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에 대한 짧은 생각

2015.06.03 16:15

구아바84 조회 수:1692

왜 시청자들은 을들의 반란을 불편해했을까 궁금해졌어요. 



1.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면 사상을 펼칠 자격도 없다?


-여기에 대한 제 생각은 자격있다.이지만 다른 쪽 생각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2. 시청자는 갑과 을 중에선 을의 편이지만,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나 패륜을 원한것은 아니었다?


-약간 우리나라의 효사상의 얼룩진 부분을 보는 것 같았어요. 사실, 부모님의 잘못된 생각이나, 비합리적인 판단, 또는 무지에서 오는 편견등을 목격한 젊은 세대는 한두명이 아닐 것입니다. 

젊은 세대 또한 그런 면이 있겠지만, 한쪽은 비판에 대한 성역(예를 들면, 한평생 사신 어르신들은 안변합니다. 그냥 맞춰주세요 등)으로 자리잡고, 젊은 세대는 계몽이나, 리드당해도 상관없는 세대로 여겨지고, 

여기의 공식을 깨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라니. 여기서부터 모든 사상의 오염이 시작되는게 아닌가 비약스러운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평생 그렇게 살아도 사람은 바뀔 수 있어요. 나이 많고, 나를 길러줬다고 해서, 나의 성장에 돈을 대줬다고 해서, 내가 부모님을 가르치려하는게 금기시 되어서는 안되는거죠. 

모든 세대와 모든 인간들은 각자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야 맞는 것이잖아요. 

전 개인적으로 안판석 정성주 콤비가 재벌에 열광하는 을과, 재벌의 실체 이런 것보다도

평범한 가정속에 숨어있는 뿌리깊은 권위의식과 그로 말살당하는 젊고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상의 유입에 대해서 그려줬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아랫'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아랫'사람에게 '하대'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로 정신건강에 좋은 토론와 사고의 확장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요.


3. 극중 갑은 극중 을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자신의 쪽으로 회유하기 위한 설득과 집요한 계책을 놓지 않은 반면, 

    을은 갑을 회유하기 위한 설득과, 대화, 계책, 타협 등등의 모든 부분에서 너무 나이브했다. 


일단 가족으로 엮인 이상, 같은 집에서 사는 이상, 저는 갑은 을에게, 을은 갑에게 비슷한 정도의 노력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고아성은 을로서 갑에게 잘보이려고 한 것에 자존심 상함을 느끼고, 갑의 회유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도를 걷는 다고 생각하죠. 

저는 사실 그게 공평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생각의 흔들림에는 혼자있는 시간도 필요했을거고, 인상이의 선택을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했을거고, 

너무 젊고 영민하기에, 갑이 안바뀐다는 사실도 빨리 파악했겠지만, 

을이 갑이 주는 금은보화를 거절하는 것만으로 을의 윤리성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조금 무리수 같아요.

을은 갑에서 멀어지기를 선택했지. 갑을 회유하는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을이 을의 장점들, 을의 필요성들, 그리고 연대라던지, 조직체에서 평등의식이 주는 효율성등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하나도 안나온게 아쉽네요. 

도망치기만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서, 을들의 반란이 성공한건가요?

오히려 시청자들은 을들이 회피적 압박을 쓰는 모습에서 너무 어린애같은 억지를 느꼈기 때문에 짜증이 난게 아닐까요?


풍문에서 을들의 반란은 똑똑하지 않았고 감정적이었어요. 

민주영이란 장치를 이용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었을텐데요. 


내분과 반목을 조장하는 것에만 그친게 아쉽네요. 더 많은 걸 하던지, 아니면 더 효과적인걸 하던지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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