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우주)

2016.07.07 02:28

여은성 조회 수:689


 1.주위의 여행중독자들은 정말 짜증나요. 어떤 여행중독자들은 이른바 '여행의 멋짐'을 모르는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계몽의 대상으로 점찍는 것 같아요.

 그 자들이 여행을 왜 좋아하는지는 알 바가 아니예요. 알고 싶은 건, 그들은 왜 왕이 자신의 왕국을 놔두고 여행따위를 가고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2.하지만...나 또한 다른 사람에겐 짜증나는 인간이겠죠. 나도 저런 여행중독자들처럼 자신이 멋지다고 여기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습성이 아마 있을 거거든요.


 3.요즘 알게 된 건데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얄팍하다는 걸 잘 알게 됐어요. 사실 아무와도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거든요. 가끔 쓰는 친구 얘기에서도 10년 넘게 안 친구를 '자네'라고 부르는 데서 세상과 나의 거리를 알 수 있죠. 하지만 우리는 계속 잘 지내기 위해 서로에게 잘 다가가지 않아요. 무언가를 비웃고 싶을 때는 세상을 비웃지 서로를 농담거리로 삼지도 않고요. 아마 우리 둘 다 유아적인 면을 버리지 못한 채 소름끼치는 어른의 일면을 가지게 되어서 그런 걸 거예요. 

 우리 같은 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아주 약간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가능한 범위의 최대치만큼 거대하고 파괴적인 폭발이 일어날 거란 걸 잘 알죠. 


 4.휴.


 5.술집에 가서 다른 남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감있는 태도로 그들이 확신하는 것들에 대해 떠들고 있어요. 직원들은 열심히 듣는 척하고요. 

 하지만 자신감이나 확신이라는 걸 어떻게 가질 수 있겠어요? 세상을 다니며 보거나 듣거나 상상하는 것들은 모두 뭔가의 단면일 뿐이잖아요. 확신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특이점이 왔을 때 특이점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지 못했다면 나는 먼지가 되어버릴 거라는 거죠. 


 6.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잘 때운 것 같아요. 어차피 오늘 아무것도 안 해도 오늘 분의 나는 버려질 예정이거든요. 어차피 버려질 거라면 한번도 안 쓴 신품인 채로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고요. 내일은 하루 쉬어야겠죠. 내일 모레의 나를 잘 굴려대기 위해서요.


 7.예전에 바이올린을 열심히 켤 때는 모든 단계와 모든 과정에 충실했던 기억이 나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의 상태를 확인하고 활을 정성들여 감기 시작했어요.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주 빡세게 켜고 싶으면 팽팽하게 감기도 하고 약간 나긋나긋한 상태에서 멈추기도 했죠. 바이올린이 빙판을 달리는 스피드스케이트라면 현은 날에 해당될 거예요. 스케이트를 타기 전에 날을 가는 것처럼 현에 송진을 정성껏 묻혔죠. 그렇게 송진 냄새를 맡고 있으면 기분이 뭔가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각 현은 아주 정확하게 조율하는 것보다는 이것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G현은 중후하게 들리도록 미묘하게 낮게 맞추기도 하고 E현은 반의 반음정도 높게 맞추기도 했죠. 이건 느낌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맞추면 같은 속도로 연주해도 더 빠르게 내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심한 날은 거의 한음 가까이 높이 맞추기도 했어요. 파에 가깝지만 아직까지인 미라고 들리는 경계까지 말이죠.

 처음에는 교사에게 조율이 틀렸다고 지적받곤 했지만 곧 멋대로 조율하면서 교사에게 지적당하지 않는 범위가 어딘지 알게 되어서 아슬아슬하게 그 선을 맞추곤 했어요. 

 휴.

 어렸을 때는 어떤 것을 할 때 작은 소우주(데미플레인?)에 잘 들어가곤 했어요.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켜는 우주에 가면 그 우주에는 다른 불순물은 없고 바이올린을 켜는 것만이 있는 거죠. 얼음땡을 할 때는 얼음땡 놀이만이 있는 소우주에 가는 거고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뒤엔 소우주들은 사라져버리고 하나의 우주만이 남아버렸죠. 그 우주는 모든 것이 수단화되고 도구화되는 우주예요. 그렇지 못한, 써먹을 수 없는 것들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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