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1997년 씨네 21 과월호가 있어서 비트 20자평 올립니다. 씨네21 홈페이지엔 없는 20자 평입니다.

 

비트

 

강한섭 - 충무로 액션 영화의 뛰어난 성과물. 김성수-김형구-정우성 트리오의 탄생! (별 넷)

김영진 - 드디어 진짜 젋은 한국장르영화가 나왔다. 초반 40분은 걸작(별 넷)

안정숙 - 자유로운 운필이 먼저 보인다(별 셋 반)

하재봉 - 세련된 기교, 빠른 편집, 주제를 향한 힘이 조화를 이룬 감각적 연출(별 셋)

 

개봉 당시 비트에 내려진 씨네21 20자 평입니다.

일단 이 작품은 런어웨이로 어정쩡한 입봉을 한 김성수의 차기작으로 전작을 뛰어넘는 기대 이상의 연출작을 내놨다는것에 대한 상대평가로

후한 평을 받은게 사실이죠.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요. 당시 왕가위 신드롬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왕가위 스타일의 모방은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것같습니다.

왕가위 스타일 따라한것이 눈에 밟히는건 오히려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 보였던 부분같아요.

그 당시엔 이런 류의 편집과 화면 구성의 국내 작품이 영화,방송 구분없이 너무 많아서 무뎌진 감이 있죠.  

 

돌이켜보니 정말 붐이긴 붐이었네요. 극중 정우성,유오성처럼 말보로 담배 필터 쪼개서 담배 피우는 애들도 많았고

정우성 헤어스타일 모방, 정우성이 입은 니트와 티셔츠가 유행이기도 했죠.

 

비트는 전체 1천 5백 50여컷으로 이뤄진 영화로 당시 평균 한국영화의 일반적 컷수인 5백컷의 세배 되는 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96년 9월 13일

크랭크인하여 6개월에 걸쳐 63회차로 마무리 지었고 10만자 이상의 필름을 썼습니다.

당초 예산 13억 5천만원이 초과돼 15억원으로 마무리 됐는데 그 당시 평균 한국영화에 비하면 고액 제작비를 쓴 영화였죠.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은 비트 이후 태양은 없다와 무사까지 함께 했습니다. 김성수 감독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꾸준히 작품 냈는데 휴지기가 기네요. 

요즘 장혁 주연으로 감기 들어갔다면서요. 장혁과 두번째군요. 장혁 처음 나왔을 때 정우성이랑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짝퉁 정우성 같아 보였는데.

정우성에 이어 장혁과 두편을 하다니 재밌네요.

 

김성수 감독은 공륜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매기자

 

"연소자 관람불가라는 말을 듣고 힘이 없어졌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는데...

이 영화는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다.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지만 애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트 푸로듀서의 제작 일지인데 다 옮기는건 힘들고 욕해서 짧게 올리겠습니다.

 

1996년 4월 부터 1996년 9월까지

영화사 대표 차승재의 승인으로 비트 영화화 결정. 원작자인 허영만에게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접촉했지만

48+1의 영화 버전에 실망한 허영만은 자신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것에 대해 부정적. 그러나 허영만을 만나 끈기있게

설득한 끝에 판권을 구매하는데 성공.

정우성,임창정,유오성이 캐스팅됐고 로미 역은 정우성이 고소영을 추천. 프로듀서와 감독이 고소영을 만나 캐스팅을 결정했는데

문제는 고소영이 드라마 행복의 시작에 출연중이어서 일주일에 3일 이상 시간을 낼 수 없다는것. 그러나 주인공은 민이였기 때문에 

조절만 잘 하면 됨

 

1996년 9월 13일 잠실 야구장

비트의 첫 촬영날. 필름을 너무 많이 써서 프로듀서 예산 문제로 걱정.

 

1996년 9월 28일 00중학교

학기중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촬영해야 해서 학교 섭외가 쉽지 않았음.

지인을 통해 겨우 학교 섭외. 간신히 추석 기간을 이용해서 급하게 촬영, 두컷 남겨두고 해가 떨어져서 클로즈업 장면은 다른 옥상에서

촬영.

 

1996년 9월 29일 서울공고

아이들 패싸움은 중학교 옥상에서 찍었고 학교 내부 장면은 서울 공고를 섭외.

날밤을 새서 촬영을 겨우 완료. 정우성이 극중 학교 기물을 때려부수는 장면은 새벽에 찍음. 모두 찍고 나니 아이들 등교 시간.

촬영 시간이 초과돼서 학교 선생들에게 일일이 사과. 그리고 학교의 피해를 점검하고 보상 문제 논의.

 

1996년 10월 11일

그 유명한 정우성의 손 놓고 오토바이 타는 도로 장면 촬영

촬영 장소는 분당의 아직 개통이 안 된 폐쇄 도로.

이 폐쇄된 도로의 가로등을 켜는 문제로 일이 꼬여서 찾아가고 또 찾아가 도로 공사를 맡고 있는 현장 책임자를 만났는데 의외로 선선하게 협조를 해줘서

다행

 

1996년 10월 15일 대학로 피자집

고소영 첫 촬영. 크랭크 인 한 달만에 처음 촬영했네요.

촬영이 지연돼 50만원 추가 지출

 

..........나머지 내용 보니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 패스. 촬영 종료일은 1997년 3월 2일. 촬영 6개월, 후반 작업 2개월. 개봉을 5월에 했으니 거의 9개월 걸려 만든 영화군요.

 

 

아울러 씨네21 1997년 5월 영화 20자평 옮기면서 같이 실린 다른 작품 20자 평도 보너스 올립니다.

 

박대박

 

안정숙 - 웃음으로 감량하다 링에 못오른 법정극(별 둘 반)

하재봉 - 치밀하지 못한 법정신. 논리와 웃음 사이에서 주저앉은 코미디 영화(별 하나 반)

 

쁘와종

 

김영진 - 화면은 근사하다. 배우도 성실하다. 그러나 얘기가...(별 셋)

유지나 - 이제는 정말이지 왕가위 씻김굿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별 둘 반)

하재봉 - 박신양만 향기난다(별 하나 반)

 

화성침공

 

강한섭 - 천재 팀 버튼의 바보 흉내내기(별 셋)

김영진 - 악동의 상상력으로 헤집어 놓은 미국 사회의 엉망진창 자살극(별 셋 반)

하재봉 - 외계인 침공이라는 같은 소재도 이렇게 다르게 만들 수 있다. 팀 버튼의 상상력에 경의를!(별 셋 반)

 

하재봉 이 분은 별점 주는 객수가 박한데 별 갯수가 그 뒤에 20자평에 참여한 박평식과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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