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6 03:59
1.나는 악의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상대가 열받을 만한 말도 느낀 그대로 하곤 하죠. 왜냐면 몇 번 썼듯이 나는 혼자잖아요. 이 혼자라는 건...외톨이라는 게 아니라 내게 공짜는 없다는 거죠. 월급주는 사람도 점수매기는 사람도 없는 대신 교통비 지원이나 법인카드 같은 것도 없어요. 공짜 호의를 내게 주는 사람도 없고요. 여기서 그나마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건 말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딱 하나뿐이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편이예요.
2.그야 그냥 모임에서 보고 헤어지는 사람들에겐 그러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로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요. 그리고 모두가 자존심이 강하죠. 그들의 자존심을 좀 상하게 해도 전혀 미안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이 그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짓밟아버리거든요. 언젠가 썼던 항성형 인간들이 대부분이라서요.
3.그러나 어쨌든 그들을 보다 보면 뭐랄까...그들의 항성계에 속한 사람들도 당연히 보게 돼요. 행성이나 위성 노릇을 해도 그들에겐 각자의 자부심이 있어요. 아직 어리다는 것, 아직 예쁘다는 것, 아직 주말만 되면 골프 치러 가자고 몸만 오라는 문자가 주르륵 온다는 것, 자신은 그래도 전화만 하면 바로 와주는 손님 몇 명은 꿰차고 있다는 것, 자신이 1인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2인자는 된다는 것...뭐 그런 것들이요. 그들의 자존심 역시 좀 상해도 그들은 괜찮게 지내요. 아직 자부심이 남아있으니까요.
4.휴.
5.내가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상대는 자존심만이 남아있는 상대예요. 아무리 직구만 줄창 던져대는 나라도...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말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어요. 이 말이 이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 걸 박살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솔직이 말하면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런 사람들'이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싫은 거죠. 난 정말 거짓말이 싫거든요. 말은 느끼는 그대로 하고 싶은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으면 할 게 빈말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쨌든 모든 걸 신경쓰게 돼요.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표정 목소리 크기 어투 손짓...모든 걸 신경써서 행동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언젠가 썼던 상황이 또 재현되곤 하는 거죠. 이 사람은 내 테이블에서 절대 안 떠나게 되고 젊은 직원들이 내게 와서 '은성씨 저 언니 좋아해요?'라고 묻는 상황이요. 그리고 꼭 뒤에 '저 언니 어제도 XX씨 테이블에 들이대다가 존나 까였어요.'같은 말을 덧붙여요.
6.한데...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연민의 한 조각이라도 내비치지 않는 거예요. 그건 나를 위해서도 그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거든요. 그들 입장에서는 다른 고객들에게 대놓고 꺼져달라는 말을 듣는 게 차라리 덜 엿같다는 걸 나는 잘 아니까요. 그들은 대놓고 꺼져달라는 말을 들어도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어요. 하지만...훨씬 어린 녀석이 얄팍한 동정심으로 친절히 대해주는 티를 내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약간이 아니라 산산히 부서지는 일일거예요.
그래서 나와 그 직원이 있는 장면은 다른 사람이 보면 뭐 그렇게 보일거예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직원을 묶어놓기 한 것처럼요.
22살이고 본업은 레이싱걸인 직원이 오면 '난 사장님 보러 온 거니까 넌 술 한잔만 받고 광속으로 사라져주지 않을래? 아니아니, 앉지 말고 서서 먹는 게 좋겠어.'라고 해도 괜찮아요. 왜냐면 그 직원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여전히 22살이고 여전히 레이싱걸이니까요. 하지만 자존심 하나만 남아있는 사람에겐 그럴 수가 없어요.
7.물론 내가 뭐 좋은 사람이라서 그러는 건 아니고...어떤 사람에게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게 부서지는 걸 내 눈으로 보는 것만은 싫을 뿐이예요.
그냥 그걸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면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 미안하면 미안한 만큼 돈으로 주고, 댓글은 정말 웬만하면 달지 말아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