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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몇 분이 추천하셨던 공포영화. 세인트모드를 드디어 봤습니다.

계속 봐야지.봐야지 생각만 하다 겨우 봤네요.




요즘 '무서운 신예감독'들을 보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영화를 잘 만들어요.

영상미야 주목받는 신예 감독들이 갖춰야할 당연한 자질이라면, 

요즘 감독들은 배우 조율이나 정서의 깊이를 끌어내는 솜씨가 옛날 60~70년대 유럽영화의 거장들 뺨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변에 깔려있는 불안감(우리 모두가 살면서 느끼게되는 그것), 그리고 관계들 속에서 아주 미시적인 감정의 굴곡들을 세련되게 캐내는 기술이 정말 보통이 아니에요.

요즘 주목받는 영화들은 대체로 다 이렇게 심리를 다루고, 감정을 묘사하는데 탁월함이 있더라고요.

작정하고 그것만 파는 예술 영화의 포장 속에서 그걸 이뤄내는게 아니라, 지극히 상업적인 장르 영화 안에서 그걸 정교하게 그려내는 점에서 더 놀라와요. 

정말 모두가 pd인 세상에서, 영화 감독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세인트모드도 그랬습니다.

보는 내내 감탄했고, 특히 초중반까지는 압도 당했습니다.

반면, 의야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렇게 상향 평준화되어 대단한 기술로, 대단한 재능으로 다져진 주류 영화들인데, 또 남을만한 영화를 꼽자면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는 점에서요.

세인트모드도 제게 그랬습니다.

요소 요소들은 참 좋은데, 이 영화를 온전히 사랑하기에는 꽤 치명적인 나사들이 하나,두개씩 빠져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감상평을 보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하나가 검색됩니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찐따녀가 개독과 만나서 벌이는 망상극"으로 요약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의 주인은 "개독"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구구절절 쏟아내고 있었죠. 

아주 부당하고, 불쾌한 표현들로 가득한 평이었는데, 분하게도 영화에 남겨진 단서와 전말들이라는 게 그런 평을 표출하게 하는데서 그리 멀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문점은, 도대체 이런 파행의 주인공을 그리려 했다면, 그 초중반까지의 정교한 감정선들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모드는 사람간의 관계에 상당히 서툴고, 정서가 불안하며,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여성이죠. 약간의 정신질환이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남들보다 섬세하고, 일에 헌신적일줄도 알고, 아이같은 모습도 있습니다.

영화의 캐릭터는 좀 과장이 있겠지만, 전 모드의 모습에서 제 지인이 떠올랐고, 저의 어떤 모습도 떠올랐어요. 그러니까 있을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장면들은  모드와 아만다의 관계가 섬세하게 구축되는 초반 부분들인데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트라우마가 된 모드에게 아만다와 함께 하는 시간은 구원이며, 기회며, 세상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처럼 묘사됩니다. 

자유분방한 아만다가 병세로 인한 상실 속에서 모드에게 호기심을 갖고, 애정을 드러내고, 때론  모질게 구는 모습들도 어떤 예민하면서도 사람을 품는데 익숙한 누군가가 충분히 할법한 모습들이죠.

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서로의 직무를 넘어서 부모와 자식처럼, 혹은 연인처럼, 정서를 갈구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모습은 정말 숭고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만다에게 내쳐진 모드가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시작하면서 모든 결이 성급하고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모드가 승천하는 성녀처럼 쾌락을 느끼다가, 처참하게 불타죽는 현실 인식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그냥 화가 나더라고요.

어렵게 쌓은 그 정서들 다 어그러뜨리고, 주인공을 과대망상에 빠진 하나의 괴물로 단순화시켜서, 

결국 자기파괴적 화형식으로 황급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이 과정들이 도무지 납득되지가 않아요.



이건 장르 영화로써 효율적이지도 않잖아요. 

대비를 줘서 마지막의 전말이 더 충격적이게 다가오길 원했다면, 모드가 정서가 "복잡한" 캐릭터가 아니라 "불쌍한" 캐릭터가 되었어야 했을 것 같고.

"비극"에 초점이 맞춰있다면, 마지막의 조롱하는 연출의 태도는 그냥 서커스같은거죠.

결국 영화의 복잡다단한 많은 것들이 이상하게 얽혀서 영화가 '괴상하게' 보일 지경입니다. 제겐 불쾌함이 더 컸고요.

  


제작사의 이름때문인지, 비슷한 영화로 '유전'이 많이 언급되던데, 제겐 '아리 에스터'보다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테이스트에 더 가까웠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아리 에스터'는 잘 나가다가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관습적인 장르물'로 변해서 맥이 빠진다고 느꼈고,'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해하기 어려운 '위악성','결말을 위한 결말' 때문에 김이 세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세인트모드는 두 감독의 나쁜 면모를 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면서  더 고약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도대체 이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왜 영화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없는건지 의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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