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6시즌으로 며칠 전에 끝난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에피소드당 25분 정도 되고 한 시즌에 12편씩, 마지막 시즌만 16편으로 되어 있네요. (그걸 미리 확인 안 하고 어제 에피소드 12를 보다가 당황했던. ㅋㅋㅋ) 결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진 않겠지만 해피엔딩이다 아니다... 를 눈치챌만한 가벼운 스포일러는 있습니다.





 - 아무 설명 없이 동물과 인간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려서 사는 현대 미국, LA가 배경입니다. 제목 '보잭 홀스맨'은 주인공 말의 이름이구요. 그러니까 성이 마남 90년대에 평가는 구렸어도 흥행은 대박쳤던 가족 시트콤의 주인공을 맡았던 덕에 이후로 거의 20년을 흘러간 스타, 그냥 한량으로 지내면서도 돈은 썩어 넘치는 사람... 은 아니고 '말'이죠. 누가 봐도 아동 학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불우한 성장기를 거친 덕에 성격은 그냥 쓰레기. 멍청하고 욕심 많으며 허세 쩌는 관심병 말기 환자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환장하는 주제에 동시에 자기 만족 밖에 몰라서 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보낸 후 혼자가 되어서는 '내 인생은 너무 힘들어!!'라고 한탄하며 술과 약에 빠져드는 딱한 진상 캐릭터에요.

 그리고 이 진상 말이 주변의 인물들(유능하지만 맘 약한 에이전트 고양이, 긍정이 도를 넘어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늘 즐겁게 사는 개, 불우한 성장을 탓하는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 여성과 모두의 호구이지만 알고 보면 만능 능력자 남성 등)과 얽히고 설키고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면서 행복해지려고 몸부림치는 여정을 보여주는 게 이 시리즈의 내용입니다.



 - 일단 유머가 굉장히 독합니다. 적당선이란 게 없어요. 예를 들어... 등장 인물들 누군가가 유산을 겪게 되는데 그 직후에 그 인물이 카페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 나오는 드립이란 게 카페에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오는데 죄다 '캐리'로 시작되는 이름의 유명 연예인들인 거죠. 누군가가 그 사람들 이름을 줄줄이 읊는데 그래서 '미스 캐리 xxx, 미스 캐리 xxxx, 미스 캐리x xx...' 이런 대사를 치고 방금 유산한 캐릭터는 그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

 등장 인물들 중 상당수가 인성 개차반이란 걸 활용해서 인종주의적, 성차별적 농담들도 종종 등장하구요. 결국 큰 틀을 보면 미국 좌파 지식인들의 시선과 PC한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부분부분 떼어놓고 보면 이런 물건이라 이런 독한 유머를 안 좋아하는 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아요. 다만 그런 게 충분히 감당 가능하시다면야, 상당히 웃기고 재밌을 겁니다.



 - 캐릭터 묘사 면에도 자비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저 찌질한 보잭 홀스맨이란 중년 남자가 오만가지 일을 겪으면서 더 나은 사람 말고 말이 되어가는 이야기이고, 사실 이런 이야기는 되게 흔하잖아요? 그런데 이 놈이 저지르고 다니는 짓들이... 정말로 추해요. 그리고 작가들이 거기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말 했듯이 이 놈이 그러고 다니는 원인으로 불행한 성장 과정이 제시되긴 합니다만, '그건 그거고 어쨌든 너님 이러고 사는 건 니 책임'이라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요. 

 제겐 이런 특징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막살다 철드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로 많지만, 이렇게 그 주인공에 대해 거리를 두고 연민은 연민대로, 잘못에 대한 책임은 책임대로 따지고 드는 이야기는 흔치 않... 죠? 아마도? ㅋㅋㅋㅋ


 이 시리즈의 이런 특성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게 바로 마지막 시즌인데. 그 전 시즌들에서 그냥 드립처럼 넘어갔던 주인공의 만행들 중 심각하게 남의 인생에 해를 준 것들이 거의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주인공을 괴롭힙니다. 절대로 쉽게 용서하지 않고 슬쩍 대충 성장 시켜주지 않아요. 근데 그렇다보니 오히려 더 강하게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고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대부분의 이런 이야기들이 그렇게 하듯이 큰 일 하나 던져줘 놓고 극적으로 한 방에 '짜잔~ 이젠 철들었대요!' 이러고 넘어갔음 대충 납득은 하더라도 찝찝한 맘이 들었을 텐데, 끝까지 집요하게 탈탈 털고 몰아붙여서 기어코 만신창이를 만들어 버리니 '그래 이만하면 벌 충분히... 는 아니어도 나름 성실하게 받았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보는 와중엔 참 힘들었지만 다 보고 나니 정말로 마음에 드는 방향이었습니다. 



 - 주인공 외의 주변 인물들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에이전트 고양이와 글쟁이 인간 캐릭터를 묘사하는 모습을 보면 딱 이 시리즈 작가들의 본색(?)이 드러나죠. 남자들에 비해 상당히 긍정적이거든요. ㅋㅋㅋ 헐리웃 쇼비지니스,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시작해서 정치인, 유권자, 대기업, 인종 차별, 공장형 육가공... 등등 건드릴만한 소재들은 다 건드리며 흘러가는 이야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건 여성들에 대한 이슈들이에요. 주인공은 인성 개차반 중년 남성이지만 여성들도 보면서 공감하고 재밌어할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아. 인물 얘기 하다가 갑자기 소재 이야기로 점프해 버렸네요. 음... 그냥 간단히 말해서 메인 캐릭터들이 모두 입체적이면서 보다보면 확실히 정 붙일 데가 생기게 잘 만들어져 있으며 캐릭터들끼리 엮일 때의 합도 좋습니다. 누구 하나 쓸 데 없이 완벽하지 않게, 현실적인 결함을 몇 가지씩 갖고 있고 그게 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좋구요. 적어도 다섯 명의 주연급 캐릭터들은 한 명도 대충 가볍게 취급되는 일 없이 깊이 있게 다뤄지고 마지막에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을 맞아요.



 - 저런 그림체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또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그림체는 아니며 사실 저도 딱히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미술적, 시각적 측면에서 봐도 감탄이 나오는 시리즈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중간중간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나 에피소드로 가면 저 그림체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든가, 무섭다든가, 끔찍하다든가... 하는 느낌들을 팍팍 받게 되더라구요. 특히 한 시즌에 한 두 편 정도는 작정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밀고 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거의 예외 없이 감탄이 나옵니다. 덧붙여서 음악도 늘 좋구요. 시즌 피날레쯤에 깔리는 노래들은 나중에 어디서 목록을 찾아다 다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결론은 뭐...

 구구절절말할 것 없이,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오리지널 컨텐츠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시즌이 여섯개에 에피소드가 76개나 되니 가끔은 덜 재밌을 때도 있고 좀 지루한 순간도 한 두 번은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한 보람은 충분해요.

 다만 유머의 스타일상 취향은 확실히 크게 탈 거라는 거... ㅋㅋㅋㅋ




 + 헐리웃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답게 실제 배우, 감독, 가수들이 와장창창 출연하는데 그 중 상당수는 본인이 직접 음성 연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폴 매카트니(...) 대체 이 양반을 어떻게 섭외한 건지. ㅋㅋㅋ

 그리고 배우들 놀리는 농담도 되게 많아서 신기하더라구요. 그게 허허허 하고 살짝 놀리는 게 아니라 정말 그 배우 커리어의 헛점이나 흑역사 같은 걸 후벼파는 수준의 드립들이라 본인들 허락을 받고 한 건지 어쩐 건지 궁금했습니다.



 + 보잭의 소울메이트(?)인 베트남계 여성 다이앤 응유엔 역할을 앨리슨 브리가 맡았어요. 어제 보잭 홀스맨을 끝내고 멍때리며 넷플릭스 신작 영화들을 훑어보다보니 앨리슨 브리가 주연을 맡은 신작 스릴러가 눈에 띄었는데 제목이 '홀스 걸' 이었습니다. 쿨럭;;



 + 전에 게시판 어느 분께서 뭐랬더라... 암튼 이 시리즈를 (기억이 안 나는 앞부분과 디테일은 생략하고) '행복해지려고 몸부림 치는 이야기'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딱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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