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줄곧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할 것이라 주장했었거든요.
심지어 잘하면! 잘하면! 과반수까지도 가능하다!  라는 주장까지..
근데 뭐 주변 사람들이 이걸 믿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출구조사 결과 나오면서부터 제 목이 뻣뻣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아주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
이런저런 데이터 돌려 선거 예측하는 취미 생활 시작한 지 20여년은 족히 되는데 단언코! 이번 총선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결과를 떠나 데이터만 봐도 말이죠.


1. 국민의당 비례표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향후 구체적인 데이터들과 연구들이 나와봐야 정확하겠지만 현재까지로 보면 국민의당은 새누리표를 대부분 가져간 듯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어요.
뭐.  원래 제 예측보다 비례가 몇석 적기는 한데 이건 더불어민주당의 삽질 덕분이라고 봅니다.
제 경우 비례는 항상 진보정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갈등 고민 갈등 고민 끝에 2번으로 갔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타격이 심한데 저같은 유권자들 영향이 꽤 있었을거예요.  흑.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선정과정 삽질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삽질이었던 거 같아요.
전자의 증가폭을 후자가 상쇄하고도 남아돌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번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만약 정당명부제였다면 국민의당이 훨씬 더 많은 의석수를 가져갔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건 아닙니다.
정당명부제였다면 새누리. 더불어민주당이 일단 비례대표 선발을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유권자들의 비례투표 성향도 달라집니다.


2. 호남

더불어민주당의 호남관련 총선 전략은 천정배 의원이 키였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 시절을 거치면서 야당은 지역조직들이 많이 무너졌지만 변함없이 탄탄한 지역조직을 유지한 곳이 바로 호남.
탄탄한 호남조직없이 호남에서의 총선 승리는 불가능한데 그 조직들은 탈당해서 국민의당으로 간 현역들의 대부분 쥐고 있죠.
그 현역들과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타겟은 바로 천정배 의원.
컴백홈 시키는 것이 성공하는 듯 했으나 막판에 결국 실패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총선 전략은 그냥 끝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천정배 의원에게 한 올인도 표면적인 액션을 크게했을 뿐 절대적으로 바란 것 같지도 않아요.  -_-;;;
호남에서 지금같은 결과가 나와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더불어민주당에서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거든요.
결과에 가장 놀란 건 오히려 당사자인 호남 유권자들일 수도. 

문재인 의원의 호남 방문은.  글쎄요.
가려면 훨씬 일찍부터 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호남 방문이 수도권을 결집시켰다 뭐 이런 분석도 있던데 효과가 있긴 있었겠지만 크게 유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3. 문재인

이번 부산 당선자들 보면 지역구도 타파하겠다며 길게는 거의 20년간 바닥을 박박 기면서 당선된 사람들입니다.
중앙당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순수하게 자신들이 바닥부터 다진 지역조직을 바탕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시간 지역구도 타파. 전국정당을 외쳤던 하늘에 계신 분. 그리고 문재인 의원의 목소리가 힘을 얻겠죠.
무엇보다 드디어! 김경수가 당선자가 되어 의회로 입성한다는 것.

문재인 의원이 정말 다음 대선에도 출마할 생각이라면 제발 좀 영악에 가까운 영리함 좀 보여줬으면 합니다.
대권주자라면 적당히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보는데 문재인 의원은 이걸 더 연마(-_-)해야 합니다.
더 영리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독해질 자신 없으면 대선은 포기하고 차라리 킹메이커로 나섰으면 합니다.
진정성과 진심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다.  그러다 도끼자루 다 썩고 지지자들 가슴만 문드러집니다.
문재인 좋은 사람이란 거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이젠 다 알아요.
그러니 진정성. 진심 이런건 제발 그만 두고 좀 독해지고 단호한 모습들 좀 보여주시길.
못하겠으면 대선은 정말 포기했으면 합니다.
지금같은 상태로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문제라 보거든요.


4. 국민의당과 안철수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곳이지만 가장 머리 아프고 복잡한 곳 역시 이곳이라 봅니다.
자신들의 가장 큰 바람은 더불어민주당의 폭망인데 수도권 싹쓸이는 물론 전국정당으로 한발 더 나아갔으니 헐~이겠죠.
의석수는 흡족하게 얻었지만 선거 결과 자체는 자신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모양새일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비례에서 상당히 선전했는데 이 경우 새누리표를 대부분 가져간 것으로 추측된다 위에서 말씀드렸죠.
무엇보다 지역구 의원과 비례 의원은 위상이 전혀 달라요.
거물급 비례 의원이 아닌 이상 어느 정당이나 비례는 거의 대부분 정치 루키들입니다.
민주당의 경우 비례에 이런저런 운동하던 분들이 많이들 들어왔었기 때문에 전투력도 좋고 초선비례가 천하무적인 경우도 많았지만
이런 케이스들을 제외하면 목소리 내며 자기 정치할 수 있는 비례는 거의 없습니다.

아.  이번에 국민의당으로 당선된 호남의원들 말입니다.
다음 총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거의 대부분 이번이 마지막일겁니다.
호남홀대론이니 반문재인정서니 말들이 많은데 새천년민주당시절.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생긴 소위 친노와
동교동계의 갈등은 이번 총선이 거의 최대치였다고 봅니다.
이건 뭐 봉합이 불가능한 수준이니 최대치로 가면서 이번처럼 화끈하게 터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호남홀대. 반문재인 정서.  이거 이제 앞으로 써먹을 수가 없어요.

안철수 의원은 마지막 기회가 왔는데 어떤 식으로 이 기회를 풀어갈 지.
기대는 별로 안되지만 이번에 지지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지지했는 지 제발 좀 깨우쳤으면 합니다.
또한 그 지지가 자신에 대한 지지인 지 다른 의미의 투표 결과인 지도 고민하고 구분하고 깨우쳤으면 합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기대는 안되지만(-_-) 정말 대선 욕심있으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는 걸 알아야죠.
이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와 똑같은 행보를 보인다면 정치인 안철수는 끝입니다.

이 양반은 무엇보다 이걸 알아야해요.
예를 들어 이번이 총선이 아닌 대선이었다고 칩시다.
새누리 후보 멍멍이 VS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 VS 국민의당 후보 안철수
이번 총선처럼 3자구도로 대선이 치뤄졌다면 호남은 절대 지금처럼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선은 문재인이 되고 자신은 DJ를 당선시킨 이인제 역할을 했을 거라는 걸 깨달아야 앞으로 성공 가능성이 있습니다.

==

너무나도 거창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번 총선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마지노선이었다고 봅니다.
나라가 망해간다는 것이 이거구나.  라는 걸 지난 몇년간 뼈져리게 느꼈거든요.
그러면서 이번 총선마저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대한민국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한 이유는 이런저런 데이터를 돌려본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저처럼 느끼는 시민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누구의 승리니 뭐니 하기도 부끄럽고 민망한.
이번 선거는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표였다고 봅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이번 총선 결과에서 가장 기쁜 건 야권 지지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는 겁니다.
이거 깨지지 않도록 야권은 앞으로 정말 잘해야 합니다.
현재 사회는 젊은 세대들이 만든게 아닌데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 정말 반성하고 미안해해야 합니다.

@ drl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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