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05.21 13:27

여은성 조회 수:2650


  1.예전에 쓴 글에서 세상이 뭔가 두리뭉실한 곳이라 싫다는 글을 썼군요...흠. 바로 전에 쓴 글에선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도 없고 사람들과 잘 지낼 수도 없다는 글도 썼고요. 내가 사람들과 가장 잘 지낼 수 있는 건 아주 먼 거리를 유지한 채로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 정도인 거 같아요.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고 진짜로 친하게 잘 지낸다...그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2.이렇게 말하면 성질이 나쁠 거 같고 자주 싸울 거 같겠지만 최근 십년동안은 한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상대가 건방지게 구는 걸 참아주다가 어느 순간 "지금 막 니 건방짐 점수가 100점이 됐어. 이제부터 너하고는 말 안할거니까 너도 나한테 말걸지마."라는 말을 하고 일어나 버렸거든요. 이렇게 해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모조리 정리가 됐어요. 그런데 아무도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저는 친구를 만들면 안되는 거 같아요. 이상한 게 사람들은 친구가 되기 전에는 깎듯이 굴다가 친구가 되면 건방지게 굴더라고요. 저는 친구가 아닌 사람을 거만하게 대하고 친구에겐 깎듯이 대하는데...뭐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아픈거죠. 



 3.모든 사람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건데 저 같은 타입의 사람은 행복을 찾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바베큐파티에 초대받는 거도 아니고 주말에 사람들과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는 거도 아니고 뮤지컬 동호회에 갈 수 있는 거도 아니고 애프터눈 티파티에 초대받는 거도 아니고 사람들이 할일 없이 모여있을 떄 '아 맞다! 은성이도 부르자!'같은 말이 나올 일은 절대 없는 거죠.


 

 4.흠.



 5.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도 없고, 세상에 잘 보이려는 노력도 절대 하기 싫으면 그냥 고립되는 거죠. 주말 맥주 모임에 나타나지 말아 줬으면 하는 그런 사람으로 평생 사는 거죠. 그런 사람은 결국 할 게 두가지 중 하나밖에 없어요. 골방에 앉아 20년 전에 유행했던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거나 사다리를 한번 올라가 보는 거죠. 



 6.위에 말했던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는 건 비용에 관한 거예요. 사람들이 모이는 바베큐 파티나 주말 맥주 모임은 별로 돈이 안들잖아요. n분의1 하니까 더 싸고요. 



 7.흠 갑자기 어느날 교수를 만나러 가본 일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어요. 물론 교수는 여러 명이지만, 그 교수는 젊었고 디자인 전공이었어요. 얼마나 젊었냐면 예비군이 있는 날은 학생들과 함께 예비군 훈련을 받을 정도였죠. 그리고 자기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어요. 


1년 전인가 2년전인가 싶은데...극도로 거만해져 있어서 찾아가서 뭐라고 할까 고민했어요. 지난번 강원랜드 글처럼, 뭔가 연극적인 걸 좋아해요. 이건 친구가 없어서 좋은 점 중 하나예요. 친구가 있고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끊임없이 평가받기 때문에 그런 걸 하면 평가가 내려가잖아요. 하지만 아무데도 속해있지 않으면 가끔 그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도 돼요. 누가 어떤 평가를 내리든 여전히 나는 내세상의 왕이니까요. 돈을 많이 번 날은 가까운 강남이 아닌 굳이 먼 신촌거리로 가기도 해요. 전 대학생들이 희망에 찬 표정으로 차없는거리를 걸어다니는 신촌을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날 만큼은 그 거리에서 진짜로 기분좋을 이유가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인 거죠. 그 젊은이들 사이에서 베스킨라빈스 파인트를 들고 먹으며 걸어가면서 '씨발 난 세상의 왕이다!'라고 소리쳐도 상관 없어요. '저 사원 다음 달까지 감봉 징계 내려' 하거나 '앞으론 여은성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참 기분좋은 일이죠.


 교수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면서 "마호멧이 산에게로 오지 않으니 산이 마호멧에게로 왔노라!"라고 외치기로 정했어요. 왠지 그러면 재밌을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사실 그건 그 교수를 한번 보러 그 달에만 두번째인가 세번째 가는 거였어요. 아마 첫번째 허탕은 학교가 MT날이어서 비었고 두번째 허탕은 월요일날 가서 전공수업이 없는 날이라서 그 교수가 없었던 거였을 거예요. 세번씩이나 보러 가는 거라 좀 짜증이 난 참이었어요. 여기까지 읽고 '왜 약속을 잡고 가지 않는 거지?'라고 갸웃거리는 분도 계시겠지만...저는 절대 약속을 잡거나 하지 않아요. 가서 있으면 보고 없으면 그날은 공치는 거죠. 가는 데 한시간걸리는 파인다이닝도 그냥 가서 운좋게 남는 자리가 있으면 먹고 아니면 그냥 그날 점심은 굶어요.


 휴.


 그런데...내가 누군줄도 모르고 일단 인사해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교수실 있는 복도로 걸어가는데 복도에서 나오는 그 교수랑 마주쳤어요. 교수가 반가워하며 학교엔 왜 왔냐고 물어봐서 교수님 보러 온 거라고 하니까 립서비스인 줄 알더군요. 그래서 진짜로 교수님을 보러 한시간 걸려서 온 거라고 했어요. 모두가 닮고 싶어했던,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는 교수님을 보러 온 거라고요.


 교수는 뭐, 보러 와준 건 고맙지만 수업은 한시간 후에 있고 그 한시간동안 역에 가서 뭐 볼일 볼 게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학교 정문까지 걷다가 헤어지려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냥 수업까지 한시간 동안 커피나 먹자고 하더군요. 교수에게 커피를 얻어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그랬어요. 교수는 누군가가 연락을 하고 오면, 대체 뭘 목적으로 찾아오는 건지 초조해진다면서 이렇게 약속을 안 잡고 오니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뭐 립서비스였겠죠. 아마 당시에 논란이던 평창올림픽 디자인을 한 사람이 그 교수 지인이라 그것에 대해 이리저리 얘기했던 거 같아요. 저는 그 디자인이 별로라고 말한 거 같고 교수는 그 디자인이 꽤나 마음에 든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다시 교수실까지 걷다가 복도에 난 창문 밖을 봤어요. 교수실에 있는 그 창문에서는 축구장이 바로 보였는데 늘 누군가는 그곳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죠. 축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교수에게 이번 여름엔 자전거를 배우러 갈 거라고 말하고 헤어졌어요. 


 그 교수를 만나고 얘기도 하고 커피도 마셔서 물론 좋긴 했어요. 하지만 진짜로 좋았던 건 더이상 그 교수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인한 거였어요. 그건 이제 이 세상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걸 확인한 것과 같았거든요.(남자 한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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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와서 보면, 그 교수를 복도에서 만난 게 다행이예요. 교수를 다시 만난다면 '허허 안녕하십니까 교수님'이라고 할 거 같아요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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