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이불의 추억

2015.07.14 00:13

이레와율 조회 수:1072

여긴 남부 지방인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어요. 어제. 태풍 피해들은 없으셨나요?

묵은 이불 빨래를 세탁기에 밀어넣고, 퇴근하면 뽀송뽀송한 이불 깔고 덮고 자야지! 하는 생각에 장롱을 열어서 뒤적뒤적하는데.


한켠에, 언니가 잘 챙겨놓은 분홍색, 아주 얇은 이불, 그러니까 시트 같은게 똘똘 말아서 접어놓은 게 눈에 들어옵니다.


차마 손에 잡아보지도 못하고. 당연히 꺼내지도 못하고. 못본척 아닌척 다른 이불만 꺼내 놓고 도로 넣었어요.


저 분홍 이불은, 제가 산 거예요.

재작년에 엄마가 입원하시고. 입원실에 냉방이 너무 세다고. 추웠다가 금세 또 열이 올랐다가 그런다고.

아주 얇은 걸로 하나 사다달라고 해서.

저는 일이 늦게 마쳐서- 

엄마 입원한 대학병원 근처 24시간 하는 홈플러스 매장에 가서 고르고 골라 산 거예요.

무조건 밝은색 사야한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마침 그 얇은 이불이, 분홍색, 노랑색, 나머진 군청색 이런 거라서 

분홍색과 노랑색 사이에서 엄청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니는 일을 관두고 엄마 옆에서 간호를 하고,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한 동생은 남편 출근하는 거, 아들 둘 어린이집 보내놓고-

그러고 나서 엄마 병실에서 오전 10시쯤 되면 세 자매 모여서 활기차게, 떠들기도 했다가...

울기도 했다가.... 했던 거, 기억이 ... 한꺼번에 막 났어요.









돌아보니

엄마, 병원에 입원해서 버텨주었던 그 1년 동안이.. 이렇게 말하면 이상해도 제 삶에서 제일, 열심히 살고 제일 치열하고 제일 간절하고

제일 뭔가 뜨거웠던... 때였어요.


언니는 자릴 못 비우니까 저한테 필요한 품목 적어주면 저는 마트 가서 무조건 제일 좋은 걸로, 외치면서 카트를 채우고요.

엄마 항암하고 잠시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 하루 이틀 날잡아 집 대청소한다고 요란법석 떨고요.


동생하고 저하고 매번 엄마한테 뭐 먹고 싶으냐 묻고

밖에서 열심히 사나르고요.


엄마가 뭐래도 웃으면 좋아서 일부러 언니 없을땐 언니 흉 보고.. 동생 없을 땐 동생 흉보고요..

조카, 둘, 한창 4살 6살이었을 때니까- 이런 말, 저런 말하는 거 얘기해주고요.






어찌 생각해 보면 저희 셋 다 장성(?) 하다 못해 늙어간다고 해도 될 만큼, 나이도 많이 먹었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오래 제 곁에 있어주고 사랑을 많이 주었는데도... 왜 저한테는... 제 마음에는...

엄마는 왜 항상, 부족할까요. 함께 했던 시간이. 



엄마만큼 날 사랑해줄 사람은 없을거야, 엄마는 세상 없어도 무조건 내 편이야... 생각하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그게.



지금도 언니하고 싸우기도 하고, 직장일에 치이기도 하고. 속상한 일도 많고 그래요. 

그럴 때마다 이럴 때 엄마는 나한테 뭐라고 했을까 싶어요.

어떨 땐 언니한테 그게 뭐냐고 꾸짖을거고. 그게 별 일이냐고 뭐라하실 것도 같고. 또 어떤 일엔 가만히 제 편 들어주시기도 할거고요..





엄마를 보내고 1년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났어요.


분홍색 이불은 내내 엄마가 덮던거라. 말도 안 되지만. 손 대면 엄마 냄새가 날까.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덮고 있던 엄마 생각이 나서.

되게 많이, 보고 싶어요.







아이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다 늦은 밤에... 하는 바낭성 잡담이었습니다.

횡설수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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