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3 07:49
이 게시판에는 참 오랜만입니다. 어제 어이없는 언론보도를 보고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어제 언론은 일제히 '애매하다'가 일본어의 잔재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습니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애매하다'가 일본어의 잔재라는 말은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실제 '애매하다'는 뜻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애매하다'는 뜻은 다릅니다. 사전에는 애매하다의 뜻을 '아무 잘못이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고 풀이합니다. 흔히 '애먼 사람을 잡는다' 할 때 '애먼'이 여기서 변형된 것이죠. 즉 '무언가 희미하고 분명치 아니하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애매하다는 일본어의 잔재라는 것이 기자와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애매(曖昧)'라는 단어 또한 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이는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음'이라고 풀이됩니다. 여기서 사전 사용법이 익숙치 않은 이들이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애매(曖昧)'만 사전에 있고 우리가 흔히 쓰는 '애매(曖昧)하다'는 없으니 잘못된 것이라는 기자와 교수(해당 보도자료를 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의 주장이죠. 그러나 사전의 '애매(曖昧)' 뜻 풀이에는 '명'이라는 품사 표시와 함께 '하 형' '히 부' 활용도 약어로 표기돼 있습니다. 즉 접미사 '-하다'를 붙여 형용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문으로 '애매한 대담'이 제시돼 있기도 합니다(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6판 참조).
게다가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애매(曖昧)하다'가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고 분명하게 뜻풀이 돼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애매(曖昧)하다'가 일본어의 잔재라는 이번 교수의 보도자료 발표와 기자들의 보도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찾아보니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구라'가 일본어의 잔재라는 주장도 미심쩍습니다. 일본어에서 거짓말은 '우소(うそ)'죠. 이와 관련해선 이 블로그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http://blog.naver.com/leeasaki/220356624777
2015.05.13 08:02
2015.05.13 09:44
어감 때문이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2015.05.13 08:10
구라? 가라? 아 . . . 가라님 저격 아닙니다
2015.05.13 09:45
이게 다 가라라면...
2015.05.13 09:07
애매하네요
2015.05.13 09:45
모호합니다.
2015.05.13 09:08
2015.05.13 09:45
'쿠라마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2015.05.13 09:46
[후라이(fry)](=사기, 뻥의 속어)에서 온 말 아닐까요? [후라이까다, 치다]에서 구라까다 -->구라치다. 이렇게 되면 일본어 잔재가 아니라 영어의 일본식 발음이 어원이...
2015.05.13 09:59
일본어의 잔재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쓰메끼리, 요지 같은 단어를 제외하고 오래 전부터 써왔던 한자어를 갑작스럽게 일제의 잔재니까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한번씩 나오는데 조사해 보면 일본어의 잔재라는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고(일제 강점기 이전의 문헌에서 해당 어휘가 발견된다거나) 그런 주장 자체가 억지일 수도 있어요. 중국, 일본, 서구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은 순수한 우리말만 쓰는 것이 옳은가요. 아니 가능하기나 한지요.
2015.05.13 10:07
저 조사에선 심지어 '호치키스'도 일본어의 잔재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공부 안하고 의식만 앞선 전형적인 결과죠.
2015.05.13 10:06
2015.05.13 10:09
국어사전이 어원의 명백한 증거가 되기 힘든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참조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애매(曖昧)'가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쓰이는 한자어인 데 이를 일본어의 잔재로 주장하는 건 섣부른 것이죠.
2015.05.13 10:10
남쪽 바닷가 사람으로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좀 뭔가 몸으로 느낀달까 그런 게 있는데(아까징끼, 쓰메끼리, 오봉, 사라....), 구라는 일본어라는 의식 없이 자랐어요. 어른들이 쓰는 단어가 아니라 중학생쯤 되면 쓰게 되는 은어랄까... 호치키스는 미국 상표는 맞지만 미국에서 바로 들어온 게 아니라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스테이플러'란 물건 이름이 아니라 상표 자체를 부르게 된 거니 순 일본어는 아니라도 일본 유래인 건 맞지 싶고요. ( http://www.tofugu.com/2012/07/13/japan-stapler-hotchkiss ) figure란 단어를 봐도 '피겨' 스케이팅과 모형을 말하는 '피규어'로 나눠 쓰는 경향이 분명히 있잖아요(무슨 표기가 맞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후자의 figure는 일본식 영어를 받아들인 거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2015.05.13 10:29
조사자가 "서경덕"이라는데에서 이미 객관성,중립성 이런 건 물건너 갔다고 봐야죠.
국뽕이나 선동이란 단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진짜 딱 거기 들어맞는 인물입니다.
특히 뉴욕타임즈에 추신수 기용해서 만들어낸 불고기 광고의 X맛스러움,무의미함은 한국인으로서 얼굴화끈거릴 정도로 쪽팔림이 역대급이었죠.
저런 류의 사람들이 헛발질하는 건 꼭 관련 학자나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연구,조사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건 별무관심이고, 자기 나름대로 무슨 어원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루머처럼 떠들고 있는, 일부 단어나 표현만 자의적으로 골라내서 일제 잔재니 몰아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꼼꼼한 일본애들한테 거하게 털리기나 하죠.
저 서경덕이란 사람은 이 책이라도 좀 읽고 우리말에서 일제 잔재를 어떻게 싹 다 몰아내 보겠다는 것인지 자기 생각을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2550.html
장담컨데 저런 허섭한 캠페인이 아니라 진짜 그게 가능하다면 서경덕씨는 세종대왕-주시경에 이은 한국어史의 위인으로 기억될 겁니다.
曖昧란 단어는 조선왕조실록만 잠깐 검색해도 수두룩빡빡 나올 뿐더러, 희미하고 불분명하다란 지금 사전뜻하고도 통하죠. 명색히 교수란 사람이 어디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거 대충 짜집기 해서 연구랍시고 내놓는 모양새도 참 딱합니다.
司憲府啓: “護軍李穰以曖昧之咎, 輕棄正妻, 律應杖八十。” 上以功臣之子, 只罷其職。
호군(護軍) 이양(李穰)이 애매한 허물로 경솔하게 정처(正妻)를 소박하였으니, 율에 곤장 80대에 해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공신(功臣)의 아들이라 하여 다만 관직만 파면하였다.
2015.05.13 11:42
이번 일로 한국고전DB라는 곳을 알게 됐는 데 재밌네요. 여기서 검색하니 목은 이색의 글이 딱 걸립니다.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url=/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e004&gunchaId=av009&muncheId=01&finId=062&NodeId=&setid=358772&Pos=0&TotalCount=5&searchUrl=ok
위로는 공론이 전혀 애매하다는 걸 말하고 / 上言公論絶曖昧
2015.05.13 16:05
우와! 이 사이트 대박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15.05.13 11:00
전공과 무관한 범국민 언어문화개선운동 홍보대사라,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애매하군요
2015.05.13 11:09
2015.05.13 11:42
한자어의 무엇을 기준으로 일본어 잔재라 하는지 참 애매해서 납득이 안갑니다. 애매하다 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에 양존하는 한자단어는 무수히 많은데 그럼 그게 다 일본어의 잔재인지..
2015.05.13 11:47
구라가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것에서부터 이미 병맛이 드러나 버렸고 무슨 엄밀한 학술전문용어라면 혹시 또 몰라도 일상어는 굳이 어원 따질 것도 없이 많이들 쓰면 통하는 것인데 만만한 일본어 외래어만 물고 늘어지는 속좁은 강박은 버리고 이제부터 한국어는 세계 최다 인구를 가진 중국어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도 수천년을 버틴 나름 끈질긴 언어라는 데 국뽕을 느끼는 방향으로 가는 쪽이 낫지 싶어요.
2015.05.13 11:52
어제 딴 데다 올렸던 구랍니다.
구라의 어원은 거북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어 kura-kura다. 동남아에서 쿠로시오(黑潮) 해류를 타고 한반도로 올라온 동식물이 많은데 거북이도 그중 하나다. 별주부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거북이는 토끼에게 구라를 쳐서 용궁으로 데려가지만 토끼는 구라를 쳐서 다시 빠져나온다. 거북이가 구라를 치고 구라에 당해 kura-kura가 된 것이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는 구라가 안 나오지만 별주부전은 이렇듯 중요한 구라가 그것도 바다를 배경으로 두 번이나 나오니 구라의 어원은 인도네시아어 kura-kura가 확실하다.
2015.05.13 11:54
으악.. 그 구라의 주인공이 쿠융훽님이셨군요. 그렇잖아도 재밌어서 다시 찾아보려 했어요. 모름지기 구라라면 이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 근데 이거 정말 구라인가요? 너무 그럴듯한데요.
2015.05.13 15:09
구글 번역 뒤져보니 kurakura가 인도네이사어로 거북이인 건 맞네요. 역시 쿠융훽님!
2015.05.13 12:20
흘 서경덕?
흔한 국뽕인데도, 쪽팔린 짓은 환빠를 쌈싸먹는 괴괴한 재주를 지녔어요.
애매하다는 말이 일본에서 유래했다고 쓰지 말자는 그 멍청한 논리가 저 인간은 왜 먹힌다고 생각할까요? 주변 언어와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언어가 어딨다고 말이죠. 일본에서 왔건 중국에서 왔건 한국어 표현력을 확장하고 대중들에게 정착된 말이라면 버릴 이유가 없어요. 서경덕 같은 쇼비니즘 찜쪄먹는 국뽕들이나 순한국말 열심히 캐내고 갈고 닦으면서 써먹으면 됩니다.
2015.05.13 12:25
2015.05.13 14:17
애매모흐는 독일말아니었나요? 아리송은 프랑스말. 아리까리가 일본말. ㅎㅎㅎㅎㅎ
2015.05.13 16:3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3925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2351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0749 |
구라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말이긴 하죠. 다들 일본어로 알고있는데 일본어에는 그런 비슷한 말이 없구요. 아마 어감이 일본어같아서 그런거 아닐까 싶죠. 링크 글에 호치키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