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미친건지.

2011.03.20 19:55

being 조회 수:6082

1.

 

대한민국에는 서바이벌 프로는 불가하다..고, 한 몇 년 전만해도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동거동락>이 막 생겼을 당시에도 서구 리얼리티프로그램인 서바이벌 프로를 모방한 게 눈에 보였는데, 뭐를 시도하든 '우리 같이 놀자'로 흘러가는 유재석의 힘인지(그 당시는 국민MC와 멀었으니, 유재석의 힘은 아니겠지만. 중간에 본인도 한차례 떨어진 후 다시 들어오기도 했죠 ㅋㅋ 그러고보니 MC도 룰을 어긴..-_-) 한국사람들의 심성이 그래선지 서양 쪽 같은 살벌한 탈락자 골라내기 느낌보다는 '형 잘 가 동생 잘 가' 혹은 '음..저 사람 적응 못 하고 인기 없었는데 역시 밀렸구나..' 느낌으로 둥글둥글 조용히 떨어져 나갔죠.

 

그런데 케이블이 생기고, 소재의 재미보다 서바이벌의  '선정성'에 더 눈이 가는 프로들이 생기더니, 요새는 히트 리얼리티프로 포맷을 그대로 따온, 제대로 된 서바이벌이 나오더군요.  프런코(3는 제 취향에는..완전 망-_-)나 슈스케나. 제일 깔끔한 서바이벌을 보여주는 프런코는 유학파가 많다는 특징이 있지만(동양인도 서양 가서 구르다 보면 금방 서양물이 듭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서양인들도 동양인다워지고요. 문화심리학에서 이런 거 연구 많이 하죠.), 하여튼 사람 간 인정 보다 '시스템, 룰'을 존중하는 정통 서바이벌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많이 바뀌었군..' 생각했습니다. 서바이벌의 긴장감은 저도 싫지만, 그럼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나는 가수다'의 가치는,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TV를 시청하는 그 시간대에, 아이돌이 아니라서 TV에 나오기도 힘든 최고의 가수들의 좋은 무대를 선사한다'는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 엄청난 가수들이 좋은 공연을 하는 라이브 부대는 꽤 있잖아요. 그런데도 이 프로가 가치가 있는 건 오로지, '황금 시간대에, 노래 별로 안 듣는 사람들에게도 노출된다'는 것 정도죠. 그러니까 시청률이 안 나오고 시청자들이 프로를 외면하는 순간 이 프로의 가치는 사실 없어지는 겁니다. 가수들도 이 점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포맷에 참여했던 걸거에요. 미쳤습니까. 탈락(-_-) 리스크를 지고 그 프로 가수들이 대체 왜 그런 프로에 참여했겠어요. 높은 시청률이 보장(-_-)될 것 같은 프로에 자신들의 무대를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그러므로써 대중적 인지도를 올리고 더 나아가 한국 가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독려하려는 목적이 가장 큰 거죠. 이소라가 그랬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래를 제대로 할 기회가 점점 더 없어진다고. 이 프로는 그들에게 '기회'인거에요. '무명가수 이소라' 운운하는 새파랗게 어린 10대 아이들에게까지 자신들의 무대와, 보는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러니까 제작진이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은, 가수들의 무대를 손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떤 짓을 해서라도 시청자들을 긁어모으는 거에요. 어떤 쌍소리를 듣든 간에, 심지어 그게 가수들에게 상당히 잔혹한 짓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시청률을 쳐올려야 한다고요. 그리고 시청자들의 야유가 아닌 환호와 존경(?)을 이끌어내야 한다고요. 그게 10~20년 차 가수들이 자신의 가수 커리어를 걸고 영혼을 소진시키(는 듯 싶을 정도로 온 힘을 기울이)면서 선사하는 무대에 대해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인 겁니다.

 

 

 

2.

 

그런 제작진이 미친 짓을 했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사이트의 Bestiz 글 중에 그런 게 있더군요. 'A급 프로가 F급 프로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 자신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손상시키는 짓을 한 거죠. 탈락한 가수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평정단 미친 거다 귀가 막혔냐 어쩜 그런 무대를 감히 탈락시킬 수 있나 성량크고 퍼포먼스 화려한 사람들만 유리하다 발라드는 죽으라는거냐 서바이벌 포멧 자체가 말이 되냐 그런 가수들을 놓고 프로그램 자체가 병진이다 다 치워 싹 꺼져 등등 각종 쌍소리는 제작진이 싹 다 쳐먹으면서 '냠냠 그랬어요? 네넵 알았어요 우걱우걱..' 제대로 버텨줘야 하는겁니다. 그게 '서바이벌'이라는 비인간적인 룰을 정에 약한 한국 대중과, 특히 선후배관계에 약한 한국 가수들에게 우격다짐으로 강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니까 개자식들이 되어야한다고요, 제작진이. 그 '룰'을 제대로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전 김건모가 떨어지는 순간, 가수들이 다 들고 일어나고 이소라 뛰쳐나가고 별 난리를 폈을 때 같이 호들갑 떨기는 했지만, 평정단의 평가도 좀 이해 가기도 하고(-_-) 하여 어머 어떡해 저걸 어째 하며 보고 있었지만, 가수들이 재도전 운운하며 제작진을 압박할 때 (김제동 뭐하는 짓인지..1위 가수 매니저라 압박감이 심했나. 아니면 원래 사람이 그리 인간적이어서? 음..인간적이어서 그랬겠죠.) 쌀집 아저씨가 정말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1박 2일 PD처럼 '안됩니다!' 외쳐주길 정말 진심으로 기대했습니다.  '오오 이것이 이런 포멧의 재미..' 이런 쌍스러운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쌀집아저씨가 갑자기 제작진을 소집하대요? 그 순간 그랬죠. 헉? 뭐하는?? 아저씨 미친거죠???  이럴 때 가수들을 휘두르라고 공중파 대PD의 권력이라는게 있는겁니다만???? 감히 같이 휘둘려?????

 

그리고 가수들도 가수들인데..사실 욕을 더 하고 싶은데, 하긴 가수로서는 얼마나 안타까웠겠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욕은 제작진이 먹어야지 가수들은 원래 그렇게 찡찡대고 화내고 울고 안타까워하고 해야 맞는 법이니까. 더구나 김건모의 실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실력이니..  김건모가 재도전을 허락한 것은, 뭐 그냥 그러려니. 깔끔하게 털고 나갔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걸려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고 위기감도 심했을 테니 어쩔 수 없겠죠. 그런 기회를 준 것부터가 잘못이었지. 다만 김건모의 평판은 더 나빠질 것 같기는 하네요. 후배가수들이 그러더군요. '욕 먹으면 다 같이 먹어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그건 댁들이 결정할게 아니거든요. 시청자들 마음이지.

 

설마 원래부터 이런 포맷(재도전)으로 가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시청률을 위해 서바이벌이라고 뻥카 치다가 슬슬 원 포맷을 드러낸 것이라면.... 제작진 노림수고 뭐고, 일밤이 왜 그 긴긴 시간 동안 죽을 쑤는지 새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실망 중이라 '그래 니들이 그렇지' 하는 생각이 우선. 음, 지금 좀 흥분해서요.. 

 

 

3.

 

시청률은 모르겠습니다. 뭐 알아서 되겠죠. 가수들의 무대가 정말 좋았던고로 저도 몇 번은 더 볼 것 같기도 하지만..사실 본방으로 꼭 고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드는군요. 녹화본 보죠. 어차피 생방송도 아니고, 심지어 특정 가수가 탈락할 위험도 없는데. 1박 2일이나 남격이나 러닝맨 재미있는 거 하면 그거 돌렸다가, 나중에 1000원 내고 스마트TV로 보면 되지요. 아니면 다운로드 소장~ 가수들 무대만 보고 또 보고~

 

 

4.

 

프로그램은 분명히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포맷 자체의 긴장감은 그것을 넘어서는 면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포맷의 긴장감은 스스로 정한 룰을 얼마나 확실히 지키느냐로 강화되지요. 시스템상 어쩔 수 없다. 이 간단하고 확실한 '핑계'면서 가수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주어 한계까지 밀어붙이게 하는 장치이자, 시청자들에게 긴장과 감정이입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기'이자 '룰'을 왜 그렇게 허망하게 무력화시킨 겁니까. 김건모라서? 이소라가 뛰쳐나가서? (제일 선배와 MC 둘다 놓칠 것 같아서?) 아니면 그 탈락의 공포와 후폭풍(김건모 7등..역시 한물갔나? 등등 인터넷 리플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다른 가수들이 더 참여를 안 할까봐?

 

미친 거 아닙니까. 애초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수들에게 애정과 감탄을 하며 시청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애정과 감탄과, 또 감정이입은 그들이 처한 끔찍한 상황(잃을 것만 잔뜩 있는 그들이 서바이벌 상황에 놓였다)에 일정부분 기인하고요. 아, 정말 그네들이 1등한다고 대체 뭘 얻냐고요. 슈스케도 아니고.  그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가장 큰 유인은 '높은 시청률의 방송에 노출된 후 그들의 실력과 사람 자체에 반한 새로운 팬들이 대거 유입됨'과 같은 효과 아닌가요. 그런데 이렇게 첫 번째 탈락 부터 예외를 두면 시청자가 대체 뭘 믿고 이 프로에 진심으로 동화되지요? 막 쪼이고 긴장해서 보고 있다가도 '이러다 또 알아서 구제할지도..'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재미 없어요. 더구나 그렇게 좋은 무대를 보여준 가수들임에도, 거기에 정말 감탄했던 저인데도, 지금 기억나는건 마지막의 병맛 뿐인걸요. 시스템이 흔들리면 그 속의 좋은 것들은 뒷전으로 물러나죠. 흔들리는 세계만 보이니까. 편집 욕 부터 제작진 욕이 많았던 지난 두 편을 여러 번 돌려 보며 환호했던 저까지도 맥이 탁 풀리는데, 인터넷에 '병진프로 ㅋㅋㅋ'라는 욕이 벌써 난무하는데 (대체 시작한지 몇 회나 되었다고. 달랑 3회라고요 3회. 그것도 본격적인 첫 시작이 오늘인데.) 강호동과 유재석이 제대로 휘어잡고 있는 시청자들 빼앗아오기 참 쉽겠습니다 그려. 편집도 별로고 진짜.. 그닥 하는 것도 없어뵈는 예능인들과 좋은 무대 보여주는 가수들 사이에 X같은 편집이 난무하는 그냥 그런 일밤의 쇼프로가 되겠어요. 이렇게 어리광부리고 쉽게 물러나고 엉성한 쇼프로에 참여한 가수들은 대체 뭔 죈지..기가막힌 편곡에 혼이 담긴 노래를 들려준 가수들은 대체 무슨 죄냐고요.

 

아 진짜 생각해도 정말..  예외를 둘 거면 PD와 강호동이 밀땅하는 것 자체가 재미인 1박2일처럼 그렇게 흘러가기라도 하던가. 아니, 서바이벌 프로라고 그렇게 선전을 팡팡 때려놓고, 순전히 '그런 면면의 가수들이 왜 서바이벌에 나가? 심지어 그 가수들 중에 탈락자가 나온대..헐..대체 누가...???' 식으로 시청자들을 부추겨놓은게 근 한 달인데, 이게 대체 뭐에요. 프로그램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대형 사고를 책임 PD가 얼굴을 걸고 저질러버리다니.

 

이럴 거면 애초부터 '재도전 기회는 있습니다' 하고 미리 이야기를 하던가요. 그러면 이렇게 뒷통수 덩...한 느낌은 안 들잖아요.  

 

 

5.

 

 쓰다 보니 뭔 소리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이렇게 짜증나는지 한심할 정도. 뭘 기대했겠어요. 아 진짜. 슈퍼스타 K제작진 불러오라그래.  뭔놈의 프로가 착착 정해진 룰 대로, 잘 깔린 시스템에 맞춰 휘잉~ 활공하듯이 진행되는 맛도 없이 지진부진하니... 뭐냐고요. 제작진은 한 프로그램의 시스템과 분위기를 만들고 유지시켜야하는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줏대도 없고 시청자들 눈 사로잡는 실력도 그닥이고 뚝심도 없고 결단력도 없고, 결정적으로 프로그램의 본분을 잊고!!!  시청자를 배반하려면, 그 과정에서 기쁨이라도 주던가. 이거 예능 프로 아니었나요? 왜 상황에 휘둘려 변명하다가 사람들 기분 나빠지고 힘 빠지게 하는지. 재미있으려고 보는 프로인데.. 

 

 

6.

 

가수들 무대 좋았어요. 정말 좋았다고요.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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