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부분이 많은 영화이긴 했어도, 나름 '아, 이 장면은 좀 마음에 드는데.'같은 생각도 종종 드는 영화였기 때문에 몇 가지 써봅니다.

1. 마사 웨인의 죽음

네, 바로 그 장면이요.
사람들이 '슬로우모션 목걸이', '역대 목걸이 장면 중 가장 멋진 장면' 등 수많은 표현으로 까는 그 장면 말입니다.
하지만 전 좋았어요.
(슬로우 모션으로!)권총이 격발됨에 따라 슬라이드가 뒤로 젖혀지며 목걸이를 끊어버리는 그 장면이 직접적으로 마사 웨인이 총에 맞는 모습이 나오지 않음에도 권총에 의해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잖아요.
제가 워낙 요런 기초적인 상징주의를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같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2. 슈퍼맨 쇼크

생각 외로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만, 코스모스로 나름 인지도 높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이 영화에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거기서 그는 슈퍼맨 쇼크(단어가 정확히 이랬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대충 요런 비슷한 표현이었습니다)에 대해 얘기하는데, 처음으로 자기보다 상위의 존재와 접촉한 인간의 충격에 대해 얘기하는 겁니다.
(게다가 이 부근의 슈퍼맨은 그야말로 구세주로 묘사되어 좀 더 넓게 보면 신적 존재와 마주한 인간에 대한 얘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히어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언급하는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들었는데...
...이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ㅠㅠ

렉스 루터가 주구장창 신과 인간을 강조하는 만큼 이 썰을 좀 더 풀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3. 렉스 루터의 기만

많은 관객들이 이번 렉스 루터를 보고 조커같다고 투덜거렸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조커가 미친 놈이 미친 모습으로 미친 짓을 하는데 반해, 렉스 루터는 미쳤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 멀쩡한 모습으로 미친 짓을 한다고 보거든요.
예, 저는 이런 기만적인 모습이야말로 렉스 루터의 캐릭터라고 봅니다.
특히 이런 기만이 잘 표현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렉스 루터가 정부 인사와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 전까지 렉스 루터는 굉장히 친정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방문한 정부측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아낸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일일이 정부의 인가를 받으려 하죠. '빌런이 이렇게 고분고분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렉스 루터가 조드 장군의 시체 등을 손에 넣으려 하는데, 여전히 겉으로 보기에는 렉스 루터가 정부인사의 허가를 얻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부 인사와 대화하는 도중 렉스 루터는 들고 다니던 사탕을 까서 정부 인사에게 주는데,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탕을 억지로 입속으로 밀어넣고, 정부 인사는 꼼짝도 못하고 입안에 사탕을 넣게 됩니다. 여기서 든 생각이 '겉으로는 렉스 루터가 정부인사의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부인사쪽이 렉스 루터의 말을 거역 못하는 입장인건 아닌가?'였습니다.
(실제로 이후 렉스 루터는 청문회에 손을 쓰는 등 정부의 일 깊숙한 곳에 간섭할 수 있음을 증명했죠.)

렉스 루터의 현재 위치 내지는 능력을 직접적으로 싸구려틱하게 보여주는 대신 이렇게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에서는 정말 "이 영화는 명작이 될거야!"라고 생각했었지 말입니다...


진짜 따로 떼어놓으면 좋은 부분들이 많은 영화인데 어쩌다가 ㅠㅠ

아, 참고로 알프레드의 개그들도 순간순간 터지는게 좋았습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개그담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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