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인정1)

2016.09.08 13:27

여은성 조회 수:792


 1.예전에 새로운 이름으로 사는 것, 새로운 이름에 새로운 사회성과 역사가 부여되는 것에 대해 썼었어요. 미술학원 원장이 내 서류상 이름은 여은성이 아닌 걸 알면서도 합격생 현수막에 여은성의 이름으로 합격 대학을 적어준 거요. 게다가 아마 '10개월만에 합격'같은 문구도 내 이름 옆에 붙어있는 유니크한 사례였던 거 같거든요. 


 누군가-의심이 많은 학부형이라던가-가 정말 10개월만에 합격했는지, 정말 그 학교에 합격했는지 사실확인을 하면 꽤 귀찮아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여은성의 이름을 써준 건 꽤 고마웠어요.


 

 2.사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좋은 평가가 별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래봐야 실체가 없거든요. 그냥 그 사람의 관점일 뿐이지 실제의 내가 나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는 기분을 좋게 해요. 생각나는 세 일화를 적어보죠. 시간순으로요.



 3.아마추어 만화를 그려 올리던 어느날 후원연재 붐이 일었어요. 남들이 회당 수십만원씩도 받는 걸 보며 기분이 나빠졌어요. 사실 금전적으로 보면, 정식 연재는 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요. 어쩌면 안 하는 게 좋은 것일 수도 있죠. 정식 연재를 하면 놀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만화를 그려 올리는 것도 놀이 중 하나였거든요.


 그러나...나의 이야기가 다른 것보다 나은 건지 낫지 않은 건지는 늘 너무 궁금했어요. 만약 가치가 없는 거라면 놀이로라도 할 필요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나도 후원연재에 도전해 봤어요. 모 펀딩사이트에 갔는데 최고기록이 얼마였는지는 기억 안나요. 어쨌든 그것보다는 많은 900만원이 약간 안 되는 정도로 정했어요. 왜냐면 그보다는 재밌는 것 같아서요. 


 당연히...반응은 이게 될 리가 없단 거였어요. 900만원은 큰돈이라고요. 물론 크고 작고는 상대성과 관점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서 나는 이 만화에 900만원이라면 전혀 큰돈은 아니라고 설파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국가 단위로 쳐서, 고작 900만원도 못 버는 만화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없는 거죠. 900만원은 어렵게도 아니고 쉽게 모여야 할 돈이었어요. 이 만화가 약간이라도 재미있는 만화라면요.



 4.휴.



 5.그런데 하필이면 그 펀딩사이트는 너무 일 진행이 느렸어요. 메일을 보내면 절대 당일 답장따위는 하지 않았고 금요일날 메일을 보내면 그걸 확인하고도 정작 메일은 월요일날 왔죠. 회사를 취미로 하는 건가 싶어서 취소했어요. 그리고 통장 모금으로 전환했는데...뭐 적당한 돈이 들어왔지만 어째 900만원은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거 정식 연재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해야 하나 싶었어요. 어쨌든 이야기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서요. 아예 이런 일을 안 벌였으면 그냥 조용히 살았어도 됐는데 이런 일을 벌인 이상 그래야 면이 설 거 같았어요. 약간 후회도 됐죠.


 그러던 어느날 천만원을 누군가 보내왔어요. 



 6.여기서 여러분은 궁금해 하겠죠. '여은성이 그 돈을 가져버렸을까?'하는 궁금증이요. 물론 그러지 않았어요. 왜냐면 고마웠거든요. 시끄러운 디씨인사이드 놈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ATM기에서 인증샷을 찍어서 디씨에 올릴 수 있던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어요. 그냥 그순간 된 거예요. 목표액을 꼭 가지지 않더라도 목표액이 채워졌으면 내 목적은 달성된 거죠. 물론 천만원을 다 돌려주진 않았어요. 990만원을 돌려주고 밥도 얻어먹었죠.



 7.그 뒤로도 정식 연재를 시도해 봤고 한동안 안 됐지만 딱히 기분나쁠 건 없었어요. 모로 가든 뭘로 가든 어쨌든 900만원의 달성액을 채웠잖아요. 내 안에서는 충분히 완결된 일이 되었어요.


 뭐 그러다가 굳이 만화를 안 그려도 되겠다 싶어서 좀 뜸해졌다가...어떤 기회때문에 정식연재를 하게 되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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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일화를 한 글에 몰아쓰려고 했는데 너무 기네요. 하나만 쓰고 나머지는 다음에 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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