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대학교, 탈출)

2016.05.28 00:37

여은성 조회 수:1237


 1.대학교 때가 재밌었다고 노래부르는 글을 종종 쓰곤 해요. 그런데 대학교생활의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사실 별 거 없거든요.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대는 걸리는 거리였고 무엇보다 사실 나는 대학교 수업을 싫어했어요.


 

 2.싫어했는데 어떻게 대학생활이 재미있었냐면...해방과 탈출의 카타르시스를 언제나 느낄 수 있었거든요. 늘 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내가 싫어하는 학교 수업을 얼마나 덜 가면서 이번 학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계획이요. 


 

 3.교양 수업에 대해 얘기해 보죠. 전공 수업에서 탈출하는 것과 교양 수업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각각 달라요. 


 일단 교양 수업은 면밀한 계획보다는 직감과 운이 많이 좌우했죠. 미스디렉션이라는 말처럼, 인간에게는 순간적으로 인식의 사각이 생기는 때가 있거든요.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교수의 인식의 틈을 찾아내 강의실에서 사라지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유감스럽게도 어렸을 때 닌자수련을 받지 않아서 말이죠. 즉 어떤 일에서 어떤 일로의 전환...출석을 부른 직후라던가 수업 준비를 위해 잠깐 몸을 굽힌다거나 하는 그런 순간에 강의실에서 사라져야 하죠.


 강의실에서 사라지는 시간에 1.5초 이상 쓰면 안 돼요. 교수는 강의실을 부감하듯이 볼 수 있어서 1.5초 이상의 빈틈은 생기지 않거든요. 지금이다 싶은 순간이면 찰나의 순간조차 망설이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조용히 나가는 기술이 필요해요. 찰나의 순간 망설여버리면 이미 타이밍은 지나가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면 처음부터 탈출하기에 용이한 자리에 앉을 거라고 생각할거예요. 문과 가까이 앉는다거나 미리 문을 반쯤 열어두는 밑작업을 해 둔다거나 하는 거 말이죠.


 그러나 교수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왜냐면, 교수잖아요? 교수인 시점에서 일반인보다는 이미 똑똑한 거예요. 누가 봐도 저 녀석은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그냥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요. 그렇기 때문에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을 때는- 


 '규칙 1-절대 탈출할 마음이 없어보이는 사람이 앉을 것 같은 자리에 앉을 것'


 을 지켜야 해요. 



 4.휴.



 5.규칙1이 있다면 규칙 2도 있겠죠. 두 번째 규칙은 '사라져도 사라진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자리에 앉을 것' 이예요. 퍼즐들이 모여서 그림을 이루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진 그림에서 내가 퍼즐의 코어나 연결점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탈출하리라 의심받지도 않고, 교수의 인식의 틈을 찾아내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까지 다 해내도 들키는 거예요. 탈출하지 않을 것 같은 자리에 앉되 내가 사라지는 순간, 분명히 있었던 퍼즐이 사라졌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만한 자리에 앉으면 안 돼요.


 물론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은 모두 출석을 부른 후에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예요. 여기서 또 한가지...출석에 대답할 때 교수가 나를 한번 더 쳐다볼 만한 음색이나 음역, 음량을 내어선 안 돼요. 이것 또한 인간의 인식에서 흐릿해지는 그런 데시벨과 음색을 잘 꾸며내야 하죠. 



 6.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사실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탈출은 예술이라는 걸 전하고 싶어서예요. 종합적인 에술이죠. 게다가 거대한 혼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기도 해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도 교수가 왠지 출석을 한번 더 부르고 싶다는 이유로 출석을 불러버리면 탈출 실패니까요. 그래서 느낌이 안 좋은 날은 탈출에 성공한 그곳에 제발로 돌아가기도 해요. 



 7.예술일 뿐만 아니라 충실감이기도 해요. 왜냐면 매일이 충실하거든요. 매일 감옥에 출근하면서 오늘은 어떻게 탈옥을 하지? 오늘도 해낼 수 있을까 내가? 하는 불안감...해방되었을 때의 카타르시스...뭐 그런 것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죠. 그래서 대학에 다시 가고 싶은 거예요.


 

  8.언제 기회가 되면 전공 수업을 탈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네요. 전공수업은 교수가 내 얼굴을 알고 있는데다 사람수도 훨씬 적거든요. 게다가 귀찮게도(고맙게도) 나를 신경 써 주기까지 해요. 사라지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사라져버리는 것에 도전하는 건 포기하지 않는 거죠. 그게 열정이니까요. 


 사라지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는 전공 수업에서 탈출하는 건, 출석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양자적 존재가 되는 것에 도전하는 일이예요. 두 개의 세계에 동시에 걸쳐지는 위대한 도전이죠. 교수에게 관측되는 나와 실제의 내가 각각 다른 곳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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