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위플래쉬를 두번째로 봤습니다.

2015.03.27 23:56

bete 조회 수:1621

두 번 보면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더 자세히 복기할 수 있어 좋았네요.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이 정말 빈틈 없이 꽉 짜인 영화입니다.
플롯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반면에 모호한 메세지도 맘에 듭니다.
플레처는 열정적인 스승이기도 하고 인간 쓰레기 싸이코이기도 하죠.
네이먼도 드럼에 혼을 바친 장인이게도 하고 드럼에 미친 싸이코이기도 하구요.
어차피 현실의 사람들은 착한놈 나쁜놈으로 손쉽게 가를 수 없어요.
이렇게 논쟁을 부르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봅니다.

첫번째 볼 때는 미국에서도 근성을 칭송하는 영화가 나온 건가 생각했는데
두번째 보니 느낌이 또 다르네요.
플레처와 네이먼의 목표는 최고의 예술인이 되는 거죠.
근데 그걸 돈이나 권력같은 사회적 성공을 은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위플래쉬는 현실의 권력관계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플레처를 이미 성공한 사회의 선배이자 기득권자입니다.
네이먼은 이제 갓 사회에 진입한 새내기구요.
새내기들은 모두 사회에서의 성공을 바랍니다.
하지만 누가 성공할지는 기득권자인 플레처가 결정하죠.
강자의 지위를 이용해서 플레처는 새내기들을 착취합니다.
새내기들을 극단적으로 경쟁시켜서 가장 유능한 놈을 고르는 거죠.
정의나 도덕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오직 플레처의 목적을 가장 잘 이룰 수단을 찾는 거니까요.
네이먼은 플레처에게 인간이 아니라 도구에 불과합니다.
플레처는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었고 진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플레처의 마스터피스가 되기 위해서는
성공을 위해서 건전한 인간성마저 희생시켜야 하죠.
네이먼은 그렇게 자기도 싸이코가 됐고 플레터에게 철저히 착취당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득권자가 자기 지위를 후계자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 말 잘 듣고 자기의 명성을 날리게 해 줄 트로피를 원할 뿐이죠.
그래서 자기 커리어를 망친 네이먼을 엿먹이려고 했을 거구요.

우리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세계에서
네이먼같이 성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칩니다.
그렇지만 피지배층에게 성공이란 지배층을 위해
자신의 인간성마저 희생하고 착취당하는 것의
다른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득권자들은 절대 자기 지위를 놓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위플레쉬의 권력관계는 우리나라와도 많이 닮았습니다.
권력의 상하관계, 갑을관계가 더 발달한 곳은 미국보다 우리나라니까요.
성공을 위해 과중한 야근도 불사하고 가족까지 희생하면서
자신을 다그치는 나라,
상사의 불합리한 꼬장도 묵묵히 다 감수하는 나라,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위플레쉬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흥행한 건
플래처와 네이먼의 관계가 많이 익숙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구요.
지본주의 경쟁 사회의 은유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래처를 위해 변명해 보자면
플래처는 자본주의 경쟁 질서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적자생존을 믿지 모두가 어우러져 잘 사는 사회를 믿지 않습니다.
행복한 필부보다는 불행한 찰리 파커가 더 낫다는 사람이죠.
세상은 호락호락한 게 아니니까요.
플래처는 자신이 비열하다는 걸 알지만 사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논리를 체화해야 하니까요.

플래처가 최고의 드러머를 끌어내기 위해
네이먼을 닥달했을 수도 있고
자기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네이먼을 착취했을 수도 있어요.
아마 둘 다일 겁니다. 그래서 플래처라는 인물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플래처는 의외로 흔한 인물일 겁니다.
성공했다고 칭송받는 많은 사람들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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