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니까 차가 땡기네요

2015.10.12 07:22

스무디킹 조회 수:2008

어렸을때는 차 같은건 어른들이나 마시는  고리타분한 마실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영국에 잠시 살게 되면서는 홍차의 매력에 빠졌다가 (홍차 보다는 애프터눈티에 딸려 나오는 어마어마한 먹을거리에 눈이 멀었지만요), 지금은 제가 살면서 좋아하리라 생각치도 못했던 엄청난 향기의 조합을 가지고 있는 마살라 차이에 빠졌습니다. 


낮에는 무조건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주로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여러가지 차를 마셔왔지만, 저는 주로 민트, 루이보스, 민들레 뿌리, 쐐기풀, 캐머마일, 라벤더 등의 냄새가 명확한 차들을 선호해 왔어요. 무언가 섞인 듯한 맛의 차는 왠지 모르게 불편해서요. 아마 불편한게 아니라, 다른나라 친구들이 즐겨마시는 바닐라 + 허브, 과일 + 허브 종류를 따라서 몇번 시도했다가 영 입맛에 맞지 않아서  다시 시도하기 겁이 나서 몇가지 향이 섞인 것 같은 차들은 멀리해 왔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쯤, 제가 있는 곳에 친구가 놀러와서 까페에 갔는데 마살라 차이라는 걸 시키더라구요. 냄새를 맡아보니 인도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나는 그런 뭔가 여러종류의 향신료가 이리저리 뒤섞인 냄새가 나더라구요. 가끔 인도 레스토랑에 가면 입가심으로 독특한 향과 단맛이 나는 씹고 뱉는 구슬알 같은걸 주잖아요? 그런 냄새가 나더라구요. 거기다가 차이라면 밀크티일테니, 향은 낯설지만 밀크티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한입 얻어먹어보니 뭔가 이상하게 맛있는 느낌이 납니다. 이게 정확히 뭐야? 하고 물어보니 여러가지 향신료랑 홍차를 오랫동안 끓여서 만든 진한 인도식 밀크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때부터, 차를 파는 곳에 갈때마다 마살라 차이나 차이라고 적힌 온갖 차들을 사서 마셔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뭔가 맛있다 싶으면 제가 직접 똑같이 집에서 만들어 보고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몇번의 지뢰를 밟고, 결국 봄이 오고 날이 더워지니 마살라 차이를 만들기 위한 욕망이 줄어들었는데, 저번 주 부터는 날이 선선하니 다시 그 욕망이 고개를 내밀어서.. 아마존에서 뭔가 그럴듯한 마살라 차이를 찾고 주문을 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샀던것은 티백이나 믹스같은 간단한 형태였는데, 이번에는 CTC (홍차 잎 그대로가 아니라, 진한맛을 간편하게 내기 위해 부스러뜨린 다음에 동그랗게 버블로 만 형태의 차를 뜻합니다) 형태의 아쌈차와, 클로브 (정향), 캐더멈, 계피, 등 등의 제가 따로 살 엄두가 안나는 각종 향신료들을 잘 섞어서 소포장해 판매하는 .. 티백보다는 복잡하지만 그래도 그냥 냄비에 넣고 끓이면 되는 그런 형태의 차를 사고 방금 개시했습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선호하는 우유와 물과 설탕의 비율이 있겠지만, 찐하고 단걸 좋아하는 저는 물 조금 우유 많이 설탕은 더많이 이렇게 넣고 팔팔 끓였더니, 엄청나게 진하고 향기로운 마살라차이가 만들어졌습니다! 감동에 감동을 하며 후후 불어 마셨더니 정신도 좀 깨이고 카페인도 조금 충전된 느낌이어서 몹시 흐뭇하네요. 한달뒤에 저에게 마살라 차이를 소개해주었던 친구가 또 저를 방문하는데, 그 친구가 제 마살라 차이를 마시고 놀랄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이런저런 향신료가 구할수 없더라도, 아쌈처럼 가향이 되지 않은 블랙티와 쉽게 구할 수 있는 몇가지 향신료들 (계피나 생강, 후추, 정향 등등) 만 넣어 팔팔 끓여도 그럴듯한 차이를 끓일 수가 있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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