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동네에 약 반년전부터 요상한 스시가게가 하나 생겼었어요.

여기가 왜 요상하냐면요.


원래 이 자리가 과일가게가 있던 자리에요. 대형마트에서 한블록도 안되는 곳, 꽤 잘되는 곱창집 옆에 꼽사리처럼 붙어있는 그런 공간이었죠.

지나가면서 그 자리가 눈에 들어왔던건 세상에 저렇게 좁은 가게도 있는건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35만원 고시촌에 들어가면 침대와 딱 붙어있는 책상이 있잖아요. 그 정도 공간. 정확한 평수개념이 없는데 1평 남짓할까. 그런 공간에 가게를 차린거에요...말그대로 틈새가게. 구멍가게.

핫플레이스라 불릴만한 지역에서는 이런곳에서 청년창업식으로 많은 가게가 있겠지만...이 동네는 그런 느낌의 골목이 아니거든요.


그 과일가게는 뭔가 제게 안타까웠어요. 가게를 매번 지키고 있기엔 어려보이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저부터가 뭔가 그 과일가게엔 선뜻 발길이 안가더라고요.

특별히 그 과일가게의 과일들이 못나거나 종류가 영 볼품없다거나 그런것도 아니었어요. 바로 옆에는 대형마트가 있고 길하나만 건너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과일/채소가게가 있는 입지였으니 분명 그 조그만 과일가게 가격은 저렴했을거에요.

그런데도 거기서 사야지 하는 생각은 잘 안들더라고요.

대형마트를 다니며 지나치면서 보니 점차 과일 종류가 현저히 줄어들더니 작년 말부터는 아예 한 종류, 토마토만 잔뜩 들여와서 박리다매로 판매하는게 보였어요.

그런데도 바구니 가득한 토마토는 하루내 줄지 않는것 처럼 밤에도 우뚝 쌓여있었고..결국 그 가게는 사라졌어요.

이제 고등학생일까. 대학생일까. 너무나 여리여리 똘망똘망 매번 밤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학생 가족은 어디로 갔을까..한번도 산적 없는 주제에 갑자기 안타까움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리고 잠시 비어있던 그 공간에 정말 뜬금없이 스시집이 생겼어요.

저런 우리집 화장실만한 공간에 스시집이라니...우와..대단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너무 신기해서 안을 쓱 보니 나름 제대로 갖춰보이는 메뉴판...스시 만드는 사람과 손님 3명이 들어가면 앉아서 움직이는 것 조차 민폐가 될 것 같은 그 협소한 공간에 사람들이 차고 가끔 지나치는 그 골목에서 주인장은 언제나 열심히 칼질을 하는게 보였죠.


그 가게가 너무 귀여워서.신기해서 찾아가봤어요.

스시와 사시미, 부위별 선택. 다양한 사케...1부부터 4부까지 1시간 30분 간격으로 자리 예약제로 운영되는 그 곳은 나름 체계를 잘 갖춰놨더라고요.

스시의 경우 일반 스시는 7피스에 1만원. 선별스시는 12피스에 2만원. 사시미는 25000원부터하고 있었는데, 스시집을 잘 가지 않는 전 그 가격이 싼지 어쩐지 잘 분간이 안갔어요. 이마트에서 500원 700원하는 인스턴트 스시만 먹는 제게 그 가격은 아주 싼 가격은

아니죠.

처음이니까 선별스시를 포장 시켰는데 옆에서 각종 덩어리 고기들을 바로 잘라 만들어주더라고요. 생건 생거대로, 토치로도 굽는 것도 있고...뭔가 신기하게 일본느낌 물씬.

그 공간이 주방과 고객 테이블이 구분되어 있지 않을정도로 협소하고 어떤 가림막도 없어서 그냥 훤히 재료를 어디서 꺼내는지 원재료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발가벗겨지듯 그렇게 보는게 재밌었어요.

집에 와서 먹어보니...

맛있더라고요!

묵직한 맛. 생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조금 부담 될수 있을만큼 날고 두터운 생선살이 으깨지는 그 맛.

12개의 메뉴선정도 잘되있는지 어떤건 식감이 무겁고, 어떤건 크림처럼 먹는 순간 입에서 녹는 느낌이었어요.

고등어 회 스시도 있었는데 약간 비린맛이 있긴 하더라고요. 몇몇 회에선 그런것도 있었죠. 만드는 과정을 보며 재료 보관이 아주 제대로 되는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몇몇 생선은 좀 그런게 있었어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충분히 다양하고 질감 좋고 양도 많고 근사해서 참 만족스럽더라고요. 같이 준 미소국도 직접 만든건지 해산물 그득한게 맛있었구요.

괜찮다! 싶어서 검색해보니 벌써 이 주변에서는 유명한지 꽤나 칭찬하는 글들이 많이 검색되는 군요;


자기 가게에 자부심을 드러내는 약간 자의식 있는 주인들은 곧잘 자기명함을 파서 많이 돌린다고 느끼는데 여기도 그런곳이었어요. 포장을 하니 전화번호와 메뉴가 적힌 전단지 외로 명함을 넣었더라고요. 쉐프 누구 해서...

사장이 30대의 젊은 사람이었는데 뭔가 다부지고 근면해보이는 인상, 회를 뜨고 초밥을 빗을때의 비장하고 두근대는 표정들도 좋았어요. 뭔가 풋풋함 같은 것. 작은 가게와 조금 어울리지 않기도 한 격식있는 옷에 명찰까지. 깍듯한 인사도 좋았어요.

사장님의 어리고 과묵한 느낌이 혼자가서 먹어도 부담없는 느낌^^;


이 동네는 닳고 닳아서 수많은 프랜차이즈와 큰 가게들이 점령하고 있는데 그 틈새에 이런 귀여운 가게가 있다는게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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