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시르, 너는 잘 살아있니?

  와인을 마시고 나면 나는 너의 안부가 궁금해져.


 *

 그 아이는 나의 불어 선생님이었어요. 도망치듯 파리를 떠나온 지 10년이 지나니까

 말을 모두 잊어버릴까봐 두렵더군요.

 그는 원어민이지만 모로코 출신이기에 수업료를 많이 깎겠다고 했어요... 그럴 필욘 없었는데.

 키가 크고 바짝 깎은 머리, 예쁜 회녹색 눈동자의 아이였고 길을 잘 모르는 그를 위해 한국인 여자친구가 따라왔어요.

 첫 수업 날 가져온  누벨 옵제르바퇴르 최신호를 더듬거리며 읽는 저를 보곤

 -이걸 바로 읽는 건 프랑스애들한테도 쉽지 않아!라며 싱긋 웃어줬어요.

 어쨌든 일주일에 두번 수업하는 동안 그 애가 마리르펜을 증오한다는 것과 지단의 열성팬(일 수 밖에 없겠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결혼을 허락받으러 온 거였는데 결국 한국 부모님이 반대해서 만나주지조차 않았다고 해요. 

 결국  여자와 헤어지고 프랑스로 돌아가야 했기에, 세 달 정도의 짧은 수업은 끝이 났습니다. 

 -Y는 한국 부모가 인종차별적 사상을 갖는 건 당연하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했어.

 -음...내 생각엔 그건 한국에서도 나쁜 편인것 같은데...

 기분이 꿀꿀해진 그 애와 난 마지막 수업 대신 술을 마셨어요. 꽤 많이 취했는데, 제 팔을 잡고 자기 집에서 술을 더 마시겠냐고 물어와서 

 -우리는 취했고, 이건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라며 웃으면서 헤어졌죠.하하...


 

 

*

이후에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갑자기 파리 출장이 잡혀 이틀 간 휴가를 냈어요. 

이야기를 전하니 비행기 편명을 알려달라는 답이 오더군요. 

설마하는 마음에 출국장을 나서는데, 정말 게이트 앞에 그 애가 서있었어요!

오랜만에 냄새나는 지하철을 타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좀 어색한 기분이 들긴 했어요. 

그 전까지 파리에서 난 친구와 함께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는 지인의 집을 통째로 빌려뒀으니 호텔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 순간 정말 이 아이가 나의 친구가 된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RER를 갈아타고 들어선 외곽 동네는 늦은 밤이고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어요.

그건 정확히 내가 아주 좋아하고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그 애는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며 내 표정을 살폈죠.

코너에 작은 영화상영관이 있었는데, 마침  홍상수인가 박찬욱인가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었어요. 

-이 동네가 너를 반기는가 보다. 파리에 다시 온 걸 환영해! 

곧 명랑한 기분에 빠져 들었고 어색함은 사라졌어요. 이 게토같은 곳에 5년 정도는 산 기분이랄까... 



삐걱이는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집은 낡았지만 아늑했어요. 복도에 장미꽃 그림이 걸려있기에 한참을 들여봤더니, 

친구의 아버지가 아마추어 아티스트라며 자랑했어요. 생판 모르는 남들의 가족 사진과 몇몇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야밤에 듣는 건

꽤 묘한 기분...그리고 본인은 거실의 카우치를, 저는 방의 침대를 내어줬어요.  

그는 욕실까지 따라와 낯선 수도꼭지 사용 방법까지 친절히 알려주며 편하게 지내라고 했어요. 

샤워를 하는 동안 예전에 사용했던 익숙한 싸구려 바디젤의 거품 냄새를 맡으면서 잠깐 고민이 되었어요. 

혹시 같이 자자는 의미라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하지만 씻고 나오니  그 애는 구두까지 신은 채로 카우치에 누워있더군요.

혹시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딸각 들릴까봐 그냥 문만 닫고 잠을 청했어요. 





*

시간이 2일 밖에 없었고 나는 그가 이끄는대로 파리를 둘러보기로 했어요. 

낮에는 에띠엔느 마르셀의 거리를 걸었고, 손바닥 2개 만한 스테이크로 브런치를 먹고, 바로 앞 주말 시장에서 시장 구경을 했죠. 

빨간 순무더미에 혹해서 정신이 팔린 채 구경을 하고 있는데,  거리 중간에서  한 남자가 포스터 같은 걸 나눠주고 있었어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구역이라 진보정당인 듯 보였고 그 애는 남자와 한참 대화를 나누더니 모금 박스에

돈을 집어넣었어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왠지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나도 넣을까? 라고 말했더니

-좋은 아이디어지만, 한국에서 너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넣는게 좋겠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못한 채_



우리는 몽마르트로 향했어요. 평소의 나라면 절대 걷지 않고 케이블카를 탔을 텐데 

그 애는 계단을 걸어올라가자고 했죠.오르는 중간, 작은 슈퍼마켓에 들러 5유로 조금 안 되는 와인을 두 병 샀죠. 

주인 할머니가 

-아가씨는 곧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을 먹을 거요-라고 해서 

가성비 쩌는 브랜드인가 보네 라고 생각했어요.

계단 중간에 앉아 그 애가 깔아준 비닐 봉다리 위에 앉아 병나발을 불었는데, 단박에 이해되더군요. 

날씨도 좋고, 태어나서 처음 마시는 낮술이었고, 기분은 명랑했어요.

갑자기 여우비가 내려서,  아랍과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길목으로 피신을 했어요. 

금세 비가 멈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맑아져서 온갖 색의 싸구려 원피스가 나부끼는 잔상과 겹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비믜 습기때문에 더욱 꾸스꾸스 냄새가 진동하는 길을 걸으니 배가 고파져서, 

-오늘 저녁은 꾸스꾸스로 먹을까?

라고 했더니 그 애가 매우 좋아했어요. 굉장히 오래된 집인듯, 아랍전통 의상을 입은 노인들에게 둘러싸여 꾸스꾸스를 먹었는데

평소에 먹던 것보다 조금 라이트해서 기억에 크게 남진 않아요. 대신 주인이 서비스로 내준  엄청나게 달고 박하향이 진한 민트티가 생각나네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친절했어요. 

-왜냐하면 너는 특이하거든. 

-너희 나라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좋아하니?

-음, 글쎄 이 사람들은 아시아인 이라기보다는 그냥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틀동안 우린 어딜가나 환영을 받았어요.

내가 살았던 파리는 영 그렇지가 못했는데, 그 아이의 구역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우리도 김치를 잘 먹는 외국인을 보면 예뻐보이는 뭐 그런 거였던 걸지도. 




*

한국에 돌아와서도 드문 연락을 이어갔지만 일이 바빠지고 만날 기회가 없어지다보니 연락이 뜸해졌어요.

나나 그 애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고요. 

그 후에 파리에 두번 더 갈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 애가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로 긴 여행을 떠난 상태였고 

두번 째는 고향인 모로코에 머물고 있다고 했어요. 

언젠가는...이라는 단어와 함께 엇갈렸죠.


파리와 니스에서 테러나 흉흉한 뉴스가 들려오면 

심장이 덜컥해요.

그 아이가 거기 있었던 건 아닐까.

뚜껑을 손으로 여는 값싼 와인을 마실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요. 

혹시나 해서 얼마전 그의 이름으로 구글 검색을 하니 얼굴이 크게 실린 몇년 전 뉴스가 하나 검색되었어요.

이민자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는데, 경찰에게 불법 구타를 당해 몸에 상처를 입었다는...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얼른 메일을 썼어요.

-Salut Bachir! Comment ca va? 

첫줄을 썼는 데 그 다음을 잇기 어렵더군요.

나의 불어실력도, 마음도,


나는 그가 빨리 답장을 보내왔으면 좋겠어요.

매번 똑같은 문구로 끝을 내는 그의 편지를

기다려요


N'oublie pas de donner de tes nouvelles ;) 
Bises,
Bachir


  











겨우 남은 저 화질의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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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잠시 피신했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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