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치르고...

2015.11.18 17:10

가라 조회 수:4117

0.

아버지는 전형적인 '산업역군' 세대였습니다.

중동에도 가보셨고, 미국이나 유럽에도 가보셨고.. 국내 여러 곳에도 흔적을 남기셨지요. 젋었을적 몸바쳐 외화도 벌고 사업도 하셨지요.

그리고 그 댓가로 당뇨와 혈압을 얻으셨습니다. (대한민국은 박통이 잘나서 이렇게 된게 아니라 그 시대 아버지들이 건강과 맞바꿔 성장을 한것인데.. 박통2는 그걸 모를겁니다. 본인들도 모르니까요.)


얼마전에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건망증이 생겼다고 하셔서 대학병원에서 퇴행성 질환과 치매검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없는건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평소에 '오랫동안 누워있다가 죽고 싶지 않다. 가족들에게 민폐다. 아무래도 오래 못 살것 같다.' 라고 하실때마다 저희는 '원래 골골팔십이라고 하더라, 가족들이 걱정되면 운동 열심히 하시라.' 라고 해왔습니다.

몇년전부터는 가방을 보여주시며 '내가 쓰러지면 이 가방에 필요한거 다 들어있으니 열어봐라' 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알아요 아버지.. 그만 보여주세요' 라고 하면 '너희들이 정신없어 잊어버릴까봐 그러는거야' 라고 하셨지요.


1.

처음에 제 핸드폰에 아버지 번호가 뜰때는 또 잘못 거셨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린 저희 아기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다가 실수로 잘 못 눌러서 전화가 올때가 있었거든요.

바로 두시간전에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아기 재롱을 보시고 허허, 하하.. 하고 끊었기 때문에 전화 올일이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구토를 하시고서는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일단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가시라고 하고서는 부랴부랴 저도 챙겨 입고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미친듯이 달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기본적인 검사와 촬영이 끝나있었습니다.

담당 레지던트는 CT 사진을 보여주면서 '교수님과 상담을 해봤는데 수술을 하더라도 의식을 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라고 하더군요.

그 병원 중환자실은 자리가 없어서 수술이 가능하고 중환자실이 있는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수술을 하시면 오랫동안 의식없이 누워 계셔야 할 수도 있다. 앰뷸런스 타고 가는동안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고민하시고 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해보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정도면 수술 해봐야 소용 없다는 말을 돌려 말한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가 평소에 '내가 쓰러지면 호흡기 달지 말고 자연사하게 놔둬라' 라고 말씀하신 것도 있고, 또 최근에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시면서 거동이 좀 불편하시다고 의기소침하셨기 때문에, 수술을 해서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누워만 있어야 한다면 아버지가 자책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시고요. 앰뷸런스를 타고 가면서 저희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새로 옮긴 대학병원에서는 수술동의서를 내밀더군요. 아직 젊으신데 해보는데까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물어봤습니다. 

'수술을 하면 의식이 돌아오나요?'

'보장은 못 합니다. 하지만 돌아올수도 있습니다.'

'의식이 돌아온다면 거동도 할 수 있나요?'

'음..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수술을 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심폐소생술 금지 요청서를 내밀더군요. 그래서 서명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번째 병원 의사가 냉정하게 이야기 안해줬으면 저희는 헛된 희망을 품고 수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아버지가 들어가신 것을 확인한후, 집에와서 아버지 가방을 열어보니 몇년전에 실린 '사전진료의향서'에 관련된 기사 스크랩과 함께 본인이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경우 호흡기를 떼고 자연사 하게 해달라는 유서, 저희는 가입하신줄도 몰랐던 상조회증서 등등이 들어있었습니다.



2. 

그렇게 아버지는 일주일동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계셨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2번 밖에 안되기 때문에 어머니는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두번씩 왔다갔다하셨지요.

저는 어머니의 기력이 걱정되어 집근처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알아봤는데, 대학병원에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협진센터 말로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학병원들이 잘 안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중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요양병원들을 알아봤는데 역시나 받겠다는 병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어느정도 시설을 갖추고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처음에 대학병원에서 연락했을때는 요양병원 원장은 안받겠다고 회신을 하였는데, 저희가 직접 찾아가니 부원장이 사정을 듣고 받아준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옮기니 면회가 자유로와지고 어머니도 옆에 계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와 아기도 처음으로 면회를 왔습니다. (저랑 같이 올라오긴 했는데 아기를 대학병원에 데려가봐야 면회도 안되서 계속 부모님집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손자 왔어요' 라고 하고 아기가 소리를 내니 의식없이 일주일째 누워계시던 양반이 손발이 약간 꿈틀거리시더군요. 우연인지 정말 아기 목소리를 듣고 반응하신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양병원 부원장은 아버지의 진료기록지를 보고 진찰을 하더니 '빠르면 2~3일 밖에 못 버티실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닥치면 정신없으니 미리 장례식장도 알아보고 준비하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저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도 '이거 내려가다 연락받고 다시 올라가게 되는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급하게 올라오느라 아기 짐이나 저희 짐도 제대로 못 챙겼기 때문에 한번 집에 오기는 해야 했지요.



3.

새벽 2시에 연락을 받고 다시 부랴부랴 올라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산소포화도는 이미 60 아래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착하고 20분뒤에 임종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도착하기를 기다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가입하신 상조회에 연락을 하고 미리 정해뒀던 장례식장에 연락을 하니 다행히 저희가 원하는 크기의 빈소가 비어있더군요. 장례식장에 도착해 안치실에서 확인을 하는데 옆에는 94세, 91세, 87세 라고 적혀있더군요. 다들 이리 오래 사는데 어찌 70도 못 사시고 돌아가시나.. 그렇게 이뻐하시던 손자 돌잡이도 못 보시고 가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날, 어머니에게 봉투를 맡기시면서 '애들 오면 줘, 돌잔치 할때 보태라고..' 라고 하시길래 어머니가 '그걸 왜 날줘, 애들 오면 직접 주지. 돌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라고 하셨답니다. 아버지는 '줄 수 있을때 줘야지. 내년에 못 줄지도 모르는데' 라고 하시면서 맡기시더랍니다.

평소에 '오래 못 살것 같다', '내년에 너희랑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라는 말씀을 하실때마다 '약한 소리 하신다' '마음 먹기 달렸다' 라면서 타박했는데.. 요즘은 환갑잔치하면 욕 먹는다고 할 정도로 오래 사는지라 60대에 벌써 죽음을 이야기 하고 준비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느끼셨나봅니다. 


본인이 평소 원하시던대로, 오랫동안 힘없이 누워 죽음만 기다리면서 가족들 고생시키지 않고, 아버지 성격대로 깔끔하게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시고서.. 그렇게 이뻐하시던 손자 목소리도 듣고.. 출근해야 한다며 내려간 큰아들이 임종을 못 보면 한이 될까봐 산소포화도가 내려가도 도착할때까지 버티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주변에 폐끼치는걸 끔찍하게 싫어하시던 분답게..


본인이 건강을 헤쳐가면서 이루고 모았던 것들은 친형제들에게 뜯기고 뺏겼지만, 할머니께 형제들끼리 싸우는 모습 보일 수 없다며 꾹꾹 참으시고서는 도리어 저희에게 물려줄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이랑은 인연 끊고 살라고 하셨지요.




5.

아버지가 저희 아기를 너무 이뻐하셔서, 기분이 안 좋으시다가도 저희 아기 보면 기분이 풀리신다고 해서 화상통화도 자주하고 거의 격주로 집에 올라가고는 했는데, 쓰러지시기 전 주말에 '피곤한데 다음주에 가지 뭐..' 하고 안올라간 것, 아기 태어나고 나서 짐이 많다며 안자고 당일치기로 내려온게 마음에 많이 맺히네요. 저희 아기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자길 이뻐했는지 기억도 못하겠지요. 조금만 더 사셨으면 손자한테 '할아버지' 소리도 들어보셨을텐데..  본인이 기력 떨어지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폐끼치고 서로 고생이라고 하시더니만.. 평소 성격이 급하셨는데, 더 약해져서 가족들이 힘들어하기전에 떠나고 싶으셨나봅니다. 


아기가 이쁜 짓을 하면 '이걸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리면 무척 좋아하셨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습관적으로 저녁에 어머니에게 영상통화를 해서 아기를 보여줄때면 이제 할아버지는 안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 집에 가면 아버지가 얼굴 가득 흐믓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몇걸음 떨어져서 저희 아기 노는걸 보시던게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는 평소 주변에서 남편 끔찍하게 챙겨준다는 소리를 들으셨는데, 잘못한거 많다며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우시더군요.

저도 아버지와 정치적인 견해차이로 싸우던것, 머리 컸다고 대들던것들만 기억이 납니다. 




P.S) 문상을 가거나 부의금을 보낼때 봉투에 꼭 어느학교 동창이라던가, 어느 회사라던가.. 어느 모임이라던가, 교회라던가.. 하는걸 쓰는게 좋겠습니다. 동명이인도 있고 이름만 있으면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경우가 생기더군요. 저희가 오실거라고 생각했던 분들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봉투가 모였는데 정작 상주들은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 정산할때 이 사람이 누군지 누구 손님인지 헷갈리더이다.


P.S.2) 그 와중에도 진심없이 입에 침도 안바르고 미안하다며 찾아와서는  또 뭐 챙겨가고 뜯어갈 거 없나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아버지가 평소 인연 끊고 살라던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느껴져서 씁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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