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전쟁2.

2016.08.04 09:41

잔인한오후 조회 수:698

[환상의 대중]은 이런 에피소드로 시작합니다. (내용이 정확하진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우편선이 도착하는 20세기 초의 어떤 섬에서 가쉽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로고침이 됩니다. 사교계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야기도, 서로 결투를 벌이는 이야기도 한 달 동안 재해석되고 변형되다가 한 달치 이야기가 한꺼번에 밀려오곤 합니다. 우편선이 어느날 갑자기 안 오다가 6개월 후에 도착하는데, 그 소식 중에 세계 1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속보도 들어 있었죠. 그러자 사람들은 독일인과 프랑스인, 영국인과 러시아인 등으로 나눠서서 서로를 적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 이야기가 전달되기 전의 6개월 동안 그 섬은 어떤 곳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자신이 언제나 미숙한 상태라는 것에 위안을 얻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지만, 개 중 어떤 세태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어떤 것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에 대한 태도일 뿐이며, 이해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완료는 없으며 진행만 존재할테니까요. 보통 무언가가 끝났다고 말하게 되는 것은 서로 협의를 하였다, 라는 말을 다른 식으로 서술한 것일 겁니다. 저만큼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도 세계의 이해에 완벽하게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면 많은 것들이 위안이 되고 이해가 됩니다.


저는 트위터를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대부분 달성하였지요. 듀나님과 대화하기도 그 목표 중 하나였는데, 가끔이지만 이야기할만한 소재들이 있어서 꽤 수다를 떨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처음 팔로우할 때는 (제가 느끼기에는) SF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더 많아서 바보스럽게 궁금한 부분들을 묻고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어떠한지 묻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서론은 그만두고 본론을 이야기해보자면, 나중에 상당히 길게 '격한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하게 된 시점이 있었고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페미니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격한 표현'을 포옹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가끔 보셨을 겁니다. 마치 현 상태를 나비의 날갯짓이 북해의 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듯이 긴 프로세스를 펼쳐놓는 농담을 말이지요. 보통 제가 자주 보았던 농담은 '노홍철 음주운전 > '으로부터 시작하는 장대한 서사였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하찮게 넘길만큼 대담한 사람이 아니며, 가끔 지나치며 그걸 볼 때마다 서사 전쟁의 전략 지도를 보는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사 교과서의 연표가 우리에게 깊게 뿌리내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즉,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이 높이 솟아오른 산등성이를 연결하여 그것들이 아래로 파국되어 나아갔다고 생각할 것인지, 거대한 빙산의 일각들이 튀어올라 아래의 거대한 담론들이 잠시나마 겉으로 보였다고 생각할지는, 사람들의 믿음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겠죠. 저는 보통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후자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가 요즘 반복해서 미는 묘사가 있습니다. 사람을 나누는 방법 중에 하나인데, 현실에 굳건히 서 있는 몸과 이상으로 흩날리는 마음을 연과 얼레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하늘로 흩날리지 않고 얼레와 딱 붙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부러워하는데 보통 그런 분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들어오는 문제들을 즉시즉시 해결하는 편으로 보이거든요. 저의 경우는 까닥하면 정신은 연처럼 먼 하늘로 날아가 얼레와는 상당히 떨어지고, 바람을 타고 누비는 그 세계와 현실은 전혀 들어맞지 않게 되어 딱히 그러한 이야기들을 현실로 끌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자를 '현실에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인터넷이란 곳은 매우 강한 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땅 위에 꽂꽂히 서 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펼쳐지는 형이상적 세계가 실제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감을 잡기 매우 어렵습니다. 날아오른 수많은 연들은 자유스럽게 하늘을 휘젓고 다닙니다. 쓰는 대로 무슨 말이든 조제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가 다루는 이야기들은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요. 글들은 어떤 곳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회화나 조소처럼 그 의미가 부여됩니다. 마치 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 의견에 누구나 암묵적 합의를 하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존재감 자체를 발산하죠. 거대한 가상의 상징 박물관 같은 느낌이에요. 심지어 인터렉티브하기까지 하고.


이런 몇 겹의 환상 속에서 우리는 실체를 유추합니다. 정말이지 웹디자이너와 서버관리자, 웹프로그래머는 자신이 가상세계의 건축가임을 알아야 합니다. 웹세계에서는 우리의 생각이 담기는 체계가 우리를 나타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 그것은 마치 조용히 굳어서 별 영향을 안줄것 같지만 몇 십년, 몇 백년 동안 동선과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건축처럼 우리에게 이름을 주고 영향을 줍니다. 돌아가서, 우리는 누구든 총체의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며, 집단의 일원 각각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웹세계의 풍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상정하면 실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는 듀나님과 대화하면서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듀나님의 결론은 이랬었죠. '여성들이 평등하게 대화할 권리를 얻기 전까지는 뭐든지 해야 합니다.'(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요. 세상에는 예의를 차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예의를 차리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가 예의를 차리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예의를 차리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제게 있어 예의란 자기 자신이 내켜서 하는 것이지 남한테 시키는게 아니거든요. 사실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하거나 말거나 거기에 대한 권리를 다툴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도덕과 예의의 영역이었죠. 요새 가끔씩 법의 영역을 건들긴 하고 있지만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강렬한 예의주의자라서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시민이 대통령에게, 관객이 배우나 감독에게 욕을 하는 것도 안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을지언정 강제할 의무나 권리가 제겐 없습니다. 이미 해체된 세계에서 그런 강권력을 발휘하려면 내집단의 권력을 빌어 행사해야겠죠. 듀게에서도 그런 강권력 행사를 위해 총의를 모았으나 모래성처럼 무너진 적이 있기도 하지요. 저는 일종의 바리에이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게 비호감을 얻긴 하겠지만 그런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요. 제 입장에서는 이미 '남성이 여성에게 욕을 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은 재고의 가치도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역이 이렇게 힘겹게 올라오는게 잘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를 산지 오래]되었고 듣고 싶든 듣기 싫든 다른 사람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삶에서 말소시키고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만 남과의 지루한 조율을 시작하는 법이니까요. 과연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며, 누가 다양한 겹의 환상을 꿰뚫는 서사를 조제하여 납득시킬지 기대가 됩니다. (다시 언급하자면 우리를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준비되어 있거든요. '줄어드는 아래 세대' 말이지요.)


P.S. 과연 언제쯤 실세계에서의 충돌이 일어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원외정당의 설립이라던가, 실제 만나는 사람들과의 격한 담론 교환이라던가요. 가상세계에서는 서로 맞부딪힐 손바닥을 찾기 쉽지만 현실세계(이 이분이 얼마나 어색한지는 저도 압니다)에선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진 않는 것 같거든요. 아직은 계속 가상(웹)에서 현실로 내려오기만 하니까요. 그래서 지난 강남역 충돌을 눈여겨 보기도 했습니다. (누가 말했듯 호주제 폐지가 그 맥락의 일부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티셔츠라니, 저는 군역 기간 증가 때 부딪힐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센세이셔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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