에 살면서 쥬라기 월드를 그냥 스릴을 느끼기 위한 장르영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전 불가능하더군요. 




반대로 세월 호를 소재로 이런 모험 영화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관객을 구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그 가운데서 자잘한 개그씬과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키스를 하는 장면도 넣고, 엑스트라 승객 몇 명이 죽는 모습도 나온 끝에 결국에 주인공들이 목숨을 유지한 채 모험을 마치는 영화를요. 이승연이 위안부를 소재로 누드집을 낸 것에 비교될 만큼 부정적인 반응을 얻겠죠. 물론 그건 지금의 얘기고, 사실 몇 년, 몇 십 년 지나면 저런 영화가 나올 거 같기도 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한 다음에 정성일은 저 영화를 극렬히 비판했죠. 할리우드의 전쟁 장르영화를 흉내내겠다는 생각만으로 역사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단순한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만든 신파물이라고요. 정성일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은 아녔지만, '맨날 할리우드 전쟁 영화만 보다가, 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가 나온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기사 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트라우마를 함부로 장르영화로 혹은 장르소설로 각색하지 못하는 건 미국쪽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미국은 딴 나라에서 벌이는 전쟁에 대해서 무수한 장르영화를 만든 바 있지만, 가령 예를 들 건데 911 테러 사건을 소재로 '테러로 인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가운데 남성적이면서도 유능한 주인공이 침착하면서도 영리하게 사태에 대응해 사람들을 구출해내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과 키스도 하고 섹드립도 주고 받는' 그런 영화는 나온 적이 없고, 나올 수도 없겠죠. 콜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쿨하고 유능하고 마초스러운 매력을 풀풀 풍기는 주인공이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범인들을 제압하고 그 와중에 밀당하던 여주인공과 키스도 하는' 그런 영화는요? 불가능하겠죠.




길어지는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걍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현실의 트라우마와 부딪치는 지점에 다가섰을 때 영화는 더 이상 스릴 같은 일시적인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소모품에 멈출 수가 없고, 어쩌면 그 지점에서 영화는 더 흥미로워질지도 모르죠.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간 영화는 감독과 관객들을 자기 자신에게 도전을 하게 만들 테니까요. UFC의 해설자이자 스탠드 업 코미디언 조 로건이 주짓수 블랙 벨트로 승급했을 때, '무술은 우리 자신을 발달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죠. 어렸을 때 다녔던 태권도 도장의 관장한테 들었단 말이라면서요. 영화가, 혹은 소설이, 우리를 발달하게 하는 더 나은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다소 재미 없고 덜 자극적인 길을 가야 할까요? 아니면 이것 또한 흑백 논리에 사로잡힌 시선일까요? 마무리 짓기 어려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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