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이런 게임이 있었더랬습니다.


LIMBO_game.png


아무 설명 없이 기괴하고 음울하게 아름다운 흑백 세상 속에 플레이어를 툭하고 던져 놓고 악몽 같은 체험을 선사했던 게임이죠.

PC, 콘솔은 물론 모바일까지 오만가지 플랫폼으로 다 출시되었고 또 나름 입소문이 많이 탔던 물건이라 게임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거의 플레이해보셨을 텐데.

여러모로 굉장히 '모범적인 인디 게임'이었습니다.

인디 게임의 한계인 '돈이 없어요'를 게임의 개성으로 승화 시킨 영리한 물건이었거든요.


그래픽에 들일 돈이 없어요 -> 이미지를 흑백에 대부분 그림자로 처리. (대신에 움직임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성우 더빙할 돈이 없어요 -> 대사가 없습니다.

음악 만들려면 작곡가를 섭외해야 하는데... -> 음악도 없습니다.

cg 무비는 모두 다 돈이죠. -> 없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흑백 무성 영화 같은 게임이 탄생했는데. (분위기를 살려주는 최소한의 효과음은 있습니다)

워낙 미술적으로 빼어난 비주얼을 선사해서 그게 다 개성 겸 장점이 되어 버린 거죠.


사실 전 해보고 좋게 평가하면서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습니다만.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고.

암튼 굉장히 독특하게 빼어난 게임이었지만 비슷한 게임을 또 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게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6년 정도 흘렀다면 어떨까요. ㅋㅋㅋㅋ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INSIDE_game.png

(메타 리뷰 점수로 언차티드4와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ㅋㅋ)


신작이 발매되었죠.

이미지만 봐도 아. 이 게임이 그 게임 만들었던 놈들 게임이구나... 싶지 않으십니까. ㅋㅋㅋ


트레일러도 한 번 보시고.



여러모로 전작 '림보'의 파워업 버전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 설명 없이 툭 떨어져 이유 모를 개고생모험을 하는 소년.

컬러가 되었지만 그냥 분위기를 더 깊게 살려주는 정도이고 여전히 흑백 느낌이며 빛과 그림자가 강조되는 이미지.

여전히 대사도 음악도 없구요. ㅋㅋ

방향 이동 외엔 '동작' 버튼 하나와 '점프' 버튼 하나만 쓰도록 하면서 적절한 화면 연출로 다양한 액션을 유도하는 직관적 게임 플레이도 그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런 UI도, 자막도 존재하지 않는 화면 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개성 넘치고 압도적인 비주얼에 대해선 설명을 생략하구요.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직관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레벨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UI, 자막,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그냥 게임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다 짐작이 갑니다.

움직임을 '조작'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게 되어 있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동작이 연출되어 다양한 액션을 소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주고요.

(예를 들어 뭔가에 쫓기는 가운데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알아서 달리고, 점프해서 간당간당하게 어딘가에 매달리면 낑낑대는 애니메이션이. 물리 효과도 나름 있어서 물에 뛰어들 때도 뛰어내리는 높이에 따라 물 속에 빠지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 모든 것이 퍼즐 풀이에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또 게임 속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여러 장치들이 매력적입니다.

게임을 실행시키면 타이틀 화면이 뜨면서 걍 바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ㅋㅋ 프레스 스타트 이런 거 없구요.

튜토리얼도 없습니다. 우리가 친절하게 직관적으로 게임 만들어 놓았으니 알아서 하라는 거죠.

세이브, 로드도 따로 없고 걍 강제 오토 세이브인데 그 흔한 '이 표시가 뜨면 세이브 중이니 끄지 마세요' 이런 메시지도, 표시도 없이 진행도가 '그냥' 저장됩니다.

컷씬 같은 것도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가끔 벌어지는 이벤트 역시 클로즈업이나 시점 변화 같은 거 없이 게임 화면 그대로 진행되구요.

그런데 '정말로 게임이 직관적'이고, 또 '그냥 이렇게해도 연출이 적절'하도록 절묘하게 잘 만들어 두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ㅋ 

이음새 보이지 않게 잘 만들어 놓은 수공예품 같은 느낌이랄까요.


마지막으로 '림보'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퍼즐이나 플랫포밍도 다양하면서 적절한 난이도로 큰 스트레스 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비주얼도 '림보'보다 다방면에서 확실히 업그레이드 되어서 장면 하나하나가 미술 작품처럼 신경 써서 구성되어 있구요.

(시점을 조작할 수 없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이 게임하는 내내 듭니다.)

'림보'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던 은유적인 스토리 라인도 무작정 '알아서 해석하시오'가 아니라 표면적 정답 하나를 깔끔하게 던져준 후 그 이상은 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떡밥을 뒤지고 파내면서 짜맞춰 보도록, 좀 더 친절하게 바뀌었습니다. 사실 전 '림보'의 스토리는 싫어했는데, 이야기의 실체가 정리되는 것 없이 그냥 떡밥을 위한 떡밥들만 잔뜩 뿌려진 모양새가 너무 노골적으로 낚시질 하는 느낌이라 별로였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냥 플레이하는 재미가 훨씬 나아요. ㅋㅋ 

유일한 단점이라면 플레잉 타임이 3시간 이내 정도로 짧다는 점인데, 워낙 완성도가 좋은 데다가 다른 게임에선 찾을 수 없는 강렬한 개성이 있어서 용서가 됩니다.


암튼 제목에도 적었듯이 제겐 올해 지금까지 플레이 해 본 게임들 중 최고의 게임이구요.

'림보' 이후로 이 게임이 나오기까지 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회사에서 또 다른 게임 만들려면 2020년이 넘어갈 태세이니 격려(?) 차원에서라도 한 번 질러 주시죠. ㅋㅋ



사족.


제작사에서 친절하게 현지화 해 준 게임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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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면 이후로 다시는 한글을 볼 일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냥 대사도 자막도 없는 게임이니까요. ㅋㅋ 이걸 현지화 되었다고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ㅋ


사족 2.


림보 때와 마찬가지로 마소에서 제작 지원한 게임이라 플스로는 한참 후에나 출시될 겁니다만.

엑스박스 원이 없으셔도 걍 스팀에서 지르시면 됩니다.


사족 3.


스토리의 장르를 굳이 정해본다면 SF 호러입니다.

되게 무서운 장면은 없고 잔인한 장면도 구체적으로 보여지진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상 끔찍하다는 느낌은 종종 받게 되실 겁니다. 다채로운 주인공의 데드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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