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정 노동

2015.11.16 17:56

underground 조회 수:1452

지금 읽은 시 두 편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호출당하는 이 시인은 올가을 제 영혼의 동반자) 




감정 노동


         박정대 

 

 

 

오늘은 감정을 노동하였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집의 외벽들이 젖어가는데 나는 배고픈 짐승처럼 집의 내장에 웅크리고 앉아 무한의 바람결을 뒤적이며 한 움큼의 슬픔을 노동하였다

 

세계의 뒷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코끼리 군은 흡혈귀가 쫒아온다고 마늘을 사러 가는 중이었고 상강의 도린 곁에서 만난 가엾은 모기 양은 사막화된 피부의 건천을 따라 유목민처럼 떠돌았다

 

감정은 그때마다 빗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지만 마음의 습지에 다시 한 모금의 물을 부으며 나는 새로 돋아나는 내면의 지도와 영토를 오래도록 생각하였다

 

침묵은 코끼리 군이 지나간 발자국마다 고이던 물웅덩이

고독은 모기 양이 점령한 곳으로부터 부풀어 오르던 한 점의 영토

 

오늘은 창문을 열고 하루 종일 감정을 노동하였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시선의 어깨에 외투처럼 걸친 채 온종일 담배 연기로 유령하였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담배 연기 속 소립자들은 머나먼 행성에 착륙한 우주선처럼 새로운 감정의 지도와 영토를 보여주었다

 

 

 




武川



        박정대

            


그곳은 오랑캐들이 사는 나라

 

두 개의 달과 천 개의 별이 뜨고

단 하나의 심장을 지닌 바람이 부는 곳

 

우리는 하나의 태양이 질 때까지 술을 따르고

천 개의 태양이 다시 뜰 때까지 술을 마시지

 

생은 우리들의 취미

취미가 아름다워질 때까지

우리는 술잔에 삶을 따른다

술잔에 담긴 삶을 마신다

 

사랑은 우리의 습관

노동은 우리의 사랑

우리는 습관처럼 사랑하고 사랑만을 노동한다

 

그곳은 영혼의 동지들이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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