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20대 총선 리뷰입니다

2016.04.15 12:37

칸막이 조회 수:2803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아래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린 글이라 경어가 아님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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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전체 구도는 1여 다야. 안철수는 새정치 민주연합에서 탈당 후 호남계 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들여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독자 노선을 천명하였다. 잔류파 역시 '더불어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양자의 관계는 적대적이었고, 그 결과 단일화 역시 실패하였다. 여기에 좌파 계열의 정의당까지 존재하는 야권 분열의 양상.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를 만나 즐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새누리당의 대승을 거둘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는 각종 여론 조사를 통해 확신되었고, 새누리당이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180석, 심지어 200석까지 차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전망이 떠돌았다. 그리고 총선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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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 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


  그야말로 충격적인 결과이다. 새누리당은 과반은 커녕 제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 민주당에게 내 주는 수모를 겪었다. 야권은 철저한 분열상 속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두었고, 새누리당은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바닥 민심이 생각보다 훨씬 안 좋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닥 민심이 단순히 안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언론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정치적 편향성에 빠져 민심을 제대로 비추지 않으니 통증을 느끼지 못해 신체가 괴사하는 것도 모르는 환자 같은 형국이었던 셈이다.


  둘째, 새누리당과 그 스피커인 종편이 야권의 분열을 즐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 발밑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였다. 그들은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이 새누리당의 압승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야권의 분열을 부추기는 언동을 하였는데, 주변의 거센 비난에도 독자 노선을 밀어붙이고 있는 안철수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이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선거 막판에라도 국민의당이 단일화에 응하지 않을까 그것만을 걱정하였다. 때문에 단일화를 거부하며 더불어 민주당과 대립하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모습을 연신 소신있는 행위로 포장하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층에게까지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지지할만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리는 엉뚱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생 정당으로서 가장 부족하고 절실하였던 홍보를 적군인 새누리당과 종편이 대신 해 준 셈이다.


  셋째, 야권 지지층이 사상 최악의 참패가 예견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철저하게 전략 투표를 구사하였다. 이는 접전 지역이 많고 선거 판세가 불리하다고 인식되었던 수도권에서 특히 발생하였던 현상으로 보인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고, 국민의당은 전체 비례 득표율에서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선거 결과에 비관적이었던 야권 지지층이 절실함을 안고 수행한 전략 투표의 효율성와 선거 결과에 낙관적이었던 여권 지지층의 느슨함과 여유가 더해지며 발생한 기묘한 결과였다.


  넷째, 선거 이슈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갈등으로 완전히 흡수되어 버렸다. 새누리당은 선거의 주체가 아닌 구경꾼 정도로 취급되었다. 선거 국면에서 당연히 압승할 것으로 여겨지는 새누리당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선거 당사자인 새누리당조차도 두 야당의 갈등을 구경하고 간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거대 여당이 이슈에서 완전히 증발해 버린 이상한 선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지금 돌이켜 보아도 안철수가 취했던 전략은 야권 입장에서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무책임한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최선의 성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야권 분열이 새누리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안철수는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신당을 만들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체급을 비슷하게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국민의당의 규모를 키우고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세력을 깎아내는 작업 또한 병행되어야 했다. 여기서 안철수는 일반적인 야권 성향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야권 분열로 인해 새누리당이 이득을 얻는 것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는 단일화 결렬 문제와 관련해 천정배나 김한길 등이 머뭇거리며 꺼림찍해 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국민의당은 선거 막판까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수도권 지역에서의 야권 단일화에 응하지 않으며 안철수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이는 새누리당이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에 궤멸적 타격을 입히겠다는 의도 외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시각에서 새누리당은 절대악이고, 타도의 대상이다. 우리들끼리 싸우더라도 새누리당에 이득이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새누리를 막는 것이 대의이다라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있다. 이는 87년 대선에서의 트라우마이자 죄의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철수에게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 


  안철수는 국민들이 알아서 해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그러한 결과를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안철수는 그저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만을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단일화를 해서 새누리당의 의석수를 제한해봤자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득은 없다. 반면 끝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고 버텨서 경쟁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이 망가진다면 그건 오히려 이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철저히 망가져 국민의당과 체급이 맞추어지면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안철수는 일반적인 야권 사람들과 세계관이 다르다. 민주주의 대 독재, 권위주의라는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립 구도나 대의 같은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그가 구사하는 정치적 레토릭을 모두 제거하고 보면 그가 인식하고 있는 '정치'란 그냥 권력 게임이다. 내가 갖느냐, 아니면 남이 갖느냐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개혁'과 '정치 혁신'을 내세우면서도 노골적으로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을 내세우는 집단과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 총선을 통해 강한 존재감을 확보한 '국민의당'은 기묘한 정당이다. 당의 가장 강력한 기반은 호남이다. 여기 속한 국회의원들은 선거 기간 내내 '호남 정당', '호남 홀대 심판',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부각' 등을 내세우며 퇴행적인 구호들을 내뱉었다. 그런데 당의 간판인 안철수는 정작 호남 사람이 아니며, 당연하게도 본인 역시 '호남 정치' 같은 말들을 대놓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노리는 사람이 호남이라는 지역 틀에 갖혀 있고 싶어할 리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 당의 미래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애초에 국민의당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국회의원들은 '민주당' 내에서 자신들이 비주류라는 것에 불만을 품고 탈당하였다. 하지만 '호남 사람이 아닌' 안철수가 간판인 당이라면 결국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이 당은 호남당인가, 호남당이 아닌가. 국민의당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호남당이라는 틀을 탈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남정치의 복원'을 외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탈당을 한 것인가. 국민의당이 이 근본적인 모순을 무슨 수로 극복할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기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현듯 만들어진 여소야대 형국의 제20대 국회에 기대하는 역할은 딱 한 가지이다. 바로 선거제도 개혁. 현재의 선거제도 상으로는 민의가 정상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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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 방식은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 가미한 형태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엄청나게 많은 사표를 발생시킨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모 지역에서 A라는 후보가 40% 득표율로 당선된다면 나머지 60% 사람들의 투표는 사표가 되어 무의미해진다. 설사 A 후보가 유권자 60%의 비토를 받는 자라 하더라도 그는 전체 유권자의 대표가 될 수 있다. 이는 민의의 왜곡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완벽한 선거 제도라는 것은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유권자들의 의사가 최대한 많이, 그리고 섬세하게 반영되는 형태가 되는 것이 옳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보다 비례대표의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 작년 선관위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며 국회에 선거 제도 개편을 권고하였는데, 현행 제도의 이득을 가장 많이 보는 새누리당이 이를 철저히 무시하며 선거구 몇 개를 고치는 형태로 정리하고 말았다. 여소야대라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이번 국회 회기 중에 반드시 선거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새로운 정치 세력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지는 만큼 화석화된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를 일신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의당은 원래부터 이러한 개혁을 주장해 왔고, 국민의당 역시 나름 이해관계가 맞는다. 만약 이번 총선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서 치러졌다면 정의당은 정당 지지율에 따라 약 20석, 국민의당은 약 80석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방식으로의 개혁에 미지근할 가능성이 높지만 과거 문재인이 당대표로 있던 시절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던만큼 문재인 계열의 국회의원들이 다수 원내에 진입한 점을 감안하면 하기 여하에 따라 설득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새누리당은 현 제도의 가장 큰 기득권이므로 결사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이번 국회에서 야당들이 보여 줄 정치력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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