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옹호

2015.09.15 15:46

김실밥 조회 수:3465

- 메갈에서 사용하는 표현 그대로 인용한 부분 있습니다. 인용 표기(“”) 하고서 인용합니다.

 




아래 thomas님이 쓰신 글에 답변을 달까 하다가, 게시글과 댓글을 쭉 읽어보니 thomas님의 메갈리아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은 것 같고, thomas님이 피드백을 주면서 끌어가는 토론 분위기도 영 안 좋아서 글을 하나 새로 씁니다. 제가 thomas님의 이해도가 낮다고 한 부분은 젠더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둥의 이야기가 아니라(그건 판단 안 하려 합니다), 그냥 메갈리아 내부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계시단 얘기입니다. 저도 메갈리아 유저가 아니고 며칠에 한 번 가서 분위기만 보는 사람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돌려줌으로써 잘못을 알게한다라고 쓰신 류의 미러링 명분은 메갈 내부에서는 폐기된 지 오래고 또 일베는 미러링의 타겟이 아니며 혐오발언을 행하는 한국 남성들도 아닙니다.

 

일단, 지금 메갈리아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베나 협의의 혐오발언(XX녀 표현 등)이 아닌, 광의의 혐오misogyny 전체입니다. (물론 혐오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일단 여기에만 한정해서) 이 혐오에는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데이트/가정 폭력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정신/신체적 폭력, 여성의 성적 대상화 등의 문제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한국남성들 대다수가 [가진] 여성에 대한 편견,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thomas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견과 잘못된 사고방식-광의의 혐오를, 있는 그대로 혐오로 되돌리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느냐, 라고 물으실 텐데, 외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관하게 메갈리아는 정당성이라는 말을 thomas님과 좀 다른 의미에 한정시킵니다. thomas님은 주류 남성들을 포함한 사람들 전체에게서 어떻게 정당성을 승인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미에서 문제를 제기하시겠지만, 메갈리아는 미러링의 목적을 여성들의 코르셋“(남성에 의해 대상화된 자의식)을 벗기는 일로 한정하고 있고, 그들이 씹치라고 부르는 주류 한국 남성들의 계몽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탈치“/”씹치의 극단적인 분절 구조는 적과 아를 명확히 가르겠다는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결정이지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돌려줌으로써 잘못을 알게 하는것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그런데 저는 미러링이 그렇게 순박하고 위선적인 의도를 지녔더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것이며 정치적 정당성도 얻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아를 가르는 개념으로 탈치“/”씹치를 사용하는 것은, 기존에 남성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김치녀“/”개념녀의 대립구조와는 기표의 작동 방식이 다릅니다. “해외 여행객 중 절반은 20-30대 여성이라는 신문기사 아래에 김치녀를 비난하는 댓글들은 이렇게 달리죠. “1; 저렇게 할 거 다 하고 결혼할 때 3천만 있으면 되는 거, 2; 돈 뜯거나 애비 등쳐서 가는거, 3; 해외 원정 걸레짓 하러 가는 거, 4; 한비야 책 읽고 지가 무슨 영적탐험이라도 하는 듯한 망상에 빠진 보슬년, 5; 임금격차, 취업차별 등으로 먹고 살기 힘든 대한민국 여성이지만 비싼 커피와 해외여행을 포기할 수 없당, 6; 외국 공기 마셔보겠다고 소음순 대음순 펄럭이며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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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기표는 노동시장에서 당하는 수직적인 경제적 고통을 어떤 차별적 관념(가부장제든 정조관념이든)을 동원해서든 수평폭력으로 해소해 보려는 남성 청년 세대의 동기에 의해 작동됩니다. 당연히 개념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에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고통을 조정하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구원자 여성 이미지로 조작됩니다. 대표적인 개념녀로 우상화됐던 페이스북 우동포차 게시물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입니다. “내 남친은 차가 없어”, “부자가 아냐”, “삼천원짜리 우동”, “같이 적금을 들어라고 말하는 여성은 마지막에는 난 그러케 하지 않아도 내 남자친구의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라며 아예 개념녀인 자신을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합니다. 김치녀에서 개념녀로 움직이는 선분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탈치”/“씹치의 분절은 용례가 다릅니다. 메갈리아 게시글 전체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글 중 하나인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 (매우 스압이여요) ; http://megalian.com/data/41126}을 비롯해서 메갈리아에서는 탈치를 페미니스트 남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씹치를 성차별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남성으로 지칭해 표현합니다. 단어의 외관은 김치녀”/“탈김치녀(개념녀)”의 분절을 그대로 따왔지만(“씹치남은 아시다시피 디씨인사이드에서 김치남을 금지어로 지정하자 사용한 표현입니다) 기표가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씹치에서 탈치로 움직이는 선분은 무엇보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 윤리적인 능력에 있는 겁니다.

 

thomas님이 처음에 문제를 제기하셨던 미러링의 특성이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러링=혐오가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미러링이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것이 차별~혐오의 이미지를 비추는 것이지 내부의 동학들을 비추는 것은 못 되기 때문입니다. 외관들, 기표들은 그대로 뒤집힌 채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차별이나 비하, 혐오를 수행하는 힘은 미약하고 고려할 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thomas님이 사용하신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피해자라는 표현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운 우스꽝스러운 것이 됩니다.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 “피해자는 실제로 피해를 받은 사람을 지칭합니다. “6.9cm", ”자들자들“, 개불 써는 이미지 따위는 이미지에 불과하고, ”오윾이(오유 유저)“ "오피충(성매매충)”과 같은 표현들은 별다른 수행의 역량도 없습니다. 실제로 메갈리아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여성 억압에 관한 의미있는 지적들인지와 무관하게, 메갈리아는 메갈충”, “일베나 메갈이나로 불리며 여성혐오의 렌즈를 한 번 거쳐서야 세상에 보여집니다. 지나치게 많은 선별적 노출 자료들(특히 무한도전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을 접하고서, 실제로 미러링이 혐오의 동학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은 몇 개의 박제들 만으로 집단의 이미지를 조작하기 쉽다는 것이고,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밖에서 보는 박제된 이미지와 실제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논의를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래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친구와의 갈등게시글에서도 메갈리아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일을 즐기는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그런 표현을 쓰지 말자는 비판이 훨씬 우세한 상황입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과 달리, 일간베스트~소라넷을 위시한 남성 커뮤니티가 걸어온 여성혐오의 길은 실제적인 수행역량을 내포한 이미지를 생산합니다. 여성부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을 생산하며 여성에게 경제적 약탈자 이미지를 덧씌웠고, ‘꼴페미’, ‘김신명숙같은 전설들을 발명하여 군가산점제 폐지의 공로(?)를 여성들에게 선사했고, ‘걸레라는 표현으로 여성에게 정조를 강요하면서도 ‘1학년은 파인애플, 벗기기 어렵고 맛이 좋다, 2학년은 바나나, 벗기기 쉽고 맛이 좋다, 3학년은 사과……따위의 성적 대상화를 일상에 들여왔습니다. 수많은 ○○들에 이어서 맘충을 포함한 수많은 ○○들은 여성에게 자기감시의 체제를 효율적으로 부여했습니다. 남성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실천을 수행한 적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메갈리아가 걸어온 남성혐오의 길(?)(=미러링에 대한 thomas님의 표현)은 반면에 소라넷 몰래카메라를 벗겨냈고, 맥심 코리아의 성범죄 연상 이미지 판매를 중지시켰으며, 목록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성차별적 언어들(‘개념녀’, ‘김치녀’, ‘맘충’, ‘김여사……)을 비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책없이 고삐풀린 채 질주하던 여성혐오자들, 내밀한 동조자들, 방관자들에게 처음으로 견제 세력이 생긴 셈입니다



* 표시의 예시는 윤보라 님이 정리한 내용들(<일베와 여성 혐오>, 2013)을 참고했습니다.

- thomas님이 사용하신 표현을 일부 잘못 적시("무고한")한 것 확인하고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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