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전쟁.

2016.05.28 07:19

잔인한오후 조회 수:2535

개개인마다 정보를 판단하는데 가벼운 편향이 있고, 그걸 보통 가치관이라고 부르더군요. 또한 개개인마다 정보를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하는데, 그건 보통 세계관이라고 부르더군요. 내집단보다 외집단을 훨씬 단순한 조합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타자들보다 자신이 훨씬 복합적이고 다차원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을 오류로 자주 지적되죠. 그런 오류가 잦은 이유는 세계를 더욱 복잡하게 이해할수록 판단을 내리기 힘들테니 그럴겁니다. 저도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과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서 매번 갈등하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세계가 단순한 - 저는 [맥락]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데 - [서사]로 이루어져 있기를 기대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쓰이는 세대론이나 계급론 같은 경우에도, 위대한 선인이 있었지만 그 핵심은 단순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종교도 마찬가지로 (깊게 파지 않으면) 단순한 서사를 제공하죠. 무언가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있고, 공통 서사로 올라설 수 있겠죠. 알알이 쪼개어 내는 일은 학자들이 담당하구요.


제가 이번에 어떤 영상을 봤는데, 보면서 눈물이 마구 흐르더라구요. 참, 감정이 복받치는 일이 더 잦아지고 있어요. 이번 강남역 사건에서 있었던 충돌이었는데, 어떤 흰 마스크를 쓴 남자 한 명과 썬글라쓰를 낀 남자 한 명을 둘러싼 많은 추모객들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확성기 같은 것도 준비 안해간 것을 봐서는, 이런 상황에 완전 초심인 인간 같았어요. 몇 십마디 하고 응수받고, 몇 십마디 하고 응수받고 하더군요. 제가 이 영상을 보고 왜 그렇게 슬펐냐면... 한국사회에서 면대면 대화를 하기 위해선 이 정도 극악한 상황에도달을 해야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대화의 국면 없이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암울하더군요. 저는 꽤 오랫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거의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전자로 후자를 어느정도 대체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사람인데(인간관계를 가상으로 대체해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최근에는 아니라는걸 거의 받아들였습니다. 인터넷에서의 롤플레잉 채팅이 희곡이 될 수 없는 이유처럼요. (희곡 교수님께서는 불가능한 이유로 '넷은 신체가 없다'고 하셨죠)


제 입버릇 같은 말이 있습니다. '더 공부해보고 이야기하겠습니다'인데, 좋게 말하면 자세하게 파악을 해서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금 한 이야기로는 들을 생각이 없고 판단을 뒤로 지연시키겠다는 말이죠. 이것은 '아뇨, 그건 틀렸고 전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보다 더 치사하기도 합니다. 후자면 피아가 식별될텐데 전자에게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힘들테니까요. 이번 선거 예측이 그렇게 틀어진 이유로는 이런 식으로 판단을 뒤로 미룬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흔히 부동층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설문조사에서 '모르겠음'을 선택한 사람들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선거를 하기 바로 직전까지 결정을 미룬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런겁니다. 처음부터 담론을 특별하게 판단하고 있는 사람은 적을거란 것이요. 물리세계에는 존재하지만, 누구에게나 누군가 물어보기 전까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이슈들이 많을 겁니다. 아주 얇은 지식으로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을지는 모르나, 가치관까지는 결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죠. 저는 요즘 사람들이 향유하는 정보매체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얼마나 시간을 점유하는 지 궁금해요. 정보습득을 단순히 인터넷에서만 한다고 봅시다. 그럼 하루에 넷에 머무르는 시간이 5시간이라고 했을 때, 듀게에 2시간, 트위터에 1시간, 인스타그램에 2시간 이렇게 보낸다거나, 페이스북에 4시간, 카카오스토리에 1시간 이렇게 보낸다거나 하겠죠. 아니면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도 지식의 취사선택으로 구조를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이런 식으로 가정합니다. 같은 커뮤니티를 활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게시물을 선택하여 읽는건 개인마다 매우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가 커서 가끔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지인은 읽은 글인데 제가 안 읽거나 제가 읽은 글인데 지인은 안 읽거나 {그게 아예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수} 하는게 많을 때 참 놀랍더군요) 취향에 맞춘 취사선택은 개인의 서사 중 세계관을 구성합니다. 이 세계관은 같은 매체를 활용할수록 그나마 비슷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논란이 있을 때 운이 좋으면 판단까지 이르릅니다. 그런 항목들이 가치관을 이룰겁니다. (당연하게도) 개개인이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위상을 설정했을 것이고 다들 다른 세계를 보고 있게 되는 것이겠죠.


판단에 도달하기 전 인식 상태로 머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판단에 도달해서 행동으로 이르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겠죠. 가장 약한 단위의 행동인 '온라인 댓글달기' / '온라인 글쓰기' 에 도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도 꽤 판단으로 진전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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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 사태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점은 왜 자꾸 '서사 끼워팔기'를 하고 싶어하는가였습니다. 천안함 장병들과 강남역 살인사건은 매우매우 약한고리로 연결되있고, 군역과 여성인권도 상당히 약한고리로 연결되있죠. 어째서 한 쪽의 서사에 연결고리가 약한 다른 쪽의 서사를 끼워 넣는가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배제된 서사를 이해할수가 없다, 는 것으로요. 세계를 이해하는데 단순하고 좋은 도구인 서사에 자신의 (주된) 자리가 없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보면 남성이 보조적 위치에 존재하는 서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되는 것이죠. 익숙하지 않을테니까요.


이번 추모에서 제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을 이용하고 있는가?' 제가 무언가를 판단까지 내릴 때 자주 이용하는 것은 당사자주의입니다. 그가 거기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인가? 하는 것이요. 피해자-여성의 환유 관계를 강한 고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사자로 속할 수 있다는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약한 고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일이 당사자를 제외하고 진행되는 정치적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죠. 최근의 저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여성주의에 우호적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피해자의 혈연이라고 알려진 사람의 토로에 대한 반응이었죠(사실 확인도 안했지만).


전 오래전에  [쿨하지 못해 미안해, 70 - 49 = 21 http://www.djuna.kr/xe/board/3531298 ]이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공지영의 남성 성매매 통계 오기에 대한 분노로 쓴 글인데요. 지금 보면 통계에 대한 애정 때문에 통계 자체의 견고함이 공격받는걸 못 참는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창피한 글이죠. 그래도 지금도 이런 부수적 피해에 대한 분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논쟁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용어 때문에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듀나님이 이 용어를 쓰는 걸 보고 투덜거렸다가 마음을 비운 일이 있었죠.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남성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옮겨보자면 '남성이 허락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용어' 정도가 되겠죠. 사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전 판단을 미뤘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절묘한 이야기는 '남자는 다 늑대'와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서사를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둘 다 싫기 때문에....)


저는 통계를 믿기 때문에 범죄가 근 3년간은 개선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방향과 사회적 반응은 상관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 이렇게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게 이상한게 아니라, 지금까지 반응이 없었던게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왜 이 꼴, 이 모양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가'는 예전부터 화두가 아니었던가요. 최근 짧은 시일 내의 강력 범죄들도 통계적 빈도 상에서는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 가정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포가 거짓이 되는건 아니죠. 지금까지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일상이 아니었을 뿐이라는 의미일 뿐이지요. (사실 범죄통계는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어 손을 대기 무섭습니다...)


저는 어느 한 편의 승리, 같은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둘 다 이기거나, 둘 다 지는 것 뿐입니다. 이젠 익히 알려졌듯 한국이 소멸할 것이냐 말 것이냐도 걸린 문제이니까요. 혁신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곳들도 인구의 새물결이 흘러 들어가자 융합!이라고 하면서 통/폐합을 하고, 감축!이라고 하면서 특별제도들을 전부 폐지하고 있지 않나요.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인구 감소가 도달하여 후려쳐서 고통스러운 재조정을 시킬겁니다. 게다가 이건 도달한 결과에 의한 임기응변일 뿐이구요. 많고 견고한 서사들이 나와 공통 서사로 올라서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 세계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걸 받아들이도록 말이에요. 그것이 이 전쟁의 결말이 되겠죠. (국지전과 참호전으로 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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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견고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깊게 정보를 관조할 수 있는 세계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 조감-권력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넷에서 1인-미디어를 조합하여 세계를 조감하고 있다는 권력-환상을 얻어 내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는 기분 나쁜 매체를 쉽게 목을 칠 수 있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타임라인이나 RSS, 취사선택한 뉴스 등으로 조성할 수 있는 (환상)권력을 얻게 되었죠.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할수록 세계관/가치관은 (실제와는 상관없이) 매우 두터워집니다. 그런 매체공간의 분절이 현재의 개인 서사의 분절로, 그리고 서사전쟁으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를 산지 오래된 것입니다. (일상을 채우는 시간을 점유하는 공간들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것들이 교육을 대체하고 있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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