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란건 잔인하다

2016.03.21 09:50

칼리토 조회 수:1381

집에서 구피를 키우고 있습니다. 키운다기도 뭐한게 아버지가 관리하시는 어항에 구피가 들어있는거죠. 저는 그냥 구경만 합니다. 어항이 있으면 좋은게 전체적인 집안의 습도 조절도 되는 것 같고 볼거리가 있으니 좋아요. 


구피가 어느순간 개체수도 줄어들고 처음에 화려했던 색도 약해진 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마트에서 막구피를 네마리 사다 넣었어요. 짝맞춘다고 암수 두마리씩 말이죠.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저희집 어항은 아닙니다만.. 이런 식의 싸움이 벌어졌나 봐요. 수컷들끼리 서열 경쟁을 한거죠. 거기에 다른 암컷도 휘말린 모양.. 새로 들여온 네마리만 살아남고 기존의 성어들은 거의 다 죽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일주일 지나니 어항에는 새로 들인 네마리와 치어들만 남아있더군요. 


어항속에서 나름 평화롭게 살아가던 원래의 구피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진 느낌일겁니다. 자신과 새끼들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이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다니 말이죠. 그리고 몰살의 과정은 인간들이 지켜보지 않는 틈에 벌어진 일이라 짐작만 할 뿐.. 어느샌가 줄어가는 개체수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습니다. 지나고나니 어항속 풍경이 달라진 것만 인지한 것이죠. 


어쩌면 신의 입장에서 인간들이 이런 구피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일시적인 변덕, 혹은 너무 밋밋해져 버리고 약해져 버린 개체에 대한 개량의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적대적인 개체들이 등장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존재들은 어느순간 사라집니다. 너무 잔인한 비유일까요??


사실 이 모든 사건의 당사자인 제가 느끼는 건 죄책감입니다. 그냥 살던대로 내버려뒀으면 평화롭게 살 아이들에게 저는 마치 신처럼 고통을 내려버린 거죠. 그것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로 말입니다. 이제와 후회를 해봐야 죽어버린 구피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구피라는 녀석들이.. 좀 잔인한게 자기네들이 낳은 새끼도 먹어치우는 녀석들이라 말이죠. 치어들이 좀 보인다 싶어도 어느샌가 줄어 있기도 해요. 


지금의 어항은 매우 활기찹니다. 싸움에서 이긴 놈들이 독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역시나 살아남은 치어들도 나름 생명력이 있는 녀석들일테니 조만간 개체수가 늘겠죠. 어항을 활발히 누비는 새로운 세대를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깁니다. 모르면 가만히나 있을걸.. 어쩌면 우리를 만들어낸 신도 그런 생각을 지금쯤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알파고를 만들어낸 인류도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1268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3155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38980
102318 스키장을 처음가는데 어디로 가면 재밌을까요.(서울근교) [2] 바스터블 2016.12.20 736
102317 블레이드 런너 속편 공식 티저 [7] 로이배티 2016.12.20 1525
102316 터키에서 러시아 대사관이 테러로 사망했군요 [3] 루아™ 2016.12.20 1379
102315 [듀나인] 종이에 대해 잘아시는 분 계신가요? [3] 말하는작은개 2016.12.19 1261
102314 이런저런 이야기...(휴대폰) 여은성 2016.12.19 756
102313 유럽 여행이 너무나 가고싶은데.. [10] 바다같이 2016.12.19 2270
102312 남자셋 여자셋이 나오는 희곡이나 영화 추천해주세요! [5] 영화적삶 2016.12.19 1352
102311 아무도 모르시는 저의 근황이야기 [2] gokarts 2016.12.19 1509
102310 [바낭] 조선일보도 요즘은 골치가 좀 아프겠어요 [6] 로이배티 2016.12.19 2364
102309 Zsa Zsa Gabor R.I.P. 1917-2016 [2] 조성용 2016.12.19 534
102308 셔터스톡 등 이미지사이트에 사진 주기적으로 판매하시는 분? [3] 바스터블 2016.12.19 2073
102307 그것이 알고 싶다 후기 (혐짤주의) [4] 일희일비 2016.12.19 2748
102306 이런저런 잡담...(불신) [2] 여은성 2016.12.19 805
102305 이엘 삼신할매 [4] 가끔영화 2016.12.19 1887
102304 뱀파이어의 공격 [7] Bigcat 2016.12.18 1250
102303 달 옆 큰별 무엇일까요 [9] 가끔영화 2016.12.18 3058
102302 [듀나인] 셀카 찍으면 왜 좌우반전되는 것인가요?? [4] 윤주 2016.12.18 2289
102301 '저도' 이야기 [1] 겨자 2016.12.18 803
102300 예전에 버려진것 같던 럭키 기억하시나요, 잘생겼던 녀석! [2] Veni 2016.12.18 1092
102299 오픈카톡 멤버 충원 공지 [6] 말하는작은개 2016.12.18 16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