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보고 왔습니다 (스포)

2020.07.14 22:22

Sonny 조회 수:658

사람들이 모두 좀비로 돌변했고 핸드폰 통화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없고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자신 뿐이다. 외롭고 비참해서 "나"는 죽음을 결심한다. 목을 메고 버둥거리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레이저 포인트가 날아와 마구 움직인다. 누군가 죽으려는 나를 보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알고 보니 그것은 20대의 예쁜 여자다. 하필이면, 세상 사람 다 좀비가 되었고 누가 살아있는 게 이상한 상황에서 20대 남자인 내가 알콩달콩 로맨스를 꿈꾸기에 참 편리한 사람이 살아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그 20대 여자와 함께 생존을 도모해야한다. 어쩌면 모험 도중에 사랑이 싹트진 않을까?

집에 더 이상 먹을 게 없다. 바깥은 온통 좀비로 가득차있고 바깥에 먹을 걸 구하러가는 건 거의 자살행위다. 어디에 먹을 게 얼마나 있는지 아무 정보도 없다. 이럴 때 20대 여자가 나에게 라면 몇개를 보내준다. "나"는 그 여자와 일면식도 없다. 그 여자가 뭘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먹을 거리가 아무리 많아도 남에게 그걸 나눠줄 이유가 없다. 먹을 게 많다는 오해를 사면 오히려 강도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에게 라면을 보내주었다. 그 여자는 왜 그랬을까? 이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젊고 예쁜 여자는 착하기까지 하다. 이 여자덕에 나는 맛있는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감사하고 기대할 뿐이다.

위의 상황은 <살아있다>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 두 장면의 현실성에 의심을 품게 된다. 세계는 멸망해가는 중이고 살아남았다 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우연이 떡하니 생길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중학생 때 입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2인실에 입원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니까 이들은 짠 것처럼 똑같은 질문을 했다. 혹시 옆자리에 입원한 사람이 우리 또래의 예쁜 여자애 아니냐고.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많고 내 병실메이트가 내 또래의 예쁜 여자아이일 확률은 현실적으로 극히 낮았다. 나와 2인실을 같이 썼던 사람은 50대 아저씨 중풍 환자였다. 내 친구들은 어떤 근거도 없이 2인실의 빈 자리를 본인들의 욕망으로 채워넣었다. 서사는 욕망이라는 관성이 있다. 모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원인과 확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랬으면 하는 작가와 소비자의 욕망을 따라간다.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들은 압도적인 제국의 군사들이면서도 왜 그렇게도 사격을 못할까? 스카이워커 일행은 총에 맞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작자와 관객이 주인공의 죽음을 피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픽션의 허구성은 말이 안되는 연결고리가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할 법한 선택들과 그 상식을 능가하는 더 궁극적인 이유의 모순을 이어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아인과 박신혜가 주연한 <살아있다>는 이 기본적인 흐름을 계속 무시한다. 보는 사람은 납득하는 대신 쟤 왜 저래? 라며 이해에 실패한다. 좀비 떼에 고립된 두 사람이 워키토키를 어렵사리 구해 핸드폰 통화가 불가능한 세상에서 드디어 원거리 통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 좀비들이 어떤 존재인지, 본인이 처한 상황은 어떤지, 자기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 이 상황을 타개할 답은 무엇인지,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할 것이다. <살아있다>의 유아인과 박신혜는 소개팅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 유빈씨 고마워요... 준오씨 고마워요... 우리 같이 라면 끓여먹을까요? 상황에 대한 논의는 단 한마디도 없다.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새벽 두시 감성의 카톡 대화가 육성으로 오고간다. 공통의 적에게 쫓기는 자로서 퓨리오사와 맥스가 신호를 정해놓고 차의 시동을 거는 법을 알려주는 대화 같은 건 아예 없다. 저게 말이 되나? 말이 안된다. 좀비사태가 터져도 예쁜 여자랑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데이트를 하고 싶은 남자의 욕망이 <살아있다>를 채우고 있으니까.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랑 연애하는 영화를 우리는 로맨스 "판타지"로 구분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장르적으로가 아니라, 서사적으로 판타지다. 좀비라는 괴현상이 터졌어도 그 현실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싫은 20대 남자의 게으르고픈 욕망이 현실을 계속 구축한다. <살아있다>에는 그걸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 거의 모든 전파가 끊겼고 좀비사태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티비다. 그런데 유아인은 이 현실이 갑갑하다며 갑자기 화를 내고 티비를 부숴버린다. 제일 주요한 목숨줄을 분풀이 용으로 파괴해버린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내키는대로 굴어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유아적 욕망을 인정받고 싶은 서사다. 그래서 영화 속 유아인은 툭하면 충동으로 뭔가를 저지른다. 식량이 얼마 안남았는데 광고를 보고 군침돈다고 라면을 먹어버리거나, 좀비를 보고 도망치거나 싸우는 대신 허세를 섞어서 화를 내거나. 신중하고 성실한 태도 대신 "꼴리는대로" 해도 살아남아 목적을 성취할 거라는 욕망이 영화 전체에 만연해있다.

딱히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되게끔 영화가 이미 주인공의 행운을 보장하고 있기에 <살아있다>는 많은 사건들을 건성으로 넘긴다. 영화의 포스터로도 쓰였던, 박신혜와 유아인이 아파트 밖의 지상에서 좀비들과 싸우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그 나태함의 극을 달린다. 좀비 때문에 밖을 못나가던 사람들이 좀비밭을 지나가기로 했다. 어떤 멍청이라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성공확률을 높이는 작전을 짜서 탈출을 실행할 것이다. <살아있다>에서는 아무 계획도 없이 박신혜가 로프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혼자서 좀비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유아인도 허겁지겁 나와서 좀비들과 싸우며 좀비가 없는 공간으로 함께 피신한다. 360도 사방에서 좀비가 몰려드는데 그걸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공들이 돌진한다. 그렇게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없던 자신감을 가질만한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그쯤되면 그런 장면이 한번 나와야하니까 영화가 그 무모함을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굴던 좀비들이 이 씬에서만큼은 어딘지 친절하고 헛점 가득한 동작들로 박신혜의 탈출을 방치한다. 좀비영화가 주인공들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들을 똑똑하게 만드는 대신 좀비들을 멍청하고 약하게 만든다.

이런 장면들이 나열되면서 <살아있다>는 의도치 않게 20대 청년의 삶을 환기시킨다. 유아인이 주연한 준호는 유튜버이고 게이머이며 좀비 사태에서는 무력한 20대 남자 캐릭터다. 좀비라는 픽션의 요소만 빼면 그 무기력함과 자기중심적인 면모는 인터넷 방송을 즐기는 20대 남자들과 거의 동일하다. <살아있다>가 이렇게 디자인 된 것은 무의식적이지만 필연적이다. 영화는 반드시 시대의 욕망을 담기 때문이다. 노력해서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정석적인 영화를 21세기의 관객들은 믿지 않았다. 그 결과 불법과 폭력으로 한탕 크게 챙기는 게 더 매혹적이라는 <타짜>가 대박을 쳤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아무리 애써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연으로 대박이 터지고, 쌍욕이 도배되는 가운데 알고 보면 엄청나게 싸움 잘한다는 <극한직업>이다. 이제 한국영화계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좀비가 터져도 집밖으로 나가긴 싫고 남들한테 대놓고 징징대고 싶고 착하고 예쁜 여자가 자기를 구해주고 같이 싸워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계멸망의 순간에도 남자들은 엄마같은 잠재적 여자친구의 구원과 이해를 구한다. 그런 소망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객관적 세계와 맞서 싸우기 싫을 때 구석구석을 사적인 욕망이 채운다. 즉각적이고 원초적인 쾌락이다. <살아있다>의 세계는 식량을 구할 수 없고 수도도 끊겨서 물도 못먹는 상황이다. 영화는 이 위기를 생존에 직결된 투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살아있다>에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궁핍이 없다. 물이 없는 위기를 초래해놓고 영화는 스스로 비를 내리게 해서 갈증을 해소해버린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 물을 못먹어 목이 타들어가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배가 고픈 것도 알아서 해결된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이 영화가 굶주림과 영양소 부족이 아니라 특정한 맛을 강조하며 갈등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유아인이 먹는 것들은 무엇인가. 배가 고플 때는 짜고 매운 라면을 먹고 목이 마른데 물이 떨어졌을 때는 양주를 마신다.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먹는다는 행위로 삶을 부지해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맛있는 걸 먹어서 느끼는 황홀함과 즐거움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영화는 지리한 생존 대신 도취적인 맛의 사치를 누린다. 유아인은 괴로워하는 대신 불편해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의 모든 표정과 액션이 허망한 이유는 그의 감정들이 죽음과 삶을 오가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 불만에서 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으니 삶도 없다. <살아있다>는 스스로 제목을 배반한다. <살아있다>는 한 순간도 다큐멘터리적이지 못하고 텅 빈 인터넷 먹방을 재현하는 데서 그친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게으른 자기연민은 극도로 뻔뻔해진다. 유아인과 박신혜는 옥상까지 피신하지만 좀비들은 마침내 두 사람을 쫓아온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이 둘을 향해 좀비들이 달려들 때, 바로 뒤에서 군용 헬기가 솟아오른다. 군인들은 총을 쏴서 좀비들을 격퇴하고 유아인과 박신혜는 무사히 헬기에 태운다. 그 둘은 이렇게 아파트단지의 수라장을 탈출한다. 모든 문명의 붕괴와 개개인의 자력생존이 전제된 장르에서, 그래도 자기를 지켜줄 거라는 공권력의 존재를 다시 소환된다. <살아있다>의 초반, 영화는 이미 좀비로 변한 경찰들이 인간이었던 경찰을 물어뜯어 좀비로 변모시키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 세계에 어떤 질서도 없다는 것을 이미 선포했다. 그러나 영화 후반 주인공들이 궁지에 몰리자 군대를 출현시켜 보란 듯이 구해낸다. 이 황당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한번 20대 남자의 욕망을 소환해야 한다. 딱히 열심히 안살고,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아무튼 잘난 자기를 세상이 구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의 가상세계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현실에서는 무위도식할 뿐인 남자들의 바깥세계 판타지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살아있다>의 의존성이야말로 궁극적인 소망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남자는 구원받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가 날 구해주고, 나라가 날 지켜줄 거라는 이 믿음 아래 할 일이라고는 멀찍이서 드론을 조종하거나 술을 까마시며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것뿐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20대 인방 세대의 남자들이 살아있는 형태다. 이들은 유아인처럼 그렇게 살아있다. 자의식을 뽐내고, 부족한 것을 참지 않고 깽판을 부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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