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객성)

2016.12.23 05:35

여은성 조회 수:750


 1.언젠가 썼듯이 인간을 별에 비유하곤 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의 항성계에 속해 있죠. 거기서 그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일 수도 있고 항성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행성일 수도 있고 기껏해야 행성의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뭐 그래요. 각자가 각자의 밝기와 중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여기서 관계의 역학을 만들어내는 건 빛보다 중력이라고 봐요.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로슈한계를 벗어나 한쪽이 짓이겨져버리고 너무 멀어지면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 궤도를 이탈해버리는 거예요. 


 한데 나는 행성이나 위성 역할을 잘 해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항성 역할을 맡겨도 제대로 못 해낼 거고요. 그래서 나는 어딜 가든 대체로 지나가는 나그네별 취급을 받는 거죠. '저 녀석은 어차피 지나가는 녀석이야. 이번에 우리 은하계에 들어오긴 했지만 곧 나갈 거야.'같은 거죠. 최근엔 어쩐지 어딜 가도 이미 거기에 터를 잡고 있는 녀석들이 '석 달 후엔 여기 없을 사람'이라고 평해서 김이 빠져버리곤 했어요.  

 


 2.휴대폰 글에 썼던 사장 이야기를 보니 약간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속아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건 아무 일도 없는것보다는 나은 일이거든요. 속는다는 건 울타리를 허접하게 만든 탓에 침입을 당하는 거고, 속아 준다는 건 안쪽에서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거예요. 단단한 울타리 바깥에서 어슬렁거리는 수많은 좀비들 중에 딱 한명의 좀비에게만은 문을 열어주는 거죠. 그 사장 좀비가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 한동안을 재미없게 지낸 것보단 잘 지낸거니까 사장 좀비를 만난 건 좋은 일로 분류할 수 있는 거죠.



 3.'왜 자꾸 사람을 좀비라고 부르는 거지?'라고 묻는다면...뭐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거든요. 나를 뜯어먹게 해주는 것 이외에 내가 다른 사람과 진짜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는 걸요. 그래서 자동적으로, 나와 정말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모두 좀비인 거예요.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명문대도 나오고 글리도 알고 악기도 두 개 이상은 다룰 줄 아는 좀비가 좋아요.



 4.휴.



 5.누군가는 '그건 방어기제야. 그래도 좀비보다는 진짜 사람이 나은 거 아니야? 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 너도 진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말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니예요. 


 저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와 적으로 사람을 나누진 않아요. 나에 대한 입장을 정한 사람, 나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죠. 그러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나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 사람에 속하는 거예요. '확실한 사람'인거죠. 그리고 확실한 사람이어야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확실해지는 거거든요.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정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좋게 대해야 할지 아니면 그러지 말아야 할지요. 


 좀비들의 좋은 점이 바로 이 점이예요. 뜯어먹게 해줘야만 친하게 지내주는 좀비들의 특성은 나쁜 점이 아니라 좋은 점이거든요.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좀비들은 친해지기 싫은 녀석의 살점은 처음부터 뜯어먹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확실성이 있는 거예요. 나와 만나는 좀비는 이미 나를 좋아하는 좀비라는 확실성 말이죠.


 그래서 좀비가 아닌 사람을 대할 때는 미안하게도 직구 폭격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요. 그야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태가 길게 늘어질 바엔, 어서 빨리 나를 싫어하도록 만드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6.저번에 썼듯이 거북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보고 있으면 마치 바다를 향해 천천히 기어가는 거북이를 보는 것 같다는 사람들이요. 나는 그들에게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그를 들어다 바다로 데려다주는 걸 허락받는 게 내가 바라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만난 거북이 중에 그걸 원한 거북이는 하나도 없었어요. 


 잘 모르겠어요. 하긴 내가 거북이를 이해할 날은 오지 않을거예요. 천천히, 오래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어떤 곳이 있다면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출발하지도 않을 거니까요. 그냥 그곳은 그럴 가치가 없는 곳이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고 말겠죠.


 하지만 너무 궁금해요. 천천히 오래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정말로 도착했을 때 거북이가 짓는 표정이요. 그냥 그 표정이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7.그럼 Q도 좀비인가? 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죠.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모른다는 점이 좋은 거예요.


 '거의 1년이나 본 사람을 모르겠다는 게 무슨 말이지?'라고 묻는다면 1개월이건 10년이건 상관없어요.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스케일의 문제인 거니까요. 그래서 Q는 좀비인지 거북이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Q가 좀비라면 어차피 내가 배불리 먹여줄 수 없는 좀비일 거고 거북이라면 어차피 내가 들어서 옮겨줄 수 없는 거북이일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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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라는 둥의 소리를 하지만 실제로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건 내가 아니예요. 내 돈이죠.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내 돈이 다리를 결국 건너는지 결국 그러지 못하는지 숨죽이며 바라보는 게 전부고요. 


 그러니까 늘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힘든 일은 아니예요. 그냥 괴로운 일일 뿐이죠. 사실 나는 직접 뭘 하는 법이 거의 없어요. 그냥 무언가를 지켜보거나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인거죠.


 가끔씩 사막을 걷고 있을 나의 거북이들을 생각하곤 해요. 거북이들이 바다에 얼마나 가까워진 건지, 그들에게 기어갈 힘이 아직 남아있을지 생각하면 걱정이 들곤 해요.


 사실 그들이라고 해서 자신의 여정을 갑갑해하지 않는 건 아니예요. 가끔은 찾아와서 그 오랜 시간동안 이만큼밖에 오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곤 해요. 그야 내게 찾아와서 한탄하는 건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같은 거북이들에겐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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