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3 14:10
수능 고사장에서, 언어영역 답안지를 제출하며 생각했습니다. "엄마, 나 의대가나 봐."
2교시가 끝나가고, 수리1 답안지에 마킹하며 생각했습니다. "엄마, 나 재수하나 봐."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수학원은 알아보기만 한 채 등록하지 않았고, 그 하루의 희비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지요.
후회는 없는데, 아쉽기는 해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공평" 이란 단어가 가능했던 인생의 마지막 기회.
고등학생 때는 저조차도 신기할 만큼 멀티 태스킹이 가능했어요.
이어폰 속에선 신해철이 쌩목을 찢어가며 샤우팅을, 손에 쥔 샤프로는 적분 풀이를,
그 와중에 짝꿍이 푸는 개드립에 일일이 적당한 개드립을 생각해 내어 응수를. 입안에는 밭두렁 두어 알이 우물우물
그 공사다망한 와중에도 장난 치는 뒷놈 대가리에 피의 복수를.
엄마가 만날 했던 말이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가 되냐?" 였는데, 거기에 저도 지지 않고, "되거등? 되거든요?" 대꾸를 했죠.
십대의 객기가 아니라 정말로 가능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착착착.
멀티 태스킹에 문제를 느낀 것은 복학 후, 첫 과제를 하려 학습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이십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어요.
늘 그래왔듯 이어폰을 끼고 책을 펴는데, 도무지 머리가 회전하지 않았을 때, 그 당황, 황당. 뭐지?
머리 대신 목 위에 맷돌을 얹고 살아 온 세월이야 이미 이십 년이 훌쩍이지만, 그 맷돌이 아예 돌아가지 않는
말 그대로 "어처구니 없음" 에 대한 당황. 내 기어이 頭자 대신, 豆자를 마빡에 새기게 되었구나, 한숨이 절로.
자연스래 병영을 원망했죠. 대가리 한 번만 덜 박았어도, 개머리판으로 한 대만 덜 맞았어도. 이거 유공자 신청하면 받아주나?
요즘은 지하철에서 이어폰 끼고 단어 외우는 아이들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러워요. 그게 돼니? 아!... 됐었지, 나도...
요즘 팔자에 없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는 대난관에 직면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쇼팽 녹턴 시리즈를 들어 보니, 가사가 없어서인지 멀티 태스킹이 얼추 가능합디다.
중딩 때, 모지리반에서 나머지 공부하고 하교하다 우연히 빈 음악실을 들여다 본 일이 있어요.
음악 선생님께서 빈 음악실에 불상처럼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고 계셨죠. 그 나이가 되면 저도 그렇게 될 지 모르겠네요.
2015.11.13 14:18
2015.11.13 20:40
지금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있는데, 하다 보면 음악을 들었으되 들은 기억이 없는;;;; 되려 단어 외우는 건 때리고 부수는 헤비메탈을 들으면 능률이 더 오르는 것 같아요. 당췌 가사라곤 죄다 와우외우 따우외위 쿠오오오옷 하는 것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2015.11.13 15:13
아 음악을 더 깊이 음미하며 듣나보죠. ㅋㅋㅋ 누군가에게 음악을 설파하시려면 적어도 불상처럼 앉아 감상해봐야 답이 나오는거 아니겠어요? 신해철은 저도 제 고딩감성을 수놓던 음악이었는데, 얼마전 다시 들으니 음. 좀 직설적이셨죠. 음악이. 그 때는 그런 음악이 내 활동에 ost처럼 항상 흘렀었어요. 밥을 먹던 뭔 짓을 하던. 중2였죠.
2015.11.13 23:49
한우물만 파고 싶은데 주변에서 자꾸 방해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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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방식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수학이나 영어 문제를 풀거나, 레포트를 쓰는 것 같은 출력형 작업은 음악 들으면서 가능한데,
뭘 이해하거나 외워야 하는 입력형 작업은 힘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