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좌방한계선 / 우방한계선.

내가 떠올렸는지 어디서 본 표현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나는 2013년께부터 저 표현을 기사에도 쓰고 그랬더라. 거칠게 말해서 좌방한계선이란 '우파 정치인이 좌클릭할수 있는 한계선'을 뜻한다. 좌방한계선의 위치는 정통 우파 유권자가 그의 좌클릭을 용인할 수 있는 정도에 달렸다. 우방한계선은 위 정의에서 좌우만 바꿔넣으면 되고. 흔히 하는 말로 중도화전략의 한계선 쯤으로도 부를수 있겠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좌방한계선이 누구보다 멀었던 정치인은 박근혜다. 그냥 적통도 아니고 한국 우파를 만들다시피한 분의 딸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을 내걸었더라도 어느 우파가 그녀를 의심했을까. 그녀가 선거의 여왕인 이유 중엔 이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 공간을 박지성이 국대 뛰듯 넓게 써도 문제가 안생기는 정치인은 헌정사에 그녀 외에는 없었다. 

그 막강했던 이명박만 봐도, 대북정책 좀 전향적으로 내걸었다가 당장 자기 좌방한계선을 넘었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그게 이회창 출마였다. 회창옹 대선 출마의 본질은 총선을 노린 충청비즈니스였으되, 적어도 명분은 엠비의 대북관이 보수후보로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비슷한 논리로, 지금 야권에서 우방한계선이 가장 먼 정치인은 문재인이다. 진보파 유권자가 용인할수 있는 폭이 가장 넓다. 이상돈이 튕겨나가고 김종인이 안착하는 차이도, 선거가 임박했다는 요소 외에 이게 크다. (좌/우방한계선이 멀다와 좌/우클릭을 많이 한다가 꼭 같은 말은 아니다. 당장 2012 대선에서 문재인의 캠페인은 본인의 우방한계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2007 대선의 박근혜도 본인의 좌방한계선과는 한참 먼 오른쪽에 가있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중도 공략이란 정통파의 특권이다. 중도 공략은 어느 정도는 필연으로 고정표의 실망을 야기할텐데, 그걸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을 더 많이 가진 정치인은 변방이 아니라 적통이다. 적통이 아닌, 그러니까 좌우 고정표의 의심을 해소할 수 없는 정치인은 중도 공략의 리스크가 더 크다. 다시 한 번 역설. 중도 성향 정치인일수록 중도정치가 어렵다.

이건 문재인과 안철수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어느정도는 우연의 산물이다.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적통이 된 것은 생물학적/사회적 혈통이 가져다준 우연이었다. 대신 변방은 변방 특유의 판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창업자산으로 갖고 들어올수 있다. 이건 적통이 못 가지는 특권이다. 엠비가 그랬고, 2012 안철수가 그랬다.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파괴력 있는 변방이 심심한 적통보다 더 유리한 출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2016 시점에서 안철수 신당의 약점 중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한다. 변방 특유의 파괴력이 많이 소진된 현재 안철수라는 정치인은 우방한계선이 아주 좁은 카드다. 이 말은 그가 중도에 소구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중도행보를 벌일 때 야권의 충성표가 인내해줄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당장 생각해볼만한 옵션은 

1.야당 내에서 당권투쟁에 승리해 새누리와의 1:1 구도로 좁혀버린다. 이건 시도했으나 물건너 갔다.

2.야권 고정표를 다수 잃더라도 중도표로 독자생존을 노린다. 나는 단순다수 소선거제에서 이게 가능할만큼 중도를 결집시키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 야권 고정표 중에서 흡수 가능한 블록을 발견해 낸다. 이게 호남인데, 호남 + 중도표의 결합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활로로 보인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려면 열흘 전에 썼던 무당파의 역설을 또 풀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요며칠 안신당발 메시지가 중심축이 잘 안 보인다. 이승만 국부론도 그렇고 쟁점법안 관련 메시지도 그렇고, 타깃 조준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중도 성향 정치인일수록 중도정치가 어렵다.
-------------------------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글인데 근자에 읽은 정치관련 글 중에서 제일 맘에 들었네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