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의 어느날...

2015.04.05 02:22

여은성 조회 수:1736


 1.예전에 친구도 없고 돈도 없어서 늘 거리를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정말 오래 전이죠. 초등학교 1~2학년 떄인지 아니면 더 전이었을 수도 있어요. 어쩌다 100원이 생기면 자판기에 가서 100원짜리 자판기 안에 있는 물건 중 제일 좋은 물건이 나오길 바라며 슬롯을 돌렸죠. 물론 늘 기대는 어긋났죠. 그 안에 나쁜 싸구려 물건은 여러 개 들어있고 좋은 물건은 하나 들어 있거나 안 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나쁜 물건이 나와도 그걸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게 뭐든간에 그건 백원짜리 물건이고 백원은 큰 돈이니까요. 그냥 뭔가 알 수 없는, 기분나쁜 끈적거리는 재질로 만든 조악한 모형이라도 절대 버리지 않았어요. 


 당시엔 총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러나 7000원, 또는 만원이 넘어가는 그럴듯한 총은 엄두도 못 내고 100원짜리 자판기 앞에 그려져 있는 작은 권총이 언젠가는 나오길 바라며 100원이 생길때마다 슬롯을 돌렸죠. 그러다가 어느날 드디어 100원인지 200원짜리 자판기에서 권총이 나왔어요. 스티븐 킹이라면 좀더 극적으로, 그때의 좋은 기분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도록 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스티븐 킹은 없으니...그 권총이 딸깍 하고 나왔을 때 느낀 그 기분은 전해질 수 없겠죠.


 그런데 그때 그 권총과 함께 비비탄을 줬었는지 안 줬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지 않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었을 거예요. 비비탄총을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쏴대고 다니는 녀석들의 뒤를 몇 분만 밟아도 비비탄쯤이야 금방 손에 넣었을 테니까요. 많이도 필요없는 게 100~200원짜리 그 조악한 권총에 들어갈 수 있는 비비탄은 한발뿐이었어요. 그래서 늘 놀이터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비비탄을 권총 안에 넣고 쏘고, 다시 그걸 주우러 가서 다시 권총 안에 넣어서 쏘고 그랬어요.


 흠.


 왜 그랬어야 했냐고요? 당시에 저는 빌어먹을 사립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래서 동네에 친구가 없었어요. 그래서는 안 됐던 건데...그냥 동네에 있는, 어제 입었던 옷을 다음날 입고 가도 아무도 놀려먹지 않는 학교에 갔어야 했던 건데 멍청하게도 사립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버리고 말았어요. 그건 빌어먹을 샤넬백이나 맥퀸 스카프 같은 거였어요. 정신차리고 사는 사람에겐 필요도 없는 것들 말이죠. 아 이런...딴길로 샜네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직 안나왔어요. 권총도 사립학교도 아니죠. 


 그러던 어느날 어떤 꼬마를 봤어요. 두 살 어린 꼬마였는데 나하고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어요. 한가지 달랐던 건 그 꼬마의 권총 총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죠. 그냥 비비탄총이 없는 권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걸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다가 어쩌다보니 꼬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 꼬마가 집에 놀러오지 않겠냐고 했어요. 


 사실 별로 호감가는 꼬마도 아니었고 그날 처음 봤을 뿐이지만 매일이 늘 똑같아서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게 그냥 좋았던 거 같아요. 뭔가...나를 재미있게 해줄 만한 걸 가지고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에 따라갔어요.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그 집에 가는 순간 괜히 왔다는 느낌이 났다는 건 기억나요. 지금 쓰는 건 지금, 오늘의 내가 느끼는 게 아니라 그떄의 감정을 쓰는 거니 속물같은 놈이라고 보진말아주셈. 그냥 뭐랄까...'이런 집도 있나?'라고 주억거렸던 건 맞는데 정작 그 집이 어떤 구조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원룸 형태였던 거 같긴 해요. 그리고 꼬마의 아버지가 나타났어요. 그 꼬마 아버지가 어땠는지 역시 기억이 잘 안나는데 당시에 느낀 감정은 기억나요.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꼬마 아버지를 봤을 때 날 슬프게 하는 뭔가를 느꼈어요. 같은 학교를 다니는 녀석들의 아버지같은, 멋진 양복을 입고 활짝 웃음을 짓는 아버지들도 육식 공룡을 보는 것 같아서 소름끼치고 슬펐는데 이 사람은 뭔가 다른 종류의 공포감을 느끼게 했어요. 뭐 어렸을 때고 어린 녀석들은 사물을 볼 때 실컷 왜곡하며 보고 싶은 걸 보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시에 소름끼쳤던 건 사실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곳을 박차고 뛰어나올 수는 없었어요. 뭔가...자연스럽게 그곳을 떠날 꼬투리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는데 꼬마가 같이 놀자고 했어요. 그게 뭘까 했는데 그건 카레이스 모형이었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니카가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코스를 설치해서 차가 코스를 한바퀴 돌도록 만드는 거 말이죠. 차를 출발시키면 차가 코스를 빙빙 돌아 원래 있는 곳까지 오는데 7초인가 걸렸던 거 같아요. 지금 떠올려보면 그건 그 꼬마가 가진 것 중에 제일 그럴듯한 장난감이었던 거 같아요.


 조악한 미니카를 출발시키면 코스를 빙빙 돌아 제자리로 오게 만드는 걸 한시간이나 계속 봐야 했어요. 한 두번 정도는 흥미로웠는데 그 꼬마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며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난 이제 가봐야겠어'라고 계속 외치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타이밍을 잡지 못했어요. 그 말을 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은 미니카가 출발선으로 돌아오고, 다시 출발시키기 전에 약간 뜸을 들이는 그 때란 거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 차가 한참 코스를 달릴 때, 꼬마가 그 차를 출발시키려고 할 때 그 말을 외치면 그 꼬마가 가진 제일 좋은...아니, 제일 신성한 걸 모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꼬마는 그 차가 출발선으로 돌아오면 지체 없이 계속 차를 출발시켰어요. 그리고 가만히 바라봤어요.


 계속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저는 차가 코스를 빙빙 도는 걸 보는 대신 차가 코스를 빙빙 도는 걸 보는 꼬마를 계속 바라봤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졌어요. 그냥 어떤 어두운 방 안에서 꼬마는 계속 같은 코스를 도는 차를 보고 있고 꼬마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슬펐어요. 당시엔 스스로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들이 그런 날을 몇백번이고 몇천번이고 계속 보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던 거 같아요.


 그때 이 꼬마랑 헤어질 때 내가 가진 비비탄을 다 주고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어요. 꼬마가 비비탄이 든 권총을 쏘게 된다고 해서 뭔가 더 나아질 거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그러자고 마음먹었던 거 같아요.


 정작 그 꼬마에게 비비탄을 줬었는지 안 줬었는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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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결심한 게 있는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 녀석들을 보며 '부럽다'라고 말하지 말아야지 하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는 비참하고 소름끼치는 일들뿐이었어요.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건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비참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이 세상을 가엾게 여기느라 바빴던 걸까 궁금해요. 어렸을 때는 지랄해대는 놈들에게 두배로 지랄해주는 법도 몰랐고 싸움에게 이기기 위해, 남들을 상처입히기 전혀 사실이 아닌 것도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리는 기술도 없었는데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요. 그 비법만은 다시 돌아가서 배우고 싶어요...


 글을 써놓고 보니 앞에 1이라고 달려있군요. 원래는 어렸을 때의 이런 저런 일화들을 몇 개 쓰려고 했는데 하나 쓰고 나니 너무 많이 쓴 거 같네요 휴...요즘 블로그도 부활시켜서 해보고 있는데 버릇이 된 건지 블로그에만 써도 될 글을 듀게에도 계속 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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