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잡담

2011.03.23 21:08

메피스토 조회 수:2695

* 뭐 했던 얘기들입니다. 아마 특별한 이야기가 더 뜨지 않는 이상 이 주제와 관련해선 마지막 얘기가 되겠죠.

 

 

* 예능을 보는 이유는 순전히 재미때문입니다. 그 재미의 속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요점은 재미죠.

 

 '나는 가수다'는 다분히 여러가지를 잡기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보입니다. 아이돌천지인 가요계에서 그래도 정말 노래를 잘부르는 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것만 보여주면 골든타임의 체면이 안설테니 서바이벌을 도입하자, 청중평가단에 의해 몇주에 한번꼴로 투표를 하고 그중에서 7위를 기록한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자. 중간중간 가수들만 나오면 예능맛이 살지 않으니 개그맨들을 매니저로 붙여 재미를 유도하자. 그것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문제가 많다고하지만 전 사실 취지 자체는 큰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서바이벌이란 요소는 분명 비판받을 여지가 많은 요소이긴 합니다만, 멀리는 해외 서바이벌프로그램들, 가깝게는 슈스케나 위탄 등을 통해 사람들은 이런 방식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죠.

 

 

* 초반엔 편집이 많이 조잡했지만, 볼만했습니다. 사실 저런 기라성(아..이 표현 오랜만에 쓰는군요)같은 가수들을 한곳에 모아놓는 프로그램이 어디 많겠습니까. 다들 시대를 풍미하거나 지금도 진행중인 가수들이잖아요. 편집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의 의견 역시도 다음 방송에 반영이 되었고요. 몇몇 가수들의 노래가 실시간 검색 순위에 들정도로 일밤의 나는 가수다는 비교적 순탄한 항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루하고 쓸때없는 장면을 참고 넘기며 나름의 무대를 보여준 가수들 중 누가 떨어질지 생각했고, 기대했습니다. 아, 기대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겠군요. 다만, 호기심이죠. 그리고 결전의 날. 그들은 '협상'을 했습니다.

 

1박2일에도 재도전이나 협상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협상과 1박2일의 협상은 그 종류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프로그램의 근간을 흔들진 않아요. 예를들어,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등을 포함해서 그들중 누구도 '1박'을 하지 않고 빨리 퇴근하겠다는 것으로 협상을 하진 않죠. 그들이 협상하는건 벌칙이나 식사, 잠자리 같은 부수적인 권리였을뿐입니다. 부수적인 권리이기에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이 권리를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고, 이 속에서 또다른 재미를 만들어내죠. 강호동, 이수근과 PD의 협상게임은 다들 짜고치는 고스톱인지 아니면 진짜진짜 리얼인지와는 별개로 소소한 재미를 부여합니다. 아니아니, 요즘은 아예 협상 자체가 하나의 코너인냥 굳어져버렸습니다. 출연진, 제작진, 심지어 시청자들까지도, 이젠 서로 알만큼 알기에 협상이나 '꼼수'같은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는거죠.  

 

반면, 나는 가수다가 이번에 처음시도한 재도전 협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삽질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지난 몇주내내 오만가지 폼이란 폼은 다잡았습니다. 가수들은 처음엔 장난처럼 임하다가도 막상 노래를 부르고, 청중평가단에 예비심사를 받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프로그램의 서바이벌 요소에 더욱 더 무게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향이 짙어질수록, 탈락자가 나올때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잔인하지만 일부 시청자가 궁금해했던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맨 매니저를 둔 가수들의 무대와 청중평가단의 판정, 순위의 결정. 이게 전부였죠.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의 실제적인 첫클라이막스부터 자신들의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컨샙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지난 몇주간 자기들이 계속 떠들어온 약속을 어떠한 예고와 상의도 없이 정면에서 뒤집은거죠. 그것도 청중들이 없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요. 이소라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뛰쳐나가고(청중 앞이 아니라고 여기에 면죄부가 부여되는건 아닙니다), 다른 출연자(김제동인가요?)와 제작진은 듣도보도 못한 재도전이란 카드로 협상을 하려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이벤트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의 기대를 정면에서 부정해버린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방송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교체 가수의 모습을 비춰주며 시청자들을 향해 "걱정마세요, 그런일은 없을거에요"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했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김건모가 재도전 카드를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겁니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 이런 자세가 아름답다 어쩐다 하지만, 사실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는건 그냥 룰을 지키는 것일 뿐이죠. 딱히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김건모의 재도전 포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김건모의 안티라서가 아니라 일련의 상황들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좀 더 확고히 다져주는 의미에서의 이벤트라고 여겼을겁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김건모씨는 덥썩 재도전 카드를 물었습니다. 재도전룰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지난 몇주간 시청자들을 향해 탈락되는 가수의 모습을 꼭 보라는 듯한 예고편을 보내준 주제에, '나는 가수다'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배신해줬습니다. 결과는? 짜증이었겠죠. 식당에서 주문한 요리가 나오지 않으면 짜증이 납니다. 며칠간 간절히 기다리던 택배에 벽돌한장이 들었다면 그 벽돌로 창문을 부수고 싶어집니다. 협의가 되었어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짜증이 나는 것이 사람인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잘못된 요리를 하고, 물건대신 벽돌을 집어넣는 일련의 상황과 과정을 모두 여과없이 보여줬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이런 과정들을 방송으로 만들며 "이게 진짜 리얼이다!"라고 여겼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막말로 생업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않는 일개 주말 버라이어티 방송이 요며칠간 인터넷을 얼마나 달구었는지 보면,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기대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제작진의 삽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PD가 교체된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어떤분들은 비난하던 사람들이 원하던게 이런거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글쎄요.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주말 예능을 보는 이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방송은 즐거움대신 짜증과 심각함을 안겨줬습니다. 아울러 MBC의 결정은 그 심각함에 좀 더 무게를 주고 있습니다. 삽질을 했다고 하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방송국에 의해 '짤리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최근의 일련의 소동과 더불어 PD의 교체까지 패키지로 함께 떠올리겠죠. 그건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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