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7 21:43
내가 아직도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화양연화에는 초씨가 챈부인 남편 역활을 하면서, 챈부인이 어떻게 남편한테 불륜사실을 물을 것인가를 연습하는 장면이 있다. 연습인데도, 남편역을 하는 초씨가 인정하자 너무 아프다고 하는 챈부인.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두 사람보다 내가 하나 더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그떄 아버지를 잃은 경험을 했다. 감정은 예비하고, 연습하고, 준비한다해도 덜 느껴지지 않는다.
한달이나 길게 헤어짐을 준비했음에도, 헤어지면 아프겠지 했지만, 이렇게 아프다니. 이렇게 그립다니. 1년이란 기간은 생활의 소소함과 연중의 큰 행사를 다 담는 기간이다. 너는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구나에서, 나는 네가 이럴때 이렇게 하는 걸 알아 라고 바뀌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남들은 못보고 지나가는 일들이겠지만, 내가 그를 알기에 큰 의미를 가지는 그의 생활의 버릇들이, 우리 둘이 함께 하던 재미없는 일상생활의 단편들이 문득 문득 생각난다. 나는 무언가 일을 미루는 걸 못참는 그가, 식사가 끝나고 내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설겆이를 하던 게 그립다. 이건 사실 나를 위해 가져온 거에요 라며 설겆이 수세미를 가져오던 그. 늘 하루를 먼저 시작하던 내가, 아침이면 오늘 날씨는 이렇다, 저렇다 전하던 아침 메시지도 그립다. 늘 간단한 걸로 해요란 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이번 주말에 뭘 해먹을 까 정하기 위해 노력하던 메시지들도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탄산수를 사오던 그도, 저녁먹고 나서 선물이랑 셋이서 하던 보드게임 하던 순간도 그립다. 내가 요리할 때 조용히 다가와 내 등에 잠시 머물던 그의 손, 그가 설겆이 할때 그의 등에 머물던 나의 손. 뭔가 생각은 많은 데 말하기 힘들 때 이마 기대고 앉아 있으면 느낄 수 있던 그의 날숨, 들숨의 리듬도, 이렇게 그립구나. 이제 강림절이나 크리스마스, 생일같은 큰 연중행사가 다가오면 지난 날의 순간과 그때 우리가 했던 미래의 계획이 얼마나 서글프게 느껴질까? 이렇게 아프다니.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늘 파도처럼 새롭구나. 왜 무뎌지지 않는 건지. 왜 담담하지 않은 건지. 담담함이란 나이를 먹어도 얻지못하는 지혜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
이 그리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다. 지우고 싶지 않다. 나 한테 물어본다.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 한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허상이 아니라, 있던 그 모습을 그대로, 그 기쁨을 그리워 한적이 있던가? 그만큼 행복해서 그만큼 그립다. 누군가를 온전히 그리워 할 수 있는 걸 경험하게 되서 감사하다.
이 그리움도 언젠가는 색이 변할 것이다. 지금은 매일 매일 생각하지만 언젠가 생각 안하고 몇주일을 보낼 날들이 올것이다. 그 날들이 빨리 올 필요는 없다.
2016.08.07 22:19
2016.08.07 22:34
칭찬도 동감도 감사합니다.
2016.08.08 00:11
항상 신경을 쓰지만 나도 때 를 떄 로 쓰는 경우가 많다. 잘 안 고쳐진다. 사람을 생각하고 좋아하는 방식도, 늘 실패를 맛봤으면서도 잘 안 고쳐진다.
2016.08.08 00:30
틀린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 안하는 건 왜일까요?
2016.08.08 00:13
그럼요 당연히 기억이란 그렇죠 감정이란 시간 제한이 없고요.
2016.08.08 00:35
그렇죠. 그런데 그럼에도...
2016.08.08 16:23
2016.08.08 19:46
아마 언젠가 다시 맞아 이렇게 느껴졌지 라고 감정들이 다가올 날들이 있겠죠
2016.08.08 20:27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쓰셨던 문장대로 '내가 당신의 남은 모든 인생을 행복하게 바꿔주겠다' 는 약속을 이제는 다 믿지 않는 나이라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 그리워하고 이렇게 사랑하는데, 정말 아무 방법이 없을까요? 이렇게 그리워만 하고 살기엔 너무 아까운 감정이고 너무 귀한 관계 같은데요.
2016.08.08 21:10
귀한 관계이지만,,,
모르겠어요. 저는 이미 결정했으니 (절대로 스웨덴에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결정을 바꾼다면 모를까. 저희가 인생에 서 있는 지점이 많이 다릅니다. 그 사람의 결정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거라는 걸 아니까, 다른 것들을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네요.
2016.08.08 22:59
2016.08.08 23:13
저 정말 이해해요. 요즘에 선물이 빨리 자라나는 거 같아서, 좀 있으면 엄마가 뽀뽀할려면 아 싫어 할 나이가 되겠지 싶으면서... 동생이 먼저 엄마가 되어서 저보고 애들 어렸을 때 빨리 지나간다고 했는데 진짜 빨리 지나갑니다. 좋은 날들은 좀 더디게 갔으면 하죠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4822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3379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1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