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31 19:37
나의 부지도교수이셨던 마데 교수님과는, 요즘에는 일하는 대학이 달라져서 (교수님은 의학과 건강대학으로 옮기셨다), 예전처럼 매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히려 지난 몇년간 교수님과 내가 겪었던 사적인 일들에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면서 더욱 가까워진, 서로를 진정 친구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 내가 만난지 꽤 되었다라고 생각할 때 쯤이면 교수님이 먼저 점심먹을래? 라고 메시지를 보내실 때도 종종있고, 내가 먼저 보내면, 그렇지 않아도 생각했었는데 라고 답이 올때도 있다. 함께 서로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는 거에는, 그 사람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 관심사, 지난 번 했던 이야기의 연속으로 그 사람에 따른 하나의 패턴이 있다. 마데교수님을 만나면, 서로의 일이야기(어쩔 수가 없다....지난번 논문 출판되었어?) 선물이 이야기, 교수님 딸 이야기. 혼자되신지 4년이 지난 교수님은, 누군가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교수님은, 내가 S이야기를 한 뒤로는 꼭 요즘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가도 물어보신다. 정말 다행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교수님. 그리고 나면 교수님의 데이트 수난기를 이야기 하신다. 떠난지 얼마 안된 아내를 생각하고는 데이트 도중에 울었던 남자, 피크닉 준비를 다했다고 해서 갔더니 수퍼마켓에서 산 냉동 미트볼 한 봉지를 가지고 와서는 해가 나는 곳에 따뜻하게 데우라고 말하던 남자 (그 미트볼 냄새... ), 즐겁게 데이트 끝나고 마무리로 와인마시는 데 와인을 원샷하던 남자. 교수님은 마치 이 이야기들이 자신이 동참한 희비극인양 말씀하시고 나는 이야기에 따라 웃기도 인상을 찌프리기도 한다. 이번에는 '너희가 그렇게 좋은 데이트를 하던 그날 나도 참 간만에 즐거운 데이트를 했거든. 점심먹고 차마시고 콘서트가고 와인까지. 오래간만에 흠 잘하면 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가고 나서 연락이 없는 거야, 내가 메시지를 보내니까 바쁘다 라고 하던데 며칠 전에 봤더니 바쁘긴? 데이트 사이트에 들어와 있더라고, 그런데 뭐 나한테 연락을 했겠니?' 왜 그냥 정직하게 나는 그런 감정이 안들더라 라는 말을 못하는지. 왜 쓸데 없는 거짓말들을 하는 건지. 교수님께서, 그래도 프로필 같은 거 읽으면서 거른다고 거르는데 왜?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이분은 정말 교수님이다.) 거기다 대고 내가 '그런데 사실 프로필같은 거 읽으면 다 완벽하잖아요, 다들 나는 착하고 따듯하고 좋은 친구이며 정직하다고 말하지, 사실 나는 작은 일에 굉장히 짜증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고 예쁜 여자만 좋아하고 뭐 이런건 안쓰잖아요?' 라고 말하자 교수님이 까르르 웃으시면서 네말이 맞다 라고 하신다.
집에 돌아와서 두가지를 생각한다. 누가 데이트란 오디션이라고 말했는데, 알고 지내다가 좋아하게 된 사이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대상을 찾는 사이트를 통한 만남에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지독히 신경을 거르려도 그럼에도 좋아하는 감정을 방해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우리를 보통사람으로 만드는 결함들, 이 결함들은 있을 자리가 없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데이트 사이트에 나를 소개한다면, 사실 나는 청소하는 걸 무척 싫어하고, 문화 생활에 있어 스노브에 가까우며, 뭔가 불안하면 안달복달 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 같은 건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상대방이 정말 아무 결함이 없어야만 내가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남의 진실된 어찌보면 부족한 모습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나를 허상으로 만들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이건 무슨 자기 비하와 자만이 섞인 생각인지. 마찬가지로 내가 상대방을 향해 한 모든 말들은 나의 진심이라면서, 그가 나보고 한 말은 절반은 듣기 좋은 말로 받을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너 아플때 내가 돌봐줄께는 진심이면서, 그가 나한테 언제라도 너를 도와줄께 한 말은 그냥 하는 말이라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해도 되지만, 나는 너를 필요로 하면 안된다고. 언제부터 나는 진실된 사람이고 남의 진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런 행동을 당해서 상처를 입었다는 걸. 그렇지만 내가 다른 사람으로 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건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근본적으로 믿지 않으면서 대하는, 그런 행동으로 남을 상처 입힐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몇분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에게 (몸이 안좋으니) 잔디깍는 것을 도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하지 라고 답한 그는 내가 고추잡채를 하는 동안 시원하게 정원일을 해 놓았다. 다음에 깍을 때가 되면 다시 말해요 내가 깎을 께, 기계가 무겁던데 라고 말하는 그. 지금 결정해야 하는 큰 일들을 같이 이야기 하면서 당신을 오늘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누군가와 대화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라고 말할 때 응 언제라도 대화 상대가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일끝나고 들려요 (우리집과 이 사람 직장은 걸어서 15분 거리) 라고 말하자 응, 아마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라고 대답해 나의 말을 하나의 구체적인 계획으로 만든다. 그는 너무나 간단하게 나의 선의를 믿는다. 너 도대채 뭘 알고 나를 믿니? 라고 장난하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선의를 가진 사람으로 대해지길 바라는 것 처럼 상대방도 진실된 선의를 가진 사람으로 대해야지.
그가 집에 돌아가는 시각, 벌써 밤공기가 차다.
2015.08.31 21:12
2015.09.01 01:52
좀 있으면 단풍 아름다운 가을, 그리고 긴 겨울입니다. 형광등이 아니라 촛불로 밝혀진 집들 사이로 걸어가는 시간.
풍경같은 글이라니 좋네요.
2015.08.31 21:49
커피공룡님, 이제 책내셔도 될 것 같아요. 읽는 내내.. 이건 돈주고 사서 읽어야 하는 종류의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탁월하고 훌륭한 소설가가 목표는 아니셨겠지만 볼때마다 글이 더 좋아지고 마음에 와닿고 그러합니다. 글을 쓴 빈도수에 비해 하나도 늘지 않는것 같은 제 글과 비교해 보니 어딘가 숨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올려주시는 일상의 이야기는 너무 좋군요. 아무튼.. 행복하셔서 다행입니다.
2015.09.01 01:55
하하, 아마 술한잔 하시면서 읽으셔서 그렇게 느끼셨을거에요.
쿳시가 소설을 쓰는 건 한 세계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과 같다고 햤는데 전 그럴 능력은 전혀없습니다.
이정도 글쓰는 게 제 능력인데 너무 큰 칭찬하셔서 ,,, 좋네요 하하
2015.09.01 00:20
동네 친구 개산책 따라갔다가 비빔국수 사먹고 아이스크림 사서 집에 들어오니 커피공룡님 글을 읽을 수 있네요. 참 좋은 밤입니다:)
2015.09.01 01:56
비빔국수 먹고 싶어요!
2015.09.01 03:24
너는 나를 필요로 해도 되지만, 나는 너를 필요로 하면 안된다고.
뭔가 무겁게 와 닿는데요. 어떻게 하면 다시 믿을 수 있을까요. 믿는 건 기독교인이나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2015.09.01 13:27
기독교인에게 물어보세요 정말 믿는데 얼마나 힘든지. 말로만 편할때 믿는 건 쉬운데 정밀함을 때 내 생각이 늘 먼저가 되려는 경향이 았어요. 흑흑
2015.09.01 11:47
2015.09.01 13:27
그렇긴한데,,, 그럼 또 행복해지기도 힘들죠....
2015.09.01 13:47
2015.09.01 15:46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거 참 힘들지 않나요? 어른이 될 수록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2015.09.02 08:40
그래서 그분이 고추잡채를 드시고 가셨는지 궁금해지네요. ^^ 좋아하셨다면 다음엔 꽃빵을 쪄서 같이 준비하고 그분을 불러보시길. ^^
2015.09.02 12:34
원래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거였거든요. 꽃빵이랑 같이 먹었는데 타이완에서는 꽃빵은 그냥 꽃망만 먹는다고, 아침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한국에서는 이게중국음식이러니까 웃더군요. 고추잡채는 그런가? 하면서. 맛있게 잘 먹고 이야기하고 차마시고 그리고 갔어요
2015.09.02 12:58
그러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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